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성
문화적 인종주의
상상된 공동체
베일 쓰기 시선의 역전

5장. 호주의 여성 이민자 베일 문제

그 결과 호주 무슬림 남성 이민자의 폭력성은 호주의 주류 사회가 중요시하는 호주의 가치, 즉 ‘호주(Australianess)‘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강조된 호주성에는 반인종차별주의, 세속주의, 젠더 평등이포함된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호주 주류 사회에서 무슬림 이민자를 인종적으로 ‘타자화‘하는 동시에, 무슬림 여성 이민자와 비무슬림 호주 여성이여성 혐오자인 무슬림 남성에게 억압받는 피해자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에 따라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문화와 젠더 평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호주 주류 사회가 나서서 무슬림 여성과 비무슬림 여성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 P160

다른 인종주의 담론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인종주의에서도 민족주의 이념이 담론의 핵심에 자리한다(Wren, 2001: 143ff). 18~19세기에 확산된 유럽의 민족주의 이념은 민족국가를 하나의 문화적 단일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 일례로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1991)에서 민족을 문화적으로 같은 뿌리를둔 상상된 정치 공동체로 정의하고,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남남이더라도 서로 공통된 이해관계를 지닌다고 주장한 바 있다. 로버트 마일스(RobertMiles)는 영국을 예로 들어 인종과 민족을 연계했다. 그는 ‘상상된 공동체‘로서 영국을 경계 짓고, 그것을 에워싼 민족주의 이념의 내면에는 인종주의가 자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Miles, 1987: 38). 즉,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영토적으로 하나로 묶인 공동체로서 영국을 상상하려면 공통된 관심사를 공유하지 않으며 배제의 대상인 ‘타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이바로 다른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라는 것이다. - P165

서구 담론에서 베일은 ‘억압받는 여성‘과 ‘저항하는 여성‘이라는 이중적의미를 띠고 있다. 즉, 베일을 쓰고 있다는 것은 ‘보여지는(seen)‘ 것을 거부하면서 ‘보는(seeing)‘ 시선은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베일 쓰기는 여성에게 ‘시선의 역전(gaze reversal)‘을 제공한다(염운옥, 2010: 15에서 Frank, 2005 재인용). 여기서 주목할 점은 베일을 쓴 여성의 이런 특징이 식민 지배에 강력히 저항한 무슬림 여성의 저항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 P167

이슬람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의 베일 착용은 이슬람을 지킨다는 종교적 의미, 무슬림 공동체에 속한다는 정치적 의미, 가족의 요구를 수렴한다는 사회적 의미, 성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는 윤리적 의미가 있다(황병하, 2010: 61). 그뿐만 아니라 앞서 설명한 바처럼 서구 식민 경험이 있는국가에서는 베일 착용이 종교적 정체성 구현의 상징이자 저항의 도구로사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구 이민 국가에서 무슬림 여성 이민자의 베일 착용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 P169

이후 2002년 기독교민주당 의원 프레드 나일(Fred Nile)이 연방과 주선거를 앞두고 무슬림 여성 이민자의 부르카 착용 금지 법안을 제출한 것을시발점으로, 히잡 또는 부르카 착용 금지에 관한 보수 정치인들의 공식 발언이 이어졌다(Ho, 2007: 293). 그러한 발언에는 무슬림 호주인들이 호주의 주류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베일 쓴 여성의 이미지가 호주의 주류 문화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이슬람교가 여성의 복장까지 규제한다는 점에서 다른종교와 다르게 남녀를 분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그들이 가톨릭 여성 신자가 종교적 이유로 베일을 쓰는 것을 무슬림 여성의 베일에서처럼 종교와 호주의 가치를 연계해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라고 지적받았다(Randall-Moon, 2007: 27). 이러한 모순점은 실제 호주의 보수 정치인들이 언급한 호주의 핵심 가치 또는 주류 문화에 기독교 세속주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호주성의 이중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P181

실제로 2000년 초반부터 줄곧 무슬림과 비무슬림 호주인 간 논란의 쟁점이 되어온 베일 착용에 대해 상당수 무슬림 호주 여성은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선택이냐 강요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선택과 강요의 논의에 앞서 호주 사회에 확산되는 베일 논쟁으로 자신들에 대한 비무슬림 호주 남성의 성폭력, 추행, 베일 관련 폭력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무슬림 공동체와 가족 내에서도 베일 착용과 종교적 규제를 따를 것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 P189

지난 10여 년 동안 호주의 공공장소에서 베일 착용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법안이 몇 차례 제출된 바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통과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호주 헌법 제116조, 즉 "연방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은 베일 착용 금지가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주장에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헌법정신을 이유로 호주 정치인들은 무슬림 여성 베일 착용 금지 법안의 통과를 반대한다. 또한 앞서 소개된 학자들의 주장처럼 호주가 제도적으로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의복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이는 결국 베일 착용을 의무화하는 아랍 이슬람 국가와 다를 바 없다는여론도 베일 금지법 부결에 기여했다. 더욱이 그동안 이민자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기념한 다문화주의를 호주성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베일 착용 금지 법안이 곧 다문화적 호주성을 위협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냈다(Hall, 2010).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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