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통의 냄새를 품은 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시구를 지하철 승강장에 새겼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천둥소리와 날카롭게 내려쳐 공기를 갈라내는 번개가 언제나 내 휠체어 바퀴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가 내 마비된 두다리, 엉덩이, 배꼽, 젖꼭지, 척수 손상을 짚어내는 몸 군데군데를타고 넘어 목구멍과 입으로 기어서 눈까지 쳐들어와 어느새 눈물로 머물고 있습니다. - P11

저도 알아요. 시간에 맞춰서 출근하고 학교 가고 하는 거, 그런 일상들이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다 중요할 거예요. 평소엔 다들시간에 치여 사는 걸 그렇게도 싫어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도그게 이 사람들한테 절실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께네 지하철 지연시키게 되면은 내 입장에서도 눈 마주치는 한 명한명한테 정말로 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내가 지하철 탈때마다 시민들한테 일단 꼭 사과부터 하는 것도 진심으로 죄송해서 그러는 거야. 누구는 내가 사과하는 것도 다 쇼라고 우기던데,
그건 진짜 아닌 거거든.
그런데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요, 이건 꼭 물어봐야죠. 그렇 - P31

게 당신들 일상이 소중하다면서, 이 사회를 함께 살고 있는 어떤사람들이 그 일상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거는 왜 전혀 문제가 되질 않을까요? 나는 1분이라도 막으면 시민들한테 그렇게나 미안해하는데, 왜 장애인들 그렇게 사는 거에 대해서 미안해하는사람은 이렇게나 없는 건가. - P32

이게 지하철행동을 통해서 드러난 이 사회의 본질이에요. 쓸모 있는 사람만 시민권 열차에 태워가지고 열심히 운반하고, 쓸모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예 무정차하고서 내버려두고 떠나는 거.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은 이 사회의 본질을 아주 압축적으로 담아놓은 곳이죠. 누가 사회 바깥으로 쫓겨나건 말건, 쓸모 있는 사람들끼리만 지지고 볶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시에 맞춰 운행되어야 하는 장소니까. 그런 신성한 걸 우리같이 사회에서 쓸모도없다고 여겨지는 인간들이 흩트려 놓으려고 한다? 그럼 이제 온갖 탄압이 시작되는 거야. 심하면 나치 때 수용소나 전두환때 삼청교육대처럼 잡아다 족쳐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하지. 동정 - P33

과 시혜로 감춰져 있던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이제 막 대놓고 표출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 P34

한마디로 장애인콜택시에는 정시성이란 게 아예 없는 거예요. 오세훈이가 우리 지하철행동 비난하면서 대중교통의 핵심이라고 그렇게나 강조를 해대는 게 정시성이잖아요? 그런데 오세훈이는 장애인들한테 대중교통인 장애인콜택시가 이 모양 이 꼴인거에 대해서는 아예 문제 제기할 생각도 안 하더라고. 하긴, 오세훈만 그랬나. 역대 서울시장들 다 그랬고, 전국 지자체들도 다 그러고 있는데.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요, 장애인이 친구 좀 만나려고 하면은 며칠 전에 예약을 해야지만 겨우 한 번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가 있어요. 비장애인 시민 여러분들에게 꼭 묻고 싶어요, 당신은친구 만나려고 며칠 전에 대중교통 예약하는 게 상상이 가요? 그게 용납이 되긴 합니까? 시외버스 중에는 저상버스도 없으니까장애인이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면 유일한 수단이 장애인콜택시이기도 한데, 대한민국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장애인콜택시가 또 광역 이동을 제대로 하질 않기도 하지. 비장애인 당신들께서는 인근도시 나가는 것조차 이 정도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정말로 그걸그대로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아마 아닐 거야. 비장애인들한테 그렇게 했다가는 아주 난리가 날걸? - P47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전장연은 ‘사회적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약자 지위를 이용해서 처벌도 제대로 안 받는다고요. 오세훈 시장에게 분명하게 말을 하고싶어요.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하고 그러는 게 테러라면요, 여태껏이 국가가 장애인들에게 해온 역사는 그럼 장애인들한테 매 순간테러였어요. 정말로요, 장애인들에게는 이 사회가 테러 그 자체예요. - P55

