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피해자 의식의 악덕 - 분노의 약점
이 칸트적인 사상은 일찍이 페미니스트 전통에서 의문에 부쳐져 왔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들의 인격과 포부가 불평등 아래서어떻게 손상되는지를 분석했다. 그녀는 여성들이 굴종, 감정적 통제력 상실, 자기 합리성과 자율성에 대한 자기 신뢰의 부재를 지나 - P92
치게 자주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한 이것들이 남성의 선의에 의존하게끔 내몰린 여성들에게서 보이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특성이라 주장했다. 수줍고 순종적인 소피(Sophie)를 여성 인물의 규범으로 찬송하는 장 자크 루소를 비판하면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도 남성과 같이 온전히 자율적 주체로 성장할 기회를 가져야만 하고, 그리하여 자신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모두획득함으로써 스스로의 품위와 선택할 권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2 이러한 기회들이 거부당할 경우, 그들이 겪는 고통은 존재 자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 P93
꽤 다른 철학적 전통에 속해 있긴 하지만,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존 스튜어트 밀 또한 남성에 의한 여성 ‘종‘이 지닌 최악의 특질 중 하나가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면에 있다고 주장했다. 1장에서는 몇몇 구절만 살펴보았는데, 이제 밀의 전체 주장을 보도록 하자.
남성은 여성의 종속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서까지 소유하기를 원한다. 가장 난폭한 이들을 제외하고, 모든 남성은 여성들로부터 자신들과 가장 가깝게 연결된 존재를 소유하길 욕망한다. 즉 여성이 강요된 노예가 아니라 의지적인 노이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총애할만한 노예 말이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여성의 정신을 노예화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다른 모든 노예의 주인들은 그종속을 유지하기 위해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든 종교적인 두려 - P93
움이든 두려움에 의지한다. 여성의 주인들은 단순한 복종 이상을 원하므로 교육을 남성들의 목적에 맞추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모든 여성은 매우 어릴 때부터 이상적인 여성이란 남성과매우 상반된 존재라는 신념 속에서 훈육된다. 자기 의지도 없어야 하고 자기 통제도 불가하며, 오직 종속적이어야 하고, 그리하여 타인의 통제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이런 식으로 훈육되기 때문에 사회적, 법적 권력이없는 조건에서 남성을 기쁘게 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 그러니 남성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삶의 주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게 된다.
일단 여성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할 이 엄청난 수단을 쥐고 나면, 남성의 이기심은 여성을 종속 상태에 묶어 두기 위해그 본능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그 방법은 여성들에게 유약함과 순종을,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모든 의지를 남성의 손에 맡기는 것을 성적 매력의 중요한 부분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 P64
같은 맥락에서 저명한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 마르시아 호미악(Marcia Homiak)은 진짜 미덕이란 자기 자신의 행위를 향유하는것, 그리고 타인들과의 자신감 있는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합리적인 자기애‘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면서 성차별주의가 너무도 자주여성으로부터 그 기쁨과 자신감을 앗아 간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통찰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앞으로 이 논의를 주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 P103
