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가족
근대사의 아버지 부재 현상
일본의 양처현모 -> 한국의 현모양처
잡초처럼 강한 한국 여성
쭉쭉 잘 읽힌다.

2장 한국의 가부장제에 관한 해석적 분석: 생활 세계를 중심으로

즉 남성들은 생물학적으로 ‘강한 성 stronger sex‘ 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정적으로 주변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가정 외적 활동을 창조. 확장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가정/공공 영역의 분리와 체계적 성 역할 분업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남성들은 출산과 수유의 임무를지지 않고 여성처럼 인내를 요구하고 감정에 이끌리는 ‘관계‘에 고착되지 않으므로 가정을 벗어난 영역에서의 활동에 몰두하게 되었으며이러한 활동이 소위 공적 조직으로 발전되어 남성 지배 체제의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Sandy, 1974: Ortner, 1974: Meillassoux, 1981). - P65

그러나 뱀버거Bamberger (1974)는 이런 유의 신화가 실은 남성 지배를 정당화시키려는 이데올로기였지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밝혀내고, 모권제 사회가 지구상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실제로 모권제설은흥미롭게도 모권제의 존재 가능성을 믿고 싶어하는 현대의 일부 급진적 여성 해방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부권제로의 이행이 발전적 진행임을 주장하고자 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 내지 단선적 진화론자들에 의해 주창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P66

인류 역사가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의 역사로, 또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피지배의 역사로 전개되어온 것과 공공/가정 영역의 분리 및 공적 영역의 확대는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남녀 평등을 위한 대중적 사회 운동이 인류 사상 가장 공적 영역이확장된 산업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이 점은 새롭게 확인되며, 동시에 대립과 모순이 극대화된 상황에서만 새로운변혁이 가능하다는 역사적 법칙을 재확인하게 된다. - P68

실제로는 조선조 초기의 지배층 남성들의 기득권 투쟁의 와중에서 강조되었다. 물론 한 남성에대한 여성의 충절을 따지는 문화적 요인이 잠재해 있었을 것이나 1474년 경국대전에서 관직 등용에 있어 재혼 여성의 아들에 대한 차별을 법제화한 것은 관직 싸움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가문이 중시되는 사회로 갈수록 강화되며, 지방에서도 이는 똑같은 형태로 향권의 장악 내지 신분 상승을 위해서 이용된다. 구체적으로 특권층에게는 유교적 윤리 실천에 있어 그 집안에 실추자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는 것은 커다란 약점이 되므로 집안 부녀자의 행실을 극도로 통제하게 된다. 몰락 양반층에서는 열녀가 난다는것이 영락한 가문을 일으키는 길이 되기도 하였고, 양민층에서는 요역을 면제받는 혜택을, 천민층에서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열녀의 행태는 더욱 과격해지고 남편이 죽으면자살을 하거나 외방 남자에게 손을 잡혔다고 투신 자살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여성으로 하여금 살신케 하는 정절 이데올로기는 한편 여성 억압의 극단적인 지표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당시의여성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였음을 일러준다. "아들을 낳으면 충신, 딸을 낳으면 열녀"라는 속어에서 여성이 열녀가 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크게 칭송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학자인 이수광이 수절을 "중화의 풍속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미속" (이옥경, 1985: 49~51 재인용)으로 손꼽았다는 사실에서 조선조의 여성들이당시 중국의 여성들보다 유교적 정절 윤리에 투철하였음을 알게 된다. - P85