아마 저희가 지하철 타고 나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당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정당하냐"는 말일 텐데요. 맥락 없이 들으면 아주 맞는 말 같아 보일거야. 그런데 이 말이 맞는 거라면요, 당신들이 누리는 당연한 권리들이 행사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누군가들이 희생되어온 건 아닌지를 함께 살펴봐야죠. 사실은요, 비장애중심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어떻게 살건 그냥 살아가고 있는 거가 그 자체로 이미 장애인들에 대한 이 사회의 테러에 동조하고 있는 걸 수도 있는 거거든.
이런 태도는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어떤 폭력이 벌어지건 말건, 자기는 그거를 계속 용납하면서 살아가겠다는 거잖아요. 누구는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폭력을 묵인하고서 자기 혼자 그냥 꾸역꾸역 올라타서 출근을 하는 게 정말로 그렇게나 마냥 당당하면 안 되는거 아닌가요?
억압과 차별이란 게 대부분 그래요. 딱 마음을 나쁘게 먹고서 저놈의 자식들 쓸모도 없고, 꼴 보기도 싫으니까 혐오하고 차별해야지! 이러는 경우도 물론 있긴 하죠. 그런데 대부분은요, 그냥 옆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을 방치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 P59

동조해버리면서 억압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데 복무하는 경우가많아요. 자기가 이 사회의 차별을 묵인하고서, 큰 관심 안 두고 그냥 살아가는 게 별일이 아닌 거 같죠?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나쁜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태도가 다 누구한테는 엄청난 재앙이 되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런 태도들이 지속되면서 세상은 계속 나아지지가 않는 거지. - P60

지금 지하철행동도 그때랑 똑같아요. 지금 우리가 투쟁하는것도 결국 비장애인 모두에게 선물이 될 거예요. 당장은 이 말이잘 안 다가올 수도 있는데요. 특히 우리에게 공감할 생각 전혀 없는 분들께는. 그런데 공감을 못 한다고 해봐야 사실은 사실인 거야. 사람이 언제 어떻게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 모르거든요. 지금처럼 불안한 조건 속에서는 누구든지 나락에 빠질 수밖에없기도 하고. 이 능력주의 사회에선 경쟁에서 탈락하는 순간 사실은 지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공적으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들이 돈 논리로 다 무시를 당하게 되면은 그런 것들을 다 개인이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거거든. 완전 각자도생이 지배하는 사회인 거지. - P63

우라가 단기적으로는 우리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할지도 몰라요. 아주 처절하게 패배를 할지도 모르죠. 그런데요, 이런 생각이 발아할 수 있는 씨앗을 이 사회 컨베이어 벨트 한복판에 심어둔 것만으로도 저희는 이미 이 사회에 희망을 심는 데 성공한 거라고 봐요. 그리고 그 희망이란 거는 정말로 모두에게 선물이 될거야. 장애인들의 존엄이 인정되는 세상은요, 결국 모두의 존엄을위한 토대가 될 거니까요. - P64

나치는 비용 논리 열심히 홍보하면서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안락사‘라는 명목으로 장애인 대량 학살을 자행하기도 했어요. 이걸 ‘T4 작전‘이라고 부르거든요. ‘T4‘라고 하니까 뭐 대단한게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심오한 이름은 아니에요. 히틀러가 장애인들 죽이라고 지시하면서 만들어진 기관의 본부가 베를린 티어가르텐 4가에 있어서 거리 이름을 따와 암호명으로 T4라부른 거죠. 이 작전으로만 장애인이 7만 명 죽었어요. 나치가 장애인을 죽인 게 이게 다가 아니기도 하죠. T4 몇 년 전부터 시설에다가장애아동들 모아다 가둬놓고 굶겨 죽여보기도 하고, 약물 주입해서 죽여보기도 하고. 전쟁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점령지 장애인들은 그냥 총기 난사해 죽여버리기도 하고. 계속 죽이다 보니까이제는 어떻게 죽이는 게 제일 효율적인지, 어떤 게 제일 돈이 적게 드는지 공부도 해보고. - P72

목소리가 없는 사람, 존재 자체가 삭제된 사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이란 게 딱 이런 거예요. 아무리 비극적인 일을 당해봐야, 아무리 비참하게 죽어봐야 이 희생자 당사자들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려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없다는 거.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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