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 투쟝
우리는 "여성의 식량 안보를 위한 라이프치히 호소"를 작성해 2020년까지 산업형 농업과 세계 자유 무역을 통해 전 세계에서 기아를 종식하려는 식량농업기구의 전략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여성과자연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다음을 요구했다.
• 세계화 대신 현지화와 지역화 • 공격적 지배 대신 비폭력 •자연과 종의 완전성에 대한 존중 •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 대신 자연의 일부로 이해 •생산 및 소비에서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 보호 •식량 안보에 대한 책임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공유 - P268
14 변방에서 주류와 맞서다
제1회 세계사회포럼(WSF)은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큰 성공이었다. 포르투알레그리에서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표어를 만들었다. 이 표어는 전 세계로 퍼졌다. 이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본주의 ·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유일한 대안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들이길원치 않는다는 신호였다. 포르투알레그리에서는 이 ‘다른 세계‘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시작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시민들이 스스로 시의 재정 분배와 사용처를 결정하는 이 도시의 ‘참여 예산‘은 곧 전 세계많은 프로젝트의 본보기가 되었다. 나는 포르투알레그리와 2004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했다. 독일 아탁 회의 이후 아탁과 우리 사이에 최소한의 합의가 있지만 심대한 차이도 있음이 분명해졌다. 한 예는 아탁이 작성한 원칙 성명서로 여기서는 세계화에 저항하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아탁은 원칙적으로 자신들을 세계화에 대한 비판자로 간주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세계화에 대한 거부를 고수했다. 나는 이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진정 민주적•참여적 • 반자본주의적 · 환경 및 인간 친화적인 ‘세계 경제‘를 상상할 수 없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개인이 그 혹은 그녀 고유의 삶에 대한 주권을 되찾을 어떤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은 채 소수의 최상위 엘리트에게 세계인의 일상생활을 직접, 깊이 좌우하는 권력을 주면 필연적으로 전체주의가 된다. 세계무역기구가 시행하는 정책과 다국적 기업의 사실상 세계 지배는 이미 일종의 전체주의와 우리를 기다리는 새 - P293
로운 전쟁을 시사한다. 나는 이런 새로운 경제 정책에 반발하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분노를 이해한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주권, 즉일. 생계·물· 토지 · 인프라 · 문화 · 식량·주거· 종자 • 숲 • 공기 · 교육 · 건강·정책 · 경제에 대한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들은세계무역기구와 같은 국제 관료제나 다국적 기업 경영진에게 지배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 P294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이는 반세계화 운동에서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표어였고, 반세계화 국제 회의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글로벌플레이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보다 큰 힘으로 전 세계, 삶, 생명을이익만을 위한 상품으로 변화시키는 계획을 이어갔다. 이는 특히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반영되었다. 쾰른 폭행 피해 여성 쉼터를위한 운동을 처음 시작한 이래 관심사이던,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이이 협정을 통해 다시 나타났다. 여성은 무급 혹은 최저 급여를 받는 서비스 제공자의 전형이 되었다. - P295
지역 전체가 세계 농업 시장에 무릎을 꿇었다. 소규모 자급농들은 이제 자신, 지역, 수출 시장을 위해 타피오카를 재배하도록 강제당했다. 특히 돼지 사료용 타피오카를 가공하는 농산업은 유럽 육류 산업 확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태국 농민들은 빚을 지고, 농장을 팔고, 최후의수단으로 딸들을 팔아야 했으며 이들은 방콕과 태국 남부의 관광 천국에서 유럽과 미국 남성을 섬겨야 했다. 그러므로 정부, 유엔, 세계은행이 개발이라고 부르는 것의 종착역은 성매매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독일문화원장의초청을 받아 강연했다. 여기서도 젊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전통적 가부장제 구조로 거슬러 올라가며, 세계적 자본주의 자유 무역으로 인한 방글라데시의 경제 변화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연관성은 곧 명확해졌다. 일본, 한국, 독일, 미국 섬유 회사가 섬유 생산을 방글라데시로 이전했고 그 이유는 저렴하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젊고 숙련되지 않은 여성들, 심지어 불평 없이 옷을 꿰매는 어린이들일 때도 있으며, 서구 시장을 위해 밤낮으로 초과 및 교대 근무를 했다. - P297
1985년 유전자 및 재생산 기술에 반대하는 여성 회의가 더 많은 행사로 이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2003년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반대하는 여성 회의 또한 물·보건 의료 체계 · 교육 · 에너지 공급과 같은 서비스 부문 민영화와 삶을 상품으로 변형하는 것에 반대하는 새로운 활동을 낳았다. 그럼에도 이 회의 이후 나는 녹초가 되었고 이런 큰행사를 계속 조직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 P301
15 새로운 전망을 찾아서
"만일 세계적 자유 무역에 반대한다면 대안으로 어떤 경제와 사회를 제시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대안은 없다" 증후군을 거부할 때 시작한다.
