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빈
우는 나와 쓰는 나는
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후일담이나 실패담이 아닌방식으로, 완결성과 정합성을 갖춘 매끄러운 모양새로세상에 나오는 것을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렵다. 누군가이런 이야기를 울지도 더듬거리지도 않으면서, 한 입으로 두말을 하지도, 정정도 번복도 하지 않으면서 정연하게 술술 해낸다면 나는 그 사람이 무척이나 걱정스러울 것 같다. 나는 부딪치고 깨지고 조각난 이런 이야기들이 부서지고 깨지고 조각난 모양으로나마 세상에 나와 주고 또 남아 주기를 바란다. 그 이야기를 붙이고 기우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몫으로, 그 이야기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미루어 두고 그렇게 해 주기를바란다. - P30
박성우
어떤 사람은 이런 광경에 정리 좀 하고 살라고 핀잔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에 깔린 정리 취향을 믿지 않으며 방이 책으로 어지럽다는 것은 오히려이 시대에 드문 종류의 자기 보존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쌓여야 사유가 쌓이고 사유가 쌓여야 고독이 무너지지 않으며 고독이 무너지지 않아야 혼자 사는 삶이 한사람의 존엄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게 책더미는 읽고 난 뒤의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물성 자체로 살아남기 위한 구조물이고 벽이며 때로는숨 막히는 세계 앞에서 잠시 몸을 기대는 지지대이자 ‘나는 아직 생각하는 사람이고 나는 아직 나 자신과 이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자위할 수 있는 안전한공간이다. -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