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한
사람을 닮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계는 언제나 많은예술가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그중에서 로봇과 사회의관계에 관해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이다. 이 영화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인공지능이 결국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활동하면서이를 저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비결정성 인공지능(Non-deterministic AI)과 에이전틱 인공지능(agentic AI)이다. 비결정성 인공지능은 같은 입력에도 서로 다른 출력을 내놓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인공지능은 확률을 기반으로 동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난수가 발생하기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모델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알기 매우 어려운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며때로는 인공지능 환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영화에서 보듯 하나의 질문에 대해 전혀 엉뚱하고 위험 - P35
한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인공지능이다. 에이전틱 인공지능에는 인공지능 모델, 특히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나온 결과를 시스템과 연결해 각종 명령을 실행하고 결과를 받아 수정하는 기능이 있다. 현재는 주로 클로드 코드나 제미나이 코드, 코덱스처럼언어모델을 이용한 코딩 도구에서 많이 사용한다. 이도구를 이용하면 언어모델이 만든 코드를 실행하고, 오류 코드를 받아 스스로 그 부분을 수정해서 코드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간편하게 코딩 작업이 가능하다. 아직 컴퓨터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영화에서 인공지능 울트론이 몸을 얻었던 것처럼 물리적인 능력을얻어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치지 않는다. - P36
전자영
비슷한 시기에 자기이론(autotheory)은 일인칭 주체가전면에 등장해 "작가가 직접 겪은 것을 정직하게 혹은 ‘진정성 있게‘ 재현하려고 하는 문학적 논픽션에 대한급진적인 접근 방식[91을 기치로 내건다. 이때 진정성이란 개인의 경험과 허구적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사사로운 것과 감정적인 것을 읽고 쓰는 행위에 복구시키려는 시도로 읽힌다. 자기이론은 신체에서 발생하는 경험과 개인의 피부에 새겨진 기억을 재료로 삼기 때문에 직접적이다. 그리고 이를 여러 방법론을 거쳐 비판적으로 사후 성찰해 지식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자기 인식적이다. 이렇게얻어진 지식이 삶과 예술의 작동 방식에 일정한 형태를부여하여 무언가를 설명하는 틀을 갖춘 이론이 된다. 왜 하필 ‘이론‘일까? ‘자기‘와 ‘이론‘이 나란히 쓰이게 된 것은 서구 지성사의 흐름에서 이해해야 한다. 철학은 외부 세계와 구별되어 사고할 수 있는 주체를 필 - P93
요로 한다. 사고와 행동이 그 자신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에 이 주체는 하나의 단일체다. 그러나 이론에서는주체 대신 사상이 더 중요하다. 작가 대신 텍스트가 서로를 인용하고 보완한다. 이후 이론은 높은 이론과 낮은 이론으로 갈라진다. 낮은 이론은 주체가 경험하는주관적 특수성과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에서 사유한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여기에 피식민 경험을 추가한다. - P94
강민욱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때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는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새로운 존재를 경제적 관점에서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에 있다. 인공지능은 자본일까 아니면 노동일까. 지금까지는 자본을 인간이 만들어 낸 생산 수단으로, 노동은 인간의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활동으로이해해 왔다. 인공지능은 이 두 범주를 동시에 가로지른다. 인간이 설계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자본에 가깝지만,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노동의 속성을 지닌다. 만약 인공지능이수행한 판단과 생산을 하나의 노동으로 본다면, 그 대가는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 반대로 이를 자본으로 본다면, 그 수익이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는 것은정당한가. - P115
이 질문은 단순한 분류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어떤 지위를 갖는가에 따라 소득이 분배되는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보상을 정당화할 것인가. 그리고 인정과 평가를 생산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으로 이동할 때 그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술은 이미 선택의 조건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경제는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생산의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를묻는 문제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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