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래." 그가 말했다. "팔꿈치는 아무리 가까워도 깨물지는 못하지...... 행복은 있지만 행복을 찾을 지혜가 없어요." 그리고 그는 양치기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의 엄격한 얼굴은 환멸을 느낀 사람의 표정처럼 침울하고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행복이 무엇인지 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죽어 가는거지..." 그는 왼발을 등자에 올리면서 띄엄띄엄 말했다. "아마 더 젊은 사람은 기다릴 수 있고, 또 기다리겠지만 우리는생각하는 것조차 관둘 때가 되었어요." - P105
유형지에서
낡은 것은 버리고, 아예 그런 게 없었던 듯, 마치 꿈을 꾸었다 생각하고 다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새 삶을 시작하세요. 악마의 말을 듣지 말아요. 악마라는 놈은 나리를 선(善)으로 인도하지 않고 덫에 빠뜨릴 겁니다. 지금 나리는 돈을 원하시지만 조금 더시간이 지나면 다른 뭔가를, 다시 더 많은 뭔가를 원하게 되실 거예요. 만일 행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아무것도 원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만일 운명이 저나 나리를 심하게 괴롭히더라도 그 운명에게 자비를 구하거나 엎드려 빌지 마세요. 외려 운명을 무시하고 조롱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운명이 저와 나리를 조롱할 겁니다.‘ - P115
이웃들
"페트루샤, 우리는 예상했었네. 하지만 우리가 뭘 해야만 했겠나? 설령 자네 행동이 누군가를 괴롭히더라도, 그것이 곧 자네가나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네. 무엇을 할 것인가! 자네의 온갖 진지한 행동은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할 거야. 만일 자네가 자유를 위해 싸우러 간다면, 그 행동 역시 자네어머니를 고통스럽게 할 테지. 무엇을 할 것인가! 요컨대 가까운 이들의 평온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상에 투철한 삶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하네." - P138
다락방이 있는 집
그가 손짓을 하다가 소매로 소스를 엎질러서 식탁보에 커다란 얼룩이 생겼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이 점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즈음 주위는 어둡고 조용했다. "훌륭한 교육이란 식탁보에 소스를 흘리지 않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소스를 흘려도 모른 체하는 데 있지요." - P161
언제나 무위도식하는 데 대한 변명거리를 찾는 나 같은 사람에게, 대저택의 여름날 휴일 아침은 특히나 매력적이었다. 아직 이슬에 촉촉이 젖은 초록색 정원이 온통 햇빛을 받아 반짝일 때, 집 주변에 자라난 목서초와 서양협죽도의 향기가풍길 때, 그리고 교회에서 방금 돌아온 젊은이들이 정원에서차를 마실 때, 모두가 아름답게 옷을 차려입고 흥겨워할 때, 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배부른 사람들이 긴긴 여름 내내 빈둥대리라는 사실을 실감할 때, 모든 인생이 그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지금도 나는 똑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정원을 거닐고있다. 일도, 목적도 없이 온종일, 여름 내내 그러고 싶었다. - P165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어떻게? 어떻게 하면?" 그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세월이 지나고 해결책을 찾으면 그땐 정말로 새롭고 멋진 삶이 시작될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아직 멀고도 멀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 P251
작품 해설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평생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면서 한때는 인간 영혼의 밑바닥을 잔혹하게 파헤치는도스토옙스키, 삶의 의미와 진실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톨스토이 시대와 지식인의 문제를 고민하는 투르게네프에게 푹 빠진 적이 있는데, 요즘은 체호프를 즐겨 읽는다. 다종다양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그의 따스한 시선과 작은 목소리가 좋기때문이다. "체호프 앞에서는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더 단순하고, 더 진실하고, 자신에게 더 충실해지고 싶어진다."(막심 고리키)라고 하는데, 독자들도 그의 단편을 읽으면서 자신과 타인의 삶을 때론 이해하고 때론 용서하면서 참된 기쁨을 맛보고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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