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무진기행> <무진기행》은 영화로도 세 번 만들어진 바 있다. 그 외에 KBS에서 ‘TV문학관‘으로도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승옥이 직접시나리오를 쓴 1967년 영화 <안개>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사회회의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반면에 원작은 무진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시작해서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것으로 끝난다. - P79
윤희중의 결혼은 사랑에 의한 결합이 아니고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적인 세계다. 현대인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이다. 다만 꺼림칙함은 갖게 된다. 사랑을 포기하고 돈을 선택하는 것인지라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은 돈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입장권이다. 부끄러움을 느껴서 사랑을 다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돈을 선택한다. 나름대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당신만 힘들었던 건 아니야. 나도 힘들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이렇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의 기능이다. 우리의 감정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쾌락원칙‘을 따르고 있다. 감정은 우리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만들기 위해고안된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이나 부담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최악‘이 아닌 ‘차악‘으로서 더 큰 부담이나 비용을 덜어주는 감정이다. - P91
황석영 <삼포 가는 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토마스 만이 20대에 쓴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이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지난 1929년에 받았는데, 토마스 만은 그때에 이르기까지 여러작품들을 썼고 자신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보다 《마의 산을더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문학사적으로 보자면 그의 작품들 가운데《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소설이다. 한국에서 그와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꼽자면 1931년에 나온 염상섭의 <삼대》를 들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한국 부르주아 집안의 계보를 다루고있다. 부르주아계급의 흥망을 다룬 소설들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노동자문학이 나와야 어느 정도 현대소설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고할 수 있다. - P147
1973년에 한국단편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삼포 가는 길>이 출간된다. 이 작품은 단편문학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는데 바로 그것이 문제다. 단편의 성취가 갖는 한계 때문이다. 단편이 할 수있는 몫과 장편이 할 수 있는 몫이 다르다. 한국문학사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유력한 단편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장편소설 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승옥도, 황석영도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다. 비평가들이나 연구자들이 《삼포 가는길》을 《객지>의 완결판이라고도 평가하는데 이 작품은 완결판이 아니다. 완결시킨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뒷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소설이다. - P123
이청춘 <당신들의 천국> 한국문학에서 이청준은 관념 파트를 전담하는 작가다. 세계문학에서 대표적인 관념소설 작가들이 있다. 러시아작가인 도스토옙스키와 독일작가인 토마스 만 등이 손꼽힌다. 이런 작가들과 견줄 만한세계적인 문학을 쓰려면 특정한 코드가 있어야 한다. 《당신들의 천국>은 전형적인 ‘파우스트 테마‘의 작품이기 때문에 같은 코드로 이작품을 소개하면 외국 독자들에게도 읽힐 수 있다. 《파우스트> 2부의 지배자 비극에 등장하는 간척산업 테마는 《당신들의 천국>이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간척사업은 독일뿐만 아니라 개발 시기 어느 나라에서나 벌어지는 전형적인 기획이다. 파우스트주의는 ‘영도자주의‘라 할 수 있는데 작품 《파우스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일을 하는 데는 한 사람의 머리와 수천의 수족이 필요하다." 파우스트의 머리에서 나오는 기획이 있다면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수족이고 동원 대상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소록도 간척사업도 조백헌 원장 개인이 생각해낸 기획이다. 또는 실제 모델인 조창원 원장의 생각이기도 하다. 파우스트가 백성들에게낙원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시혜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똑같이 조백헌은 환자들에게 낙원을 만들어주겠다고 공표한다. - P151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관련해서는 작가의 개인사가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세희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1965년 스물세 살 때 단편으로 등단한다. 그리고 10년간 공백기를거친다. 이 작가의 특이한 면인데 결과적으로 더 좋은 작품을 쓸 수있게 된 배경이라고도 생각한다. 대학교를 두 번 다닌 조세희는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황순원의 제자가 된다. 황순원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평한 적이 있는데 그는문장 하나는 봐줄 만하다‘고 했다. 문체주의자였던 황순원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 작품도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어서 다소 논쟁거리가 된다. 가령 조금 다른 사례일 수 있지만 알베르 카뮈에 대한비판가운데 하나로 문체가 너무 유려하다는 의견이 있다.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데 아름다운 문장에만 치중해서 되겠느냐는 것이다. 독자가 작품의 문제의식이나 주제에 주목하지 않고 화려한 문장에만 주목할 수 있다. 즉 문체가 독서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 - P166
이다. 조세희의 경우에도 작품에 쓰인 문체가 시빗거리가 되는데 이것은 물론 작가적 전략으로 읽힐 수 있다. 이 작품이 다른 문체로 쓰였다면, 좀 더 투박한 문체로 쓰였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문체는 작가가 어떤 중요한 문제와 대결하는 데 있어서 활용할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양날의 칼일 수 있기에 작가 자신도 다칠수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지만 이 작품이 지닌 아름다운 문체 혹은 생소한 형식으로 인해 노동자 독자들이 얼마나 읽고 이해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상당히 좋아한다. 정확한 주제의식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들어오지 않으니 연구 대상이 된다. 그런데 정작 이 작품이 다루고있는 대상, 즉 도시빈민이라든가 공장 노동자에게는 이 작품을 읽고소화하는 것이 상당한 고역일 수 있다. 그것이 모더니즘문학이 갖고있는 문제점이자 한계라 할 수 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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