이런 점에서 여성들의 삶은 자신의 신분과 혈통 집단내의 위치가탄생과 더불어 이미 상당히 결정되어버리는 남성들의 귀속적 특성의삶과 상당한 대조를 이룬다. 울프(1972)는 이러한 현상을 남성적 삶의 연속성과 여성적 삶의 단절성이란 점에 주목하여 풀이하였다. 우선 남성은 자신이 태어난 가족에서 자라고 활동하다 죽으며 죽은 후에도 그 집안의 조상이 되어 제사를 받게 된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는 친숙한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고 그 영구적인 집단내에서 보호를 받고 살아간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줄 사람이 늘 가까이 있으며 자신이 보지는 못했으나 피를 나누어준 조상들의 은덕 속에 안주한다. 반면 여성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집을결혼과 함께 떠나야 한다. 그는 자신을 이해하거나 감싸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시집에 들어가서 사는 단절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오해와 불신 속에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적 조건 때문에 심리적으로 남성에 비하여 일찍 독립적이며 강해지고 성취 지향적으로된다. 조선조 가부장제가 지닌 또 다른 특성, 즉 극단적 명분 위주의남성적 삶을 보완해야 하였던 점을 고려할 때 여성들이 남성들보다더욱 진취적이며 성취적 기질을 살려왔을 가능성은 쉽게 유추할 수있다. 이러한 기질적 특성은 자궁 가족을 통하여 딸들에게 이어지며, 여성을 심리적으로 강하게 만들어온 것이다. - P93

친정에의 효심 외에 바리공주의 비극이 여성들에게 주는 또 다른 메시지는 고난을 극복하고 모험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영웅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행복하게 끝난다. 심청전이나 춘향전, 그외 궁상굿, 도량선비 이야기 등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끝없는 고행을 견디어 영광을 차지하게 되는 포용력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잠자는 공주‘의 수동성이나 ‘베아트리체‘의 순수함 등과는 거리가 멀다. 여성은 강하며 끝내 승리한다는 주제가 일관되게 나타날 뿐이다. - P97

궁극적으로 혈통을 극도로 중시한 당시의 체제에서는 대가족내의 연장자이자 혈통 계승자의 어머니로서 여성의 지위와 활동에 상당한권한을 부여한 셈이며 여성들은 이 여자를 십분 활용하여 가부장제의 유지를 적극적으로 도와왔던 것이다. 여성이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어머니로서만 인정되었다는 점과 여성 자신들이 조선 중기 이후의 붕괴하여가는 체제를 강한 생활력으로 보완하며 적극적인 지탱자가 되어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가부장제의 현대적 변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 P100

문학평론가 최원식 (1987)은 근대사를 통해 소설가들이 아버지를 별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이광수. 염상섭 등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다수가 일종의 고아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버지‘ 부재의 현상을 분석할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새로운 역사는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실종된 아버지, 즉 숨어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세대의 실패를 엄정하게 보고 극복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동안의 아버지의 부재는 실상 적극적인 여성들의 활약에 의하여 메워져왔으며, 부재한 남편의 자리를남겨두고 그의 실추된 권위를 세워주는 일이 여성 역할의 주요한 부분이 되어왔던 것이다. 남성의 ‘일시적인‘ 부재로 가족적 삶이 흔들릴 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가족의 주인공이 된 여성들은 더욱 가부장적 명분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편 아버지가없어도 굳건하게 부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경우 아버지라는 실제 인물이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상당히 모호한위치를 가진 가족 구성원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선 시대의 남성 지배가 실제적인 역할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기보다는 상당히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현상이었음을 앞에서 밝혔지만 그나마 그시대의 남성들은 글을 읽는 선비라든가 문중의 성원으로서, 또는 제사를 모시는 제관으로서 확고한 지위와 활동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역할에 의해서보다는 순수한 정체성의 차원에서 강조된 혼란기의 남성 우월주의는 그 전시대의 것과 구별이 되어야 할 것이다. - P104

당시 여성 교육계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주입한 현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계통의 학교는 기독교적인 시민을기를 것을 목표로 하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나, 개화열에 자극을 받아 설립된 사설 여학교들의 교육 방침을 보면, 숙명여학교(1906년 설립)는 "인격 양성에 심심한 주의를 기울여 특히 여자에게 필요한 순결 · 동정 · 청결관 등의 제덕을 함양하고 실질을 존중하고 근로를 사랑하며 정숙한 품성을 힘써 기르고[・・・・・・] 기예의 숙달을 꾀하고건강의 유지·증진을 도모하여서 심신의 원만한 발달을 기하여 현사회에 적응하는 부인의 양성에 힘씀으로써 순량한 교풍의 등장에노력한다"고 하였다. 동덕여학교(1908년 설립) 역시 "여자 교육은 어디까지나 여자를 만드는 교육이요, 그것이 가정을 만들고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손인수, 1977: 253에서 재인용). 관립 - P112