세계화 대신 지역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사회포럼의 표어였다. 국제 농민 네트워크인 비아 캄페시나(ViaCampesina)는 다음 표어를 공식화했다.
저항을 세계화하라 희망을 세계화하라 - P310
우리의 자급자족 마을이 잘 단장한 교외 도시처럼 보이는 것은 문자그대로 내 마음을 무너뜨린다. 마을에 농부가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은것, 젊은이 대부분이 돈을 벌기 위해 무의미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산책하면서 단일 경작이 굽이치는 언덕을 점령하는 모습을 본다. 단일 경작으로 옥수수를 재배하는데 이는 어쩌면 유럽연합과 독일에서 특별 보조금을 주는 바이오디젤용 유전자 조작 옥수수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이후 쭉 나를 둘로 나누는, 향수와 먼 곳에 대한 동경 사이 오랜 긴장은 어머니의 마을에 돌아온다고 해서 풀리지 않았다. 나는오랫동안 ‘마을과 세계‘ 혹은 ‘세계와 마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이런 긴장을 관리하려면 큰 힘이 필요하지만 나는 서로 다른방향으로 이끌리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이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살아갈 힘, 삶에 대한 열정을 주었다. - P316
에필로그-좋은 삶
내게 자급이란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가 좋은 삶을 누리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자연의 충만함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어머니다. 즉 우리는 모두 어머니 지구의 자녀이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좋은 삶은 우리가 그녀의 아름다움, 놀라운 다양성, 풍부함, 야성, 힘, 그리고 생명을 창조하는 관대함· 창의성·능력에 경탄한다는 의미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이런 창조성을 공유한다. 우리 역시 생명을 창조하고 자라나게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를 물려준다. 나와 어린이들에게 자연은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다. 좋은 삶은이렇게 살아 있다는 기쁨을 경험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런 세계관에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철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삶의 철학은 ‘우리‘와 ‘타인‘을 더 나은 관계로이끌 것이다. 이기심 대신 관용이, 경쟁 대신 협력이 있을 것이다. 사유재산 대신 공유 재산(토지·물·공기 · 지식), 개인들의 고립 · 소외 · 분열 대신 협력, 이웃 및 외국인과의 우호 관계가 있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함께 나눌 것이다. 자급은 자족· 상호성·공동체성(누구도 섬이 아니다), 즉공동체와 지구에 대한 책임을 공유함을 의미한다. 좋은 삶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너무 많은 이들이 일을 집으로 여긴다. 좋은 삶은 일을 마친 후, 저녁, 주말, 휴일, 시험에 합격한 후, 차나 집을 산 후, 직장 생활을 마친 후, 혹은 일종의 내세에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좋은 삶에 대한 우리의 철학이라면 좋은 삶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삶은 이 지구에서, 일을 마친 후가 아니라 일하는 동안 시작해 - P330
야 한다. 우리는 일의 과정, 우리가 돌보는 생명들, 즉 어린이·노인·동물·식물을 만지는 감각을 즐겨야 한다. 또는 나무든 채소든 흙이든 금속이든 천이든 우리가 일할 때 쓰는 재료를 만지는 감각을 즐겨야 한다. 음악, 미술, 글쓰기, 생각하기, 토론처럼 만질 수 없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일을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제기술과 역량, 즉 ‘생활 능력‘도 배운다. 결국 우리는 머리만 있는 것이아니라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존재이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알고 싶어 하고 일의 부담뿐만 아니라 그 결과도 다른 사람과공유하길 원한다. 아무도 소외된 채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은 부담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이기도 하다. 오늘날 좋은 삶은 무엇보다도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짧은 시간에 많이 일해야 한다는 압박을 끝낸다는의미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속도를 줄이는 것으로독일어로는 ‘엔츨로이니궁(Entschleunigung)‘, 즉 감속이다. 우리가 "이제충분해. 좋은 삶을 사는 데 이 이상은 필요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는한 ‘감속‘은 없을 것이다. (은행가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끝없는 탐욕은 결코 "이제 충분해"라고 말하지 않는 데 기인한다. 만족을 아는 것이 좋은 삶의 비결이다. 간디가 "우리의 필요는 충분히 채울수 있지만 우리의 탐욕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던 것처럼.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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