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발전’과 ‘저발전’: 제주 해녀 사회의 성 체계와 근대화
이들은 주로 마르크스주의 분석틀을 활용하여 현대적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전제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사회적 해방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으나, 성별 분업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용 강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확대·재생산하여왔다"는 데 있다(여성평우회, 1985: 3). 실제로 1970년대 이후 가부장적 유물론 논의를 통하여 "산업화 자체가 곧 발전이며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신화는 여지없이 깨뜨려졌다. 여성 노동자가 특정 직종에 몰리거나비공식 부문에 대거 참여하게 되는 현상, 가사 노동의 성격과 가치평가, 그리고 여성의 빈곤화 현상은 여성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중첩된 사회 구조 속에서 이중의 질곡을 지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P306
제주는 육지의 정치 권력으로부터 많은 제한을 받아왔으며 특히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 위주의 행정력과 비공식적 지도자로서의 귀양 선비들의 활동은 제주도의 삶에 무시 못할영향력을 미쳐왔다. 16세기 이후부터 1900년 전후에 걸쳐 일어난 많은 민란에서 보여주듯이 제주는 외적 권력에서 부단히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역사를 보임과 동시에 외적 권력에 아부하는 역사의 이중적면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의 육지에의 정치·문화적 종속과 지배층과 일반 농민간의 이분화, 그리고 특히 지배 엘리트층의 육지 문화에대한 사대주의적 경향은 이러한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변수라 하겠다. - P308
전통적으로 육지가 관개 수리 사업과 가축의 힘을 토대로 한 남성 노동 중심의미작(作) 농업을 발전시켜온 반면, 제주는 생태적으로 특히 토질과강우량 등에 있어 여성 노동 중심의 밭농사 위주로 생업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여기에 해변 지역에서의 잠수업이 첨가되어 제주는 명실공히 여성 노동력 위주의 생산 체계를 이루어왔다. 이것이 제주 사회가 육지와 매우 다른 문화 구조를 형성케 된 주요 기반이라 하겠다. 또한 섬이라는 지형적 변수는 제주 문화의 또 다른 독자성의 근거가 되어왔다. 대중 교통이 편리해지기 전인 최근까지 육지와의 왕래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제주는 외부에 대한 지향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문화를 형성해왔다. - P309
이 용마을의 연구가 단지 남녀 관계 연구의 한 흥미있는 사례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류학이란 실로 "교묘하고 기만적인" 학문이라는 기어츠(1969)의 의견이다. 인류학은 기만적이어서, 우리 자신의 생활과 가장 동떨어진 것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친밀한 것이 되게 하고, 먼 나라 태고적의이상하고 특이한 것을 끈덕지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실은 현재를가장 가깝고 친숙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 P315
기타: 제사 외에는 용마을 남자들이 장기적으로 시간과 정력을 바쳐서 하는 일생의 일 career이란 없다. 국민학교 교사와 면사무소와어협에서 일하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남자들은 그때그때 적당하게시간을 보낸다. 장년 남자들은 동장으로서 보통 2년간 마을을 대표하여리사무소와 어협과 마을간의 중계자 역할을 한다. 주역(周易)을읽을 수 있으며 장례 등 의식 절차에 밝은 노인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부락제(역시 남성들만 참석할 수 있는 유교적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를 서너 마리씩 기르는 남자들은 소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가계에 크게 보탬이 되기도 한다. 집을 짓는 일, 지붕을 이는 일은 남자들이 맡아한다. 젊은 남성들은 어린애를 보는 데 시간을 보내거나 낚시하기 좋은봄·가을이 되면 낚시로 소일한다. 그 외에는 자유로운 시간을 한담과 술로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들은 자주 도시에 나들이가거나 장기적으로 2년 내지 10여 년간) 집을 떠나 육지에서 살다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 P322
용마을에서 강조되는 남성 우위의 이데올로기는 실제로 남성의 우위를 가능하게 한다기보다 여성의 지배를 막는 방어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일종의 집단 숭배 collective fetishism로서의 문화의 상징적 영역이 남성에 의해 종종 지배되고 있다고 머피 Murphy (1974)가 지적했듯이, 용마을의 남성은 제사와 남성 우위의관념을 토대로 한 상징적 영역을 독점함으로써 스스로를 방어하며최소한의 자치권을 지켜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용마을의 남성과 여성의 세계가 엄연한 분리와 대립의 면에서 이해될 때, 육지에비해 더욱 철저히 행해지는 부계 조상 제사 의식과 그 외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유교적 가치 체계(학자 숭상, 노동 천시 등)가 왜 그렇게강하게 남아 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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