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광장>
<광장>의 어떤 판본을 ‘정본‘으로 삼을 것인가
최인훈이 1960년에 처음 발표한 <광장>은 당시에는 분량이 중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후에 분량을 상당히 늘려 쓴 <광장>이 다시 출간된다. 지금도 장편으로 부르기엔 다소 분량이 짧은 작품이다. 손창 - P22

섭을 비롯한 전후 작가들의 작품이 숨 막히는 느낌이 들었을 당시 평론가나 독자들에게 최인훈의 <광장>은 뭔가 뻥 뚫리는 듯한 감상주었을 것이다. <광장>은 날이 선 이데올로기 비판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도 그 의의가 살아 있는 작품이다. 그 비판이 남과 북두 체제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광장>을 여러 차원에서 넘어선 작품들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도 이념적인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남북한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작품의 의의는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최인훈도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상상 이상인데 여섯 번이나 개작을 해서 판본이 일곱 개나 된다. 독자로서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연구자들에게는 판본을 비교해보는 것도 학위 논문의 소재가 될 수있다. 판본들 사이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이 개작이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서 작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면밀하게 추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읽을 수 있는 <광장>의 최신 판본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것으로1960년에 발표된 작품이 아니다. 최종 판본은 지금 ‘최인훈 전집‘에수록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할 듯하다. - P23

‘지식인 작가‘ 최인훈이 자부했지만 퇴색한 것들
최인훈은 ‘지식인 문학‘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지식인문학은 ‘회색인 문학‘이라고도 불린다. <광장>에서는 대학생 이명준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명준의 생각의 흐름이나 그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 정치적인 견해들이 소설의 중요한 대목으로 꼽힌다. 지극히 사변적 · 관념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작품에서 액션은 상대적으로풍부하지 않다. 이와 같은 ‘지식인 소설‘ 내지는 ‘관념소설‘에 있어 - P28

최인훈의 작품은 한국문학에서 대표성을 갖는다. 정적인 흐름으로인해 상당한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밀어붙인 작가가 최인훈이다. - P29

각은 없다. 다만 광장이 부재하다는 현실 진단만 한다. 그리고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밀실이다. 현실적으로 광장을 마련하는 것이 여의치 않으니 자기만의 밀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광대 밀실의 이분법‘인데 이것이 20대 초반의 이명준 내지는 20대가 최인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밀실은 광장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광장이 없으면 밀실도 존재할 수 없다. 광장과 밀실은 서로 운명 공동체다. 상호 대립적이어서 광장을 위해 밀실이 희생되고 밀실을 위해 광장을배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에서 정치이론가한나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를 모델로 제시하며 하는 이야기다. 사적영역인 밀실의 공간이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뒷받침되어야 광장에서시민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 밀실이 보장되지 않으면 광장에서의 활동도 불가능하다. 두 가지를 대립적인 구도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설정이다. - P33

이병주 <관부연락선>
발자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작품은 1829년부터 1850년까지20년 동안 90권 이상이 된다. 이병주도 등단 이후 80여 권 이상무지막지하게 쓴다. 발자크가 되려면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발자크계열의 작가들은 경쟁 상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계열의 작가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작품의 양으로 승부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발자크보다 한 세대 뒤의 작가인 플로베르는 발자크를 상당히 의식했다. 발자크는 장편을 거의 두 달에 한 편씩 썼는데 플로베르는 질로승부하겠다며 5년에 한 편씩 썼다. 더 공들인 작품일 수밖에 없으므로 플로베르의 소설은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렇지만 규모 면에서는 역시 발자크를 따라잡을 수 없다. 거대한 스케일로 역사나 사회의 문제를 촘촘히 들여다보는 것이 발자크 소설의 특징이다. - P49

그리고 이것은 한국문학이 가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문학을 강의에서 다루며 왜 한국에는 발자크와 같은 작가가 없는지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런 역할을 했던 작가가 식민지 시대에는 염상섭이 있고 해방 이후에는 이병주가 있다. 이런 작가들이 문학사의 공식적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한국문학이 전쟁 이후 궤도에서 이탈한 것은 염상섭과 이병주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기인한다. 염상섭은 이광수를 잇는 주류이자 정통에 속했다. 염상섭을 제쳐 놓거나 우회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전후문학은 염상섭의 길을 가지 않는다. 1950년대 작가들 이후로는 이병주와 같은 작가가 버티고 있었어야 한다. 그다음에 이병주를잇겠다는 작가들이 등장해야 제대로 된 문학사적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병주를 우회해서 발자크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한 것이 한국문학이 걸어간 길이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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