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 혹시 했는데 역시나 영화 <꽃잎>의 원작이구나.
엄인희 희곡 <그 여자의 소설>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이남희 <플라스틱 섹스> -> 90년대 이런 소설이 있었구나!

시대 개관

민중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1980년대 변혁 운동의 열기 속에서도 여성들은 외딴 방에 고립되어 사라졌거나, 여성이 남성과 함께 변혁의 주체로 광장에 참여했으면서도 여성운동은 전체 변혁 운동의 한 ‘부분‘으로 축소되어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1990년대여성문학은 여성을 고립과 침묵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여성의 말해지지 않은 욕망과 가치를 복원함으로써 광장과 방의부당한 분리에 맞서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 작업은 한편에서는 1980년대 운동권 문학을 여성주의적 개입과 성찰을 통해 바라보며 성 평등이 병행되지 않은 민주화는 여성을 주변화시키는 가부장적 기획의 연장이라는 점을 밝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금기와 제도적 억압에 가로막힌 여성들의 욕망과 열정을 드러내어여성의 자유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특히 성차화된 개인으로서 여성의 자유에 대한 실험은 협소한 계급적 · 민족적 이데올로기 층위에머물러 있던 정치성의 범위를 심리적·육체적 층위로까지 확대하도록 요구했고, 재현의 틀을 넘어 무의식적 충동과 신체적 정동을 드러내는 ‘체현된(embodied) 글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했다. - P17

1990년대 여성문학이 수행한 이 전투는 크게 여섯 개의 전략으로 전개되었다. 1) 1980년대 민중운동에 대한 젠더화된 기억과 애도의 글쓰기, 2)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대한 도전, 3) 모성적 경험에 대한 여성주의적 재해석, 4) 사랑의 탈낭만화와 여성적 욕망의추구, 5) 아버지 질서의 위반과 자기 파괴적 욕망의 추구, 6) 탈젠더화된 포스트개인의 흔적과 마이너리티 상상력의 선취. 아래에서는이 여섯 개 전략들의 중층적 결합으로 1990년대 여성문학의 지형도를 그려 보고자 한다. - P20

최윤_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죽음은 죽은 자에게는 사건이 아니다. 그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혹독하게 생생한 사건이 된다. 죽음은 대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죽음은 완성되어야 할 것의 미완성이기 때문에. - P139

최윤_하나코는 없다

그 자신을 포함해 무리들 중의 누구도 하나코에게 자신들의 결혼 날짜를 알리지 않았다. 딴 친구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알수 없지만 그로서는 그저 단순한 부주의였다. 물론 그는 청첩장을준비하던 때만 해도 그녀에게 보낼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분주한 일정에 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무의식적으로 계획된 건망증. 늦게 결혼을 한 친구들이야 이미 하나코와의 연락이 끊어져서 그랬다고 하지만 적어도 P와 J는, 그들이 하나코와 만나고 있을 즈음에 결혼했음에도 하나코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게 분명했다. J의 결혼식 후에 그가 하나코를 만나 J 대신 사과를 했을 때, 그녀는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설마 결혼식 같은 것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 P164

은희경_새의 선물

진짜 나가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라는 말을 알게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수였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그러므로 이제 내가 아는 어른들의 비밀을 털어놓는 데에 나는 - P318

아무런 거리낌도, 빚진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 P319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생각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모는 포켓판 영어 회화 책과 사전, 고등학교 때의 영어 참고서까지쌓아 놓고 밤늦도록 끙끙대는가 싶더니 간신히 두 장의 편지지를채웠는데 노력은 쓰고 열매는 달다고, 자기가 쓴 그 편지를 눈앞에溫馨높이 쳐들고 읽어 내리는 이모의 목소리는 사뭇 떨렸다.
그날 당장 이모는 자신의 영어 과외 교실로 그 편지를 들고 갔다. 학생들에게 ‘독일어는 울며 들어갔다가 웃고 나오고 영어는 웃으며 들어갔다가 울고 나온다‘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외국어학습에 관한 최고의 금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용하면서 이모는 이번 경험을 통해 영어가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음을 강조하는한편 그럼에도 편지를 훌륭하게 완성한 자기의 영어 실력에 대한감탄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 편지를 학생들 앞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읽어 주었음은 물론이요, 영어 발음이 좀 되는 학생들의 리딩 연습에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 P320

은희경_그녀의 세 번째 남자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구?"
"그래. 만약 결혼해서 그 사람이 불행해지면 그걸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그녀의 오른쪽 엄지와 중지가 왼손가락의 반지를 잡고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결혼한 사람은 모두 불행을 견디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견디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불행이 아니라 권태야. 하지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현상을 바꿀 의지 없이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 권태의 장점이지. 거치 대그녀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반지에서 손을 떼고 찻잔을 들어 식은 커피를 마셨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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