‘다른 편‘에 있는 모두에 대한 불신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 헤카베는 폴리메스토르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남자를 믿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이 페미니즘의 일반적인 양상이다. (평등권 투쟁 양상도 같다.) 내가 더 젊었을 때 이성애자 여성은 페미니스트 명분에 불충한다는 죄목이 종종 따라붙었고, ‘여성 지향적 (woman-oriented) 여성‘이란 말은 페미니스트와 레즈비언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존경할 만한 페미니스트 집단에서도 구성원들에게 남성들과직업적으로 협력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곳도 있었다. (이는 평등을추구하는 다른 집단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향이다. - P105
분노의 약점
오늘날 페미니즘에도 이런 구분이 필요하다.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할 때, 그리고 건설적인 생각을 띠고 보복주의를 거부할 때, 분노는 힘을 갖는다. 그리하여 함께할 때 우리로 하여금 근본적인 신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희망하게 한다. 눈앞의 보복주의를 따른다면 분노는 강력함과 중요성을 모두 잃는다. 우리는보복주의에 갇히는 것이 인간의 약점임을 잘 알고 있다. 사형 제도의 맥락에서 보복주의의 약점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나는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이 제대로 보고 있다고 믿는다.) 페미니스트 투쟁 - P111
에서 보복적인 분노가 주요하다고 옹호하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마틴 루서 킹과 그의 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복적인 분노와 내가 이행 분노라고 부르는것이 분명하게 공표되고 중심 논의가 될 때에도, 분노의 가치에 대한 페미니즘 논의는 이 구분을 무시하고 거칠게 짓밟는 경향이 있다. 응징만을 위한 분노도 있다는 사실에 적응하기는 꽤나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분명하지만은 않은 신뢰와 근본적인 사랑이 필요하다. - P112
2부 문제를 직면하기 시작한 법
소송의 영역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희롱과 성폭행 사이에 교집합이 많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미국에서는 이 두 범죄를 법적으로 굉장히다르게 취급하고 있음을 우선 짚고 가자. (성희롱범은 성폭행을 저지르겠다고 위협하거나 혹은 실제로 저지를 수 있다. 성폭행은 ‘퀴드 프로 쿼 (quid pro quo)‘, 즉 대가성의 일부 또는 적대적 근무 환경이라는 성희롱의 두 가지 주요한 징후를 모두 보일 수 있다.) 성폭행은 범죄 행위로 다루어지는 형법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이는 자기 사건의 증인이기도 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하면, 가해자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 국가(검사)가 원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고인은 보통 개인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권리를 인정된다. 양형 거래가 없는 한, 유무죄는 합리적 의심기준에 따라 재판을 통해 결정된다. 반면 성희롱은 1964년 민권법 ‘타이틀 세븐‘에 근거한 민사 범죄다. ‘타이틀 세븐‘은 일반적인 시민의 평등권에 대한 것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규다. 성희롱은 인종차별처럼 성별에 기반을 둔유해한 차별 범주로 인식되어 왔다. 5장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여기서 피고는 개인이 아니다. 피고는 회사나 근무지로, 성차별 방지에방만했다는 죄목을 얻는다. 성희롱 사건에서 이름이 거론된 개인들 - P120
의 구체적 행동들 역시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검찰 측에서는회사가 성희롱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것을 증명해야 한다. 반면 통상적인 민사사건이 그렇듯 간혹 집단이 원고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원고는 주로 개인이고 정부가 원고인 경우는 없다. 개인 범죄자는 추가적인 형사 고발을 당할 수도 있지만, 전형적인 성희롱 사건에서 개인에 대한 징계는 회사나 기업의 몫으로 넘겨지기 때문에 조직들의 책임 의무가 법적으로 주요한국면이 된다. 따라서 성희롱법의 억제 요소는 대체로 조직을 향해있다. 기업들이 성희롱을 예방하거나 근절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벌금을 맞닥뜨려야 한다. - P121
