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정보 산업_최원형

이런 보건의료정보의 상업적 거래가 얼마나 은밀하게 만연해 있는지, 또 업자들의 주장과 달리 익명화된 데이터가 얼마나 재식별화하기 쉬운지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은 다름 아닌 한국에서 발생했다. 2015년, 한국의 의약품 관련 단체들이 설립한 ‘한국약학정보원‘과 요양급여 청구 프로그램 개발사 ‘지누스가 2011~2014년 사이 약국에서 쓰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집한 보건의료정보들을 당사자 동의 없이 ‘한국아이엠에스‘에 22억 원을 받고 팔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넘겨진 정보는 환자 주민등록번호와 병명, 조제 내역 등이 포함된 47억 건으로, 피해 규모는 자그마치 4,399만 명에 달했다. ‘한국아이엠에스‘에서 정보를 얻은 미국의 본사는 이를 재가공해 100억 원에 국내 제약회사에 되팔았다. 지은이는 책에서 이 사건을 중요하게 언급하며, "세계에서 기술이 가장 발달한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이 환자 의료정보의 상업적인 이용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의 한복판에 놓이게 됐다"고 평가한다.
그 ‘싸움‘의 전선은 ‘비식별화한 것은 활용에 대한 개인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빅데이터산업의 논리와 ‘비식별화한 것이라도 보호받아야 할 개인정보‘라는 개인정보 보호의 논리 사이에 형성됐다.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지만, ‘한국아이엠에스‘ 등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들은 2020년 1심에 이어 2021년 2심과 3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피고들이 줄곧 주장한, ‘식별 - P87

정보를 암호화했기 때문에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고, 재식별화할 의도가 없었다‘는 논리를 재판부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앞서 언급한 데이터과학자 라타냐 스위니의 연구팀이 ‘아이엠에스‘가 한국에서 받은 익명화된 데이터를 연구해, 그 익명화 방법이란 게 주민등록번호 일부를 정해진 특정 알파벳으로 바꾸는 정도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논문을 발표한 것도 재판부의 판단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 P88

핵심 문제는, ‘아이엠에스‘ 같은 기업이 수십 년 동안 보건의료정보를 수집하고 거래해왔던 것을 은폐해온 역사가 보여주듯 ‘상업적 목적‘
이 지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다. 지은이는 "건강 관련 기업들이 의료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숨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환자를 고객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오랫동안 ‘아이엠에스‘
의 배를 불려온 것은 환자들이 아니라 제약회사나 보험회사, 정부 등이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업의 고객 역시 개별 데이터의 주인인 우리들이 아니라 우리를 자원으로 삼는 다른 기업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시장이 주도권을 쥔다면 기업들이 우리에 대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파악할 테고, 그 정보를 이용해 우리의 미래를 빚어내려 할 것이다." 지은이는 특히 의학의 경우 "특유의 방식과특수성을 지닌 산업 분야지만, 다른 경제 분야에 비하면 진짜 고객(환자)을 만족시키는 정도가 훨씬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산업의 효용을 앞세우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개인정보 보호는 빅데 - P90

이터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 따위가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다음과 같은 지은이의 말은 우리에게 아주 간명한 핵심이 무엇인지짚어준다. "큰 그림에서 보면, 건강 빅데이터 시장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더 높은 투명성과 더 많은 동의 절차, 그리고 더 많은 통제다." - P91

살아있는 의료_스티븐 해로드 뷔흐너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대의학은 크게 틀렸습니다. 연구자들은 박테리아(세균)가 자연돌연변이를 통해서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광범위하게 갖게 되기까지는 대략 100만 년은 걸릴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박테리아가 바보인 줄 알았던 거죠. 그러나 박테리아는 고도로 지각력이 있는 존재입니다. 세균은 인간 언어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언어수단을 통해서 소통하고, 자신의 친족을 알아보고 자손을 보호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화학물질들을 만들어냅니다. 박테리아는단세포생물이지만 많은 수의 박테리아가 모였을 때에는 집단적 지능을나타냅니다. 동식물, 곤충 같은 복잡한 생물들도 본질적으로 ‘박테리아공동체‘라고 봐야 하는 거예요. - P93

약초의술은 대부분의 증상을 치료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관리 모델이 ‘질병과의 전쟁‘이 아니라 ‘고통을 완화하는 것으 - P105

로 전환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프게 될 겁니다. 그건 막을 수없는 일이고, 또 막아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약초의학에 의존하게 되면단기간에는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약초는 조제약과 같은 저항성 문제를 일으키기 않기 때문이죠. 부작용도 훨씬 적고, 비용도 싸고, 그리고 재생 가능합니다. 자연분해됩니다. 지구의 생태적 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약초의학은 지속가능한 의술입니다.
식물의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이 세계에 죽음은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철저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인간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한계를 지운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렇지만 그런 한계를 억울해하거나 누군가를 탓하거나 분개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태도야말로 성숙함의 하나의 징표가 아닐까요. - P106

뇌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을 ‘식물인간‘이라고 하잖아요. 어째서 우리 문화는 식물을 기본적으로 수동적이고 지능이 없는 존재라고 보는걸까요?
식물은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의 틀 속에서 반응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지만 전통문화들은 식물을 지능이 있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어떤장소에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지 않으면 봐도 볼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못 보는 것뿐이에요.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식물 신경생리학자들이 식물이 지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가설은 틀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많은 신경세포로 된 뇌를 보유한 식물들도 다수 있다고 합니다. 식물의 신경망은 뇌라는 장기가 아니라 뿌리시스템 속에 내재돼 있다고 해요. 이 네트워크는 인간의 뇌처럼 두개골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흙이 허용해줄 수만 있다면 무한히 자랄 수있습니다. 사시나무의 경우에는 뿌리가 10만 년 이상 동안 자라 수십만평에 이르게 뻗어 나가기도 합니다. - P112

나 자신의 한계, 놓쳐버린 기회, 미처 마치지 못한 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과오를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어요. 회피해온 일들을 처리할 기회인 거예요. 무엇보다 우리는 젊은 자신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생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온전히 진실되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회한에 찬 임종을 맞이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그건 자기자신을 깊이 배신하는 일입니다. 저는 결단코 그런 일은 피하려고 합니다. 내가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남겨둔 일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김정현 옮김)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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