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보니 6장이 영국 신사되기: <위대한 유산>이네.
<위대한 유산>을 먼저 읽어야겠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리비에어의 메스커레이드(가면극) 이론
퍼포먼스
식민 모방 이론
흉내내기
자전적 소설 <아라비아의 로렌스>
조셉 콘라드 <어둠의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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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여성을 사적 영역인 가정과 동일시하고, 남성을 공적 영역에 위치시키는 <별개 영역separate spheres>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정교하게 정립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계속 남아 있는 성 차별과 젠더 구분의 근거를 제공했다. - P16
하지만 19세기에 나타났던 남성성은 이미 정형화된 형태로 존재하던 것도 아니었고, 일관성을 지닌 채 유지되었던 것도 아니었다.이 책은 19세기 영국의 남성성이 독단적으로 <존재하였던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설정된 여성성과의 대타성을통해 <형성되어갔고, 제국주의 세계 질서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변모하던 불안정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젠더와 제국주의의 복잡한 연결 고리 속에서 19세기의 남성성은 성, 인종, 계급을둘러싼 담론을 통해 만들어지고, 변화하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구성원들에게 강요된 측면이 있다. - P17
역사학의 측면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식민주의보다 나중에 출현한것으로서, 더욱 일반적이면서 폭넓은 개념이다. 근대적 의미에서 식민주의는 한 독립국가가 그 국가에 속하지 않는 한 지역을 복속시키고 관리를 파견하여 그 지역 주민들을 지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한편 제국주의는 국가들 간의 종속적 관계의 성립과 유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공식적인 영토 지배를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 다르다. 제국주의는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모든 힘과 행동을 포괄하는 개념이고, 거기에는 비단 식민지의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국제정치까지도포함된다. 혹자는 식민주의를 제국주의가 변화하는 여러 단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형태인 특별한 단계로서 이해하여 식민주의를 제국주의에 귀속시켰다. - P19
사실 탈식민주의 연구에서 식민 지배자나 식민 본국이 포함될 수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뜨거운 논쟁의 핵심이 되어왔다. 무어-길버트는 <글읽기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탈식민주의 분석의 적절한 대상이 탈식민 문화에만 국한되어야 하는지 (......) 아니면 식민 지배자의 문화에 초점을 두는 것이 타당한지에 관해 격렬한논쟁이 이어져왔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책은 비단 피지배자의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식민 지배자에 초점을 두어 탈식민주의 연구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이 출현하기이전, 전통적인 제국주의 연구는 철저히 <승자의 역사>로서 중심부사람들을 동질적이며, 부동의 지배자로 조망한다. 하지만 제국주의연구의 수정주의는 <중심부〉, 즉 여기서는 대영제국 그 자체가 확고한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수많은 개념과 정책들의 엉성한 조합에 지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 P22
위에서 언급한 샤이어스의 논지는 <가부장적 남성성>이 유약하기짝이 없던 당시 남성들에 대한 이미지와 여성의 왕위 등극, 그리고점차 늘어나는 여성의 공적인 역할과 참정권 확대에 따른 사회적 불안 정서를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치유책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여권신장과 같은 당시 사회적 흐름을 거스르는 <가부장적남성성>의 등장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이 어린 여왕을 대신해서 국가를 통치할 강력한 남성성을 희구한 결과 창출되었다고 할 수있다. 여성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은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대적인 권력 균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뿐만아니라, 남성성에 대한 남성의 자기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은 여성의 권력을 경시하거나 폄하하게 되고, 남성 스스로도 일정 부분 여성과 공유하고 있던 미덕들을나약함의 상징으로 배척하게 된다. - P29
1장
즉 이 장의 논의는 박력, 강인함, 그리고 성적 매력으로 대변되는영국 남성성을 둘러싼 개념이 어떻게 제국이나 식민 권력과 관련된담론들과 결부되는지, 나아가 영국과 인도 간의 문화적 상관관계를통해 그 남성성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미리 언급하자면 강인함, 냉철한 판단력, 심지어 초인적 인간상으로 대변되는<영국 남성성>은 불안해진 제국의 위상을 보전하기 위해 대영제국 - P41
