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퍼
의존하는 독립

소유자 개인주의
스피노자 <에티카>

이양구_희곡_저마다의 먼 강으로

압록강 의사는 남한으로 이주해 ‘독립‘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북한에 두고 온 아버지가 죽어 간다는 얘길 듣고서야 깨달은 거예요. 독립해서 산다는 게 서로가 영원히 잊고,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말이에요. 서로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자각하고 그 관계를 분명히 하는 데 있다는 걸 말이죠. - P28

고양이 맞아요. 최하영은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민족의 죄인‘으로서 처단당할 날만을 기다리며 장인의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어느 날 임시정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요.
은행나무 장인 집이 저기 대학로 명륜동이잖아요. 왜정 때부터 지나다니는 걸 내가 많이 봤죠.
고양이 그렇군요. 1945년 12월 최하영은 처단당할줄 알고 나갔다가 만난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로부터 장차 수립될 대한민국의 헌법을비롯하여 입법, 사법, 행정 등 각 분야에서 수립 시행해 나갈 법 제도적 기초를 정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은행나무 친일파들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는 거네요?
고양이 지은 죄를 씻으라는 거였죠.
은행나무 …….
고양이 신익희 입장에서는 그렇게 전문적인 일을 그때 또 누구에게 맡길 수 있었겠어요?
은행나무 …… - P34

은행나무 내 그늘 밑에서 쉬다 간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네요. 분단된 뒤로는 정부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북한을 이롭게 한다고 잡아가고 했으니 참 독재 정부가 오래도 갔지요. 민주니 평등이니 하는 당연한 요구도 억압하고 차별했어요.
고양이 수백 년을 사셨으니 그걸 다 지켜보셨겠군요.
은행나무 그랬죠. 분단이 또 다른 분단을 낳는달까요?
고양이 네. 그런데 정말 먼 옛날얘기 같네요.
은행나무 멀리 있다기보다는 날마다 발 디디고 있는 지반이라고 봐야죠.
고양이 지반이요?
은행나무 네. 지반은 흔들리거나 갈라지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지만 일단 균열이 가는 순간 일상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 버리잖아요. 뿌리뽑히는거죠. - P36

송재홍_래퍼들의 갤럭시

그들 각자의 삶에 새겨진 힙합은 무슨 일을 하든 각자의 단독성을 이룰 지혜와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역설적인 현상에 모순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의존하는 독립. 힙합에서 래퍼들과 내가 함께 배운 지혜는 이렇듯 서로 의존하면서도독립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 P65

김강기명_독립 너머 연립

이러한 소유자 개인주의는 한편으로 중세의 신분적 질서 속에 권리와 권한이 묶여 있던 인간을 개인으로 풀어놓은 사유라 할 수 있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이개개인으로 풀려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지를 설득력 있는 모델로 제시했다. 하지만 소유자 개인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경제적 관점은 동시에 인클로저(울타리 치기)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제 대륙의 식민화를 통한 자본의 시초 축적,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내재한 계급(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의 분할, 노동의 비참을 낳거나 정당화한사상의 근저에 놓이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전제이기도 하다. - P78

자연상태는 거대한 불평등의 상태, 갈등 혹은 폭정이 끊이지않는 상태가 된다. 바로 이 불평등과 갈등이 낳는 취약성 때문에 인간은 정치 공동체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인민의 바깥에 혹은 위에 군주 혹은 의회라는 최고 권력을 두는 홉스와 로크와는 달리, 스피노자는 모두가 모두에게 권리를 양도하며, 개인을 다중(multitudo)으로구축하는 민주정이야말로 절대적 통치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내재적 개체화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다중은 인간이 개인의 환상을 넘어합력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신체가 되는 개체화 과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참여과 합력, 공존, 그리고 돌봄과 의존을 통해서만 우리는 개인 혹은 개체로서는 피할 수 없는 취약성을 벗어나 진정한자유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독립‘의 환상이 그보다 훨씬 더 큰 자연스러움인 ‘연립‘의 현실을 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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