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언제나 이런저런 상황에서의 이런저런 발화(utterance)이다. 그러므로 실제 말이나 글을 만들어 내는 구조의 일반성은 그 말과 글에 의해 파괴된다는역설이 성립한다.‘ 이런 의미에서 구조주의 언어학이 말(parole)이라고 정의하는 구체적 발화는 자신을 생산하는언어(langue, 일반 언어 구조)를 위반한다. 달리 말해서 언어에는 언제나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있다. 마치 사전에서 공식화한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이 담론의 성격이듯, 모든 담론은 자기 초월적 동력성을 드러낸다. 이런 점은 시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시는 어휘 목록에서 통상 찾을 수 있는 단어들로 전개되지만, 그것들을 결합하고 압축함으로써 힘과 의미의 독특한 특수성을 창조한다. 어떤 의미에서 문학적 텍스트는 언어의 형식적 원리에 구속되지만 어느 순간에든 이 원리들에 대해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 P78
여기에서 논리적 일그러짐이 분명해진다. 율리시스는 연속성을 해체해 영원한 현재성으로 바꾸는 행동 속에서의 인내, 시간을 극복하기 위한 일관된 계획의 추구를 주장하고 있다. 과거가 망각이라면 우리는 내면에 무엇을 보존하고 있는가? 또 그 보존 행위를 하는 자는 누구인가? 잘 알려진 낭만주의의 역설처럼, 이상적인 생존 방식은 성취하기 직전에 항상 주저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행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즉 "쟁취된 것들은 행위가 끝난 것이고, 즐거움의 본질은 그 행위 속에 있다." (1막 2장279~280행)라는 것이다. - P128
타이먼이 점점 더 깊은 부채에 빠져들게 되면서 이와 같은 무상의 관대함은 정말로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때 갑자기 덮쳐 오는 인간 혐오 속에서의 외침은 이전의 자선 행위가 반전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모든 개인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 모두에게 차별 없이 상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이다. ‘전부‘와 ‘무‘는 적대자가 아니라 오히려 동반자라는 것이 한 번 더 판명된 셈이다. 홧김에 살인을 한 친구에 대해 원로원의 자비를 간청하는 알키비아데스를 중심으로, 분명 관련성이 없는 부차적 줄거리를 극의 주된 이야기에 삽입하고 있는것도 (비록 몇몇 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우연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에서 타이먼의 낭비벽은 논리적으로는 자비와 정의, 앙갚음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변덕스러운 후원자라는 점에서 타이먼이 형식적이듯, 원로원이 알키비아데스의 친구가 죽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형식적이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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