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근_덫에 걸린 집
기수 (담배 끄며 냉정하게) 그런데 아마 경찰에서는 이런 사건의경우 피해자가 과연 얼마나 결백했나 하는 부분에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평소의 품행, 부부의 성격, 범인과 평소에 안면은 없었던가 하는 식으로 잔인할 만큼 이것저것 물어 가며 파고들 겁니다. 어떤 종류의 힘이건 한두 가지는 나올 테고………… 여러모로・・・・・・ 별로 유리하지 않을 겁니다.
장모 (당황하며) 피해자도 의심을 받는다는 말이요? 왜? 당한 것만도 분한데 왜 의심까지 받아?
기수 꼭 피해자만 옳다는 보장도 없을 테니까요. 경찰에서는 성범죄의 팔십 프로는 피해자 측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더군요. 흉영재악범이 많다 해도 아무나 그런 일 당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일동 타격 받고 침묵한다.
정원, 어쩔 줄 모르고 외면한다. - P285
고정희(1948-1991)
고정희는 한국에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정립한 이론가이자 뛰어난 실천적 전범을 보인 시인으로 여성문학사에서 평가된다. 여성주의 운동가로서의 강인함과 이론가로서의 치열함, 인으로서의 열정과 섬세함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고정희는 한국 현대 여성 시의 역사는 고정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에 걸맞은 면모를 지녔다. 씻김굿, 마당굿 등 굿의 형식, 판소리 사설의 형식 등을 적극 계승하고 변용해 여성 민중문학의 형식을 창안한 점, 여성적 글쓰기의 실천을 통해 한국 현대 여성 시의 스펙트럼을 내용과 형식 면에서 확장하고 심화한 점, 민중·민족· 젠더를 둘러싼모순들이 교차하는 자리를 정확히 관통했다는 점에서 고정희 시의여성문학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P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