이 선택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의 결과이다. - P42
다시 말해서 강인한 남성성에 바탕을 둔 식민 지배자의 이상적인정체성 퍼포먼스는 식민 피지배자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지배자 스스로의 자기훈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결국 후천적인 정체성에 대한 자기 믿음은 인종적 우월성이라는 식민 이데올로기 담론의 생산과 소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또한 사이드가 언급했던 전략은 영국인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 P50
스스로 수행하도록 강요했던 퍼포먼스를 집단적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실천 효과를 노렸던 식민 이데올로기로 이해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개개의 영국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고 실행해왔던가부장적 남성성은 제국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이를 위한 식민 전략은 이상적인 정체성에 부합되지않는 식민 지배 집단의 일원들을 식민지에서 추방하여 식민 지배에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그 초점을 맞추었다. - P51
이들 이론가들은 모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성별에 따른 역할 행동, 즉 <매스커레이드>에 대한 리비에어의 견해를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인종별 역할 행동에 대한 개념으로까지 확대시킨다. 식민 치하에서 발생하는 심리 현상들을 다루는 식민 모방 이론은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상호모방과 의존 관계를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 P61
바바와 앞으로 논의하게 될 실버만은 모두 루스 이리가레이LuceIrigaray가 제기했던 <흉내내기mimicry>와 <가면극 이론 mas-querade>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린다. 이리가레이는 리비에어의 가면극 이론을 사회적 행동 규범에 대한 비자발적 순응으로 해석하는반면, 흉내내기에는 가면극 이론에 부재한 행위자의 의도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흉내내기는 사회적인 행동 규범을 의도적으로 모방하며, 흔히 풍자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이리가레이는 여성성의 가면극 행위에서 여성은 본래의 자신을 상실하게되지만, 흉내내기의 여성은 의도적으로 여성스러운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곧 흉내내기를 통해 순종이라는 가면의형태를 당연시하여, 이미 그 행위에 대해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이리가레이는 해석한다. 그녀는 흉내내기가 가지는 전복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속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반면에 바바의 경우풍자로 시작된 모방이 결국 행위자가 자아를 상실하는 가면극이 된다. 이와 동시에 바바는 흉내내기에 대단히 고무적이고 의미심장한가치를 부여한다. <담론을 방어적인 전투 행위에 비유한다면, 흉내내기는 공손함이라는 규율의 틀 안에 존재하는 예절 바른 불복종 - P65
civil disobedience의 순간들, 즉 눈에 보이는 저항의 기호들>을 나타낸다고 바바는 설명한다. 그러나 흉내내기는 의도성의 경계, 즉흉내내기가 애초에 의도했던 전복에 실패한다는 점에서 모방 행위속에 존재하는 전복의 가능성은 문제시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 P66
한편 인도에서 규정된 영국 남성성은 식민지뿐만 아니라 영국 본토에서도 젠더에 관한 풍습과 전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향후 논의되겠지만, 19세기 영국 남성성은 여성은 집안에 머물고 남성은 공적인 영역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별개 영역 separate spheres>의 이데올로기를 따르고 있다. 강하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신사다움>, <신사> 등의 문제와 같은 시기에 정의된 <남성성>의 개념은모두 필요에 의해 식민지에 투사되었던 이미지라는 유사성을 갖는다. 새로 형성되는 남성적인 자기 재현이 구체제식의 과도한 예의범절에 대한 반동인지, 아니면 오히려 지나친 순응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강력한 제국의 남성성이란 궁극적으로 퍼포먼스를 통해 이루어진 사회적,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식민지에서나 본토에서나 영국 남성들은 다양한 층위의 남성다운 태도와 행위를 수용하고 따르도록 요구받았으며, 인종, 성별, 그밖의 여러 가지 사회적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들만의 위치를 명확히 구분짓기 위해 가면을 쓴 채 연기를 했던 것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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