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남성다움‘의 구성과 재구성: 사회적 기능과 존속 기제를 중심으로
‘남성다움‘이란 남성으로 태어난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질과 자격, 해야 할 도리 등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구실의 수행과 직결된 개념이다. 앞에 인용한 교수의 말처럼 남성다워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났다고 다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남자 아이도 저절로 남성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즉 ‘남성다움‘ 이란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문화적 현상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본질론과는 거리가 멀다. - P271
앞에서 논의된 사례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유추가 가능하다. 첫째, 남아의 남성화가 매우 문제시된 사회들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1) 남녀 역할의 분명한 분리 2) 어머니의 아동 양육의 독점 3) 남성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비중이다. 역할의 분명한 분리란 남녀 역할이 얼마나 상호 배타적으로 규정되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덜 엄격한 사회에서는 ‘남성다움‘이란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구분이 많고 엄격할수록 ‘남성다움‘이 문제시된다. - P278
이러한 규격화된 관계 구성은 1950년대를 전후로 도전을 받게 된다. "남성의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어렌리크(1983: 12)는 전 시대를 특징지은 "생계 부양자의 윤리"의 붕괴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주요한 관찰을 하고 있다. 첫째는 "부양자 윤리"의 붕괴는 일반적으로인지되고 있듯이 1960, 70년대 여성 해방 운동의 여파로 초래된 것이아니고 자본주의의 단계적 진전에 따른 자생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린 세대가 일으킨, 즉 히피나 ‘역문화counter culture‘ 운동과 더욱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물가가 뛰어오르고 전반적 경제 침체가 예기되는 상황에서 남성들의 부양자 책임은 매우 무거워졌다. 남성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순종적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너무 위험 부담과 긴장이 높은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으며, 이에 ‘성공‘과 ‘책임‘ 보다 ‘신나는 시간‘과 ‘수월한 삶‘을 추구하는 남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 P282
초도로우의 논의의 초점은 ‘모성적 성향의 재생산‘에 있다. 그는 프로이트가 밝혀낸 대상 관계 이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프로이트가제시한 대로 자아 발달의 과정을 무의식적 · 감정적 심리 구조의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초도로우가 프로이트와 크게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가족을 사회 조직의 한 단위로 보았다는 점과 어린 아이의 자아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어머니로 보았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임상을 중심으로 이론을 발전시켰고 또 자신이 남성이었던만큼 한계를 가졌던 것인데, 비교 문화적이지 못했다는 점과 끊임없이 남성, 즉 아버지와의 관계를 분석의 핵심에 놓아왔다는 - P284
점이다. 초도로우는 비교 문화적으로 가족 구조 형태의 다양함을제로 하면서 모성 mothering을 재평가하고 모자 관계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소유적 개인주의 possessive individualism의 전제에 토대를 둔남성 중심적 이론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중심 개념은 자기 사랑 narcissism (Barrett and McIntosh, 1982: 126)으로, 자아형성 과정은 아기가 자기의 주 양육자, 즉 어머니와의 관계에서갖게 되는 일차적 유대 관계에서부터임을 강조한다. 초도로우는 초기에 형성되는 어머니에 대한 일차적 애착 관계에서부터 분리되어개체성을 확립해가는 데에 있어 여아와 남아는 매우 상이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에 따라 매우 다른 ‘관계 형성 능력 relational capacity‘ 과자아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점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 P285
초도로우의 주장대로 현대적 ‘남성성‘과 ‘여성성‘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중단시킬 가능성은 바로 남성이 자녀 양육에 신생아때부터 부모로서 참여하는 것에서 찾아진다. 이를 통해 남성은 진정한 관계 형성 능력을 기르게 될 것이고, 여성은 자신의 양육 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채 자율적 감각을 성숙시켜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미 도구적 이성과경쟁 원리에 깊이 젖어버린 남성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그 성장에 깊이 참여하여 감정 이입적 이해를 토대로 관계를 맺어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먹이고 재우며 회사 일을 ‘처리‘ 하듯 육아를 ‘처리‘ 하거나 지적 자극을 주고 놀아주는 역할만을 분담한다면, 그래서 결국 아내의 정서적 관계 형성의 역할과 대비된 면에서육아만을 담당하게 된다면 부성의 참여의 의미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직업 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한 남성이 육아에 참여한다는 것은 구호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직장 스케줄을 그대로 따르면서 육아를 나누어 담당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능력있고 특혜를 누리는 소수의 남성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아이와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갓났을 때부터 아기와의 정규적인 접촉이 중요하며, 따라서 근무 시간과 ‘일‘에 대한 고용주와 피고용인들의 의식 변화와 새로운 제도 도입이 필요해진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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