"《녹색평론》은 이른바 ‘발전‘ 혹은 ‘진보‘의 이름 밑에서 인간생존의 사회적·자연적 토대를 끊임없이 훼손하는 일체의 움직임, 논리, 사고, 제도, 관행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는 늘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했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왜 우리가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선생이 단호한 어조로 밝힌 《녹색평론》의 정체성과 지향점은 곧 김종철 문학의 그것이라고 말해도 크게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생의 문학은 전환의 문학이었습니다. 근대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모든 과정과 부문에 적극 개입하는 모든 형태의 문학.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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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불행은 나를 비켜 가리라는 기대보다는 내게도 예외 없으리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위로받는다"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문학동네, 2020). 이 예외 없는 시간을 불행으로만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P242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곳에서 살고 무엇을 하는지와 같은 삶의 맥락은진료실에 들어온 순간 모두 사라진다. 모든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오직한 가지, 증상만 남는다. 이것이 의사가 경험하는 첫 번째 마술이다. 하지만 왕진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거기에는 ‘한 사람‘이 자신의 방에 앉아 있다. 그 모습이 의사에게 주는 정서적인 변화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는 자기 삶의 맥락 속에 앉아 있으므로 나는 그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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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꽃의 이 아름다움을 단순히 곤충을 유인하여 씨앗을 맺기 위한 수단으로만 해석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공리주의이다. 님들은 누구십니까. 어찌하여 이리도 아름다우십니까. 그리고 우리들 가슴은 어찌하여 님들 앞에서 이리도 사무쳐 옵니까. 어찌하여 이 광막한 우주, 먼지 같은 지구에 찾아오시어 아무것도 아닌 이 존재를 이리도 기쁘게 하십니까. 작약을 마주하고 그냥 평화로이 서 있다. - P169

‘환경‘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하는 말씀을 만났다. - P171

사회적경제: 사회적 목적, 사회적 소유, 그리고 사회적 자본을 구성요소로 하여, 자본과 권력을 핵심자원으로 하는 시장 및 국가에 대한 대안적 자원배분을 목적으로 삼고, 시민사회 혹은 지역사회의 이해당사자들이 그들의 다양한 생활세계의 필요들을 충족하기 위해서 실천하는 자발적이고 호혜적인 참여경제 방식(26쪽)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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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의료부분의 일회용품이 증가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

그렇다면 우리는 농작물을 새로운 식품으로 변환시키는 일에 있어서 닭이나 붕어를 생산하는 것보다 곤충을 재배하는 쪽이 더 효율적인가를 물어야 하는데, 곤충 사육은 에너지 필요량은 높고 먹이로의 변환율은 양계의 경우와 비슷하고, (현재로서는) 생산비가 너무 높다. - P92

현세대의 건강과 수명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현대 의료시스템의 거대한 (계속해서 증가하는) 생태발자국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즉 그것은 (이문제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는) 젊은 세대와 미래세대의 건강과 수명을 희생하여 확보된 것이다. 오늘 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이 내일 여러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라면 의료는 반생산적인 것이 된다. 건강은 개인에게 있어서 선(善)이기도 하지만 공공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료서비스가 갈수록 자원집약적으로 되어가면서, 개별 치료에 의해 초래되는 공공의 건강피해가 환자(특히 고령의 환자)가 얻는 이익보다 훨씬 더 커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 P107

첫 세 가지 키워드(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 자유경쟁 시장, 무한 경제성장)는 ‘현실‘이 뒤틀림으로써 삶의 고통을 초래한 근본(根本)과 관계된다. 또다른 세 가지 키워드(민중 자치, 공생공락의 우애 공동체, 순환적 생활방식)는 사방상하로부터 ‘비현실적’이란 낙인에도 아랑곳 않고 시종일관 제안해온 근원(根源)적인 삶의 희망이자 대안이다. 남은 한 가지는 이 현실과 비현실의 변증법적 통일을 위한 것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 P115

"오늘날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근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농경의 의미를 단순히 산업의 일부로 파악하는 데 길들여져 있고, 그 결과 언론, 교육, 문화, 과학, 종교, 의학, 예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지적·도덕적 체계는 사실상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데 유효한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땅의 옹호》, 37쪽) - P117

또, 새로운 이윤공간으로 칭송되는 금융업조차 따지고 보면 ‘거품‘ 내지 ‘사기‘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더 중요한 점은, 이제 자본주의가 더이상 실물경제 그 자체로는 원만한 자기증식이 되지 않기에 거품경제 내지 금융경제, 투기경제가 필요하게 됐다는 점이다. 무한성장의 신화는 결국, 무한거품에 불과하다. 이는 자본의 내적 한계를 암시한다. - P121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단순 소박한 순환형 생활방식과 상호부조와 협동을 통한 공생공락의 삶을 실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태적 위기에 대하여 골똘히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공감하는 견해이다."(《땅의 옹호》, 44쪽) - P131

"지금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가난‘을 저주하고 증오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일념으로 추구해온 것(배부른 돼지들의 세상)이 결국은 공허한 물질적 안락(‘계산적 사고‘의 지배)이었다는 데 핵심적 비극이 있다."(《발언I》, 158쪽)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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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독자도 이른바 ‘테크래시‘(technology-backlash, 거대 테크놀로지 기업들에 대한 대중의 저항과 거부감)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그나마 우리가 갖고 있던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마저 약화시켰고, 스마트폰은 어린아이들의 뇌를 손상시키고 가족간의 담화의 성격도 훼손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들은 우리의 주의력을 교란시키면서 현실에 대한 감각을 끝없이 저하시켜왔다. - P78

테크놀로지는 인간적 가치들을 용인하지 못한다. (테크놀로지는) "필연적으로 수리적(數理的) 제의(祭衣)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에서 수학적으로 처리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모두 배제돼야 한다." - P83

엘륄은 우리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행위는 기술과 기술의 식민화하는 힘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결코 헛되지 않은 저항은 테크놀로지사회의 전체주의적 본성을 의식하고 그 증인이 되는 것에 의해서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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