한 역할을 맡은 것이 학문적인 법이론이었다. 맥키넌의 1978년 저서『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성희롱(Sexual Harassment of Working Women)』과 그녀가 변호사로서 맡았던 두 개의 큰 사건들은 커다란 차이를만들어 냈다. - P123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유명한 영웅들을 기대해선 안 된다. 학술적 글은 성폭행법을 가치 위주로 밀어붙여 왔다. 그중 하나가2부에서 살펴볼 스티븐 슐호퍼(Stephen Schulhofer)의 『원하지 않은섹스 (Unwanted Sex)‘다. 그와 함께 공동 강의를 하면서 이 영역에대해 배우게 된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또한 변호사이며 학자인 수전 에스트리히(Susan Estrich), 특히 그녀가 쓴 『진짜 강간(RealRape)‘이 가장 핵심적인 기여를 해 주었다. 그녀는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no means no.)"라는 기준을 세운 주요 지지자이다. 그러나 전장의 참호들 속에서, 법 개정을 논의하던 주 의회에서, 폭행당한 피해자들의 정의를 위해 변호사들이 논쟁하던 법정에서, 법적쟁점에 대해 갑론을박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배심원 평결에서, 무비판적으로 관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판단을 내리려던, 1, 2심 판사들의 판사실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4장에서는 이런 직접적이고 보복적이며 미완성인 개정 운동의 주요한 지점들을 따라가볼 것이다. - P124
4장 성폭행에 대한 책임의 의무 - 간략한 법률사
성범죄에 대한 조처와 재산죄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 태도 사이에 존재하는 이 이상한 불균형을 주목하자. 만약 내가 당신의 확실한 허락 없이 당신의 지갑을 가져간다면 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당신이 나와 싸우려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나자신을 변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남자가 여성과 성관계를 가질때, 그녀의 사적인 신체 공간을 침범할 때, 이 체제는 그녀가 육체적인 저항을, 심지어 위험을 마주한 상태에서 자주 드러내야만 그것 - P127
을 범죄라고 생각한다. (무력 행사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소는수 있겠지만) 절도에 대한 유죄 선고는 절도범이 절도 행위에 필요이상의 힘을 사용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1992년이 되어서야 뉴저지 법원에서는 명백하게 이전의 전통을 거부하는이례적인 판결을 통해 강간에서의 ‘무력‘을 단순히 "그 행위를 낳는데 필요한 힘을 포함한 비동의 삽입 행위"로 정의했다. - P128
새삼스럽지만 그러한 법들은 여성들이 대체로 재산으로 정의되던 시대에서 유래했다. 여성은 사람의 형상을떤 사물이었다. 법의 주체성에 대한 부정은 더욱 심화되었다. 강간을 고발한여성은 보통 그녀의 과거 성생활에 대해 수치스러운 질문을 받게되었다. 이상하게도 여성이 ‘순결하지 않다‘는 사실은 문제가 된 특정성관계에 대한 동의로 간주되었다. 왜 이러한 추정이 성립되는가?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그들이상한 브로콜리 한 접시를 허겁지겁 먹을 것이라 추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간 재판에서는 이런 종류의 ‘추론‘이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추론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해 오직 두 가지 이미지만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저항할정도로 순결한 여성이거나 아니면 뭐든지 허락하는 ‘창녀‘이거나. - P129
1976년 네브라스카주는 미국 전역에서 최초로 강간법에서 ‘결혼 생활 제외‘라는 조항을 삭제했다. - P135
1983년에 있었던 셰릴 아로호(Cheryl Araujo) 사건은 페미니스트 법적 투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1988년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피고인」이 이 주제를 다루었는데, 나는 이 영화를 최고의 법정물로 꼽는다. 「피고인은 사건을 충실하게 그려 내면서 하나의 커다란 변화를 보여 준다. 실제 강간범들은 포르투갈 출신의 노동 계급남성들이었으나 영화에서 이들은 대학생들로 나온다. 개인적으로이 선택은 현명했다고 보이는데, 감독은 특정 계급이나 인종을 펌하하지 않으면서도 강간 문화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그려 내고자 했다. 물론 실제로도 그러하다. - P136
‘싫다는 싫다를 의미한다.‘가 아직 미국 전역에 적용되는 법은 아니다. 스물세개 주는 강간법 판결에서 여전히 성적 행위를 완수하는 데 필요 이상의 힘이나 그러한 힘을 쓰겠다는 위협 이상의 물리력을 요구하고있다. - P139
더욱 큰 문제는, 섹스가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없이 빠져드는‘ 유의 것이라는 생각이다. - P141
하지만 내가 줄곧 주장해 왔듯, 강간은 권력 남용의 문제다. 강간은 일차적으로는 성적 욕망도 끌림의 표현도 아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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