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폭식을 한 날, 내가 느낀 것은 두려움보다는 자유였다. 음식 앞에서의 자유, 자제력에 대한 불안과 강박으로부터의 자유, 케케묵은 감정으로부터의 자유. 내 의지로 냉장고를 열고 음식을 선택하고 집어 먹으면서 오랜만에 자율성을 발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구토 또한 아주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였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절대 소화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므로. 구토를 통해 몸에 대한통제권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P52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가 지내는 집은 ‘남의 집‘이었다. 눕지 못하고 벽에 기댄 채 잠을 참을 때, 출출한데 냉장고를열 수 없을 때, 갈아입을 옷이 없을 때, 문득 내가 하루를 보낸 곳이 내 집이 아님을 깨달았다. 반찬 투정을 하는 아이옆에서 묵묵히 밥을 먹을 때, 이 집 식탁 위에 내가 고를 수있는 음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밤이 되고 모두가 씻고 잘준비를 하는데 아직 난 엄마를 기다려야 할 때,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내 몸이 부끄러워 차라리 사라지고 싶었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 입술을 깨물었다. 입 안 속살에 치아 자국이 깊게 파일 때까지 입술을 꽉 물고 놓지 못했다. - P67
모든 인간에겐 자신만의 아픔이 있고 그 아픔은 온 세상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에는 한 인간이 자신의 상처를 딛고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돌보고 회복을 기다리는 것. 실패에 기회를 주고 곁을 지키며 온기를 나누는1일 거기에 우리가 이 땅에 모여 사는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믿는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무심코 지은 미소 한 번이 그의 하루를 밝히는 작은 촛불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포기 - P93
하고 싶지 않다. 크고 묵직한 선물이나 관심보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온정들이 방황하는 나를 지켜주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인간이,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 P94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상처를 ‘안다‘는 것이다. 나는 내아픔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 내 고통과 치료의노력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내 상처와 아픔의 주인공은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어"라는 말은 무기력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가능성의 말이기도 하다. 나라도, 타인과 다르게 나를 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나라도, 내 상처를 보듬을 수 있다는 가능성. ‘이런 나’라도 나를 좋아해줄 수 있다는 가능성. 난 내가 가진 이 최소한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고 싶다. - P96
아마 누군가는 내게 묻고 싶을 것이다. 폭식과 구토를하면서,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채로 어떻게 정상적인 삶을살 수 있느냐고. 그럼 나는 되물을 것이다. 정상적인 삶이 - P216
무엇이냐고. 폭식과 구토 증상이 있어도 친구를 만나고 공부하고 영화를 보고 생계 활동을 하고 연애하고 반려동물과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데, 이것은 왜 정상적인 삶이 아니냐고 말이다. 당신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게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상적‘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사람은 타고난 몸, 직장, 습관, 성향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달라진다. 거기에 정상/비정상은 없다. 그러나 질병을 갖게 되는 순간 한 개인의 삶은 쉽게 비정상으로 평가된다. ‘나는 비정상이다‘라는인식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자신의 욕구를 불신하게 되며다른 사람들의 삶을 모방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그리고 그럴수록 자신의 삶에서 소외된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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