학교 역시 여성 교육의 목표를 "부덕의 함양과 솔선수범"에 두어 당시 여학교의 상당수가 자립적인 인간 교육이기보다는 가정인으로서의 여성 사회화에 주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즉, 집안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거나 독립 운동에 뛰어드는 등, 혁신적인 환경 변화가 없는 한 당시의 근대적 교육만으로는 여성의 주체적 의식 개발과활동은 기대가 어려웠으며 일반적으로 신여성의 목표는 현모양처가되는 데 머물렀다 하겠다. - P113

이러한 혼란기를 통하여 남성에 대한 여성의 실제적 기대치는 더욱 낮아졌다. 피난살이에서는 남성은 성적 상대 이상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은 그것으로 족했다(김주연, 1985:180~83). 살아 있어만 주면 족한 존재였던 것이다. 박완서 소설에 나타나는 "배경 어딘가에 비껴서 있는 듯한 남편상" (박완서, 1985), 또는 김원일의 가족소설 (1985)의 여주인공들은 여전히 당시의 가족에서 어머니가 중요했던 반면 아버지가 부재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도 여성들의 활약은 지속된다. 한층 높은 생활층을 향해 돌진해가는 가족의 중심 인물로서 여성들은자신의 가족이 남의 가족에 뒤떨어질세라 그들이 길러온 저력을 한껏 발휘해갔던 것이다. 여성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남편을출세시키고 자녀를 ‘일류 학교‘에 입학시키며 집을 마련하고 재산을늘려왔다. 이러한 여성의 지위 재생산적 활동은 후발 공업국에서대체적으로 나타나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확실히 구분이 되어있지 않은 사회 구조적 여건에서 자극되어온 활동 영역이다 (Papanek, 1985). 특히 한국의 여성이 어느 나라 여성 못지않게 이에 전력 투구해온 것은 전통적인 부덕을 내면화시킨 가족의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수행의 지속성의 면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 당시의 가족은 태너(Tanner, 1974: 131~32)가 정의한 대로 "어머니가 제도적·구조적·정서적으로 중심이 되는" 모중심 matrifocal 가족으로 내외 구분이 엄격했던 전시대의 ‘자궁 가족‘ 적 형태나, 이후에 대두되는 정서적 역할에 치중하는 ‘엄마주의 momism‘ 가족의 행태와는 현격히 구분된다. - P115

부부간의 상호 보완적 역할 분담과 결혼으로 완결되는 낭만적 사랑에의 기대는 이성간의 매력에 대해 개인적 관심을 집중시켰고 이에 따라 남녀의 태도 및 외모상의 차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다. 현대적 성 역할 분업에 맞추어, 즉 경쟁적인 일터에서 일을 해야하는 남성은 그러한 일에 맞는 성품을 갖추어야 했고, 따라서 남성은그 기질이 "지배적이고 강하며 박력있고 이지적이어야 한다는 가치규정적인 제한을 받게 된다. 반면에 보조적이고 정서적인 역할을 주로 수행할 여성은 ‘여성적‘ 이어야 하는데, ‘여성성‘에 관한 규정 역시 그러한 역할에 맞도록 "유순하고 연약하며 민감하고 감성적인 것으로 내려졌다. 매력적 인간이란 자신의 성에 규정된 대로의 특성을많이 가진 사람이며, 이에 따라 남성의 ‘남성다움‘ 여성의 ‘여성다움‘의 정도가 개인의 정체성 확립의 본질적인 내용처럼 간주되었다. 이러한 성에 따른 차이에 대한 전제는 행위자들에 의해 자연적 사실내지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져서 기존의 성 역할 분업을 유지시키는 핵심적 기제가 된다(정대현, 1985). 실제로 조선조를 포함한 다수의 비산업 사회에서는 남성·여성의 기질적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않았으며, 그러한 사회에서 남성의 지배는 특권에 대한 접근의 면에서 이념적·제도적으로 규정되어왔을 뿐인 데 반해 산업 사회는 전혀 다른 보다 포괄적 지배 기제를 발전시킨 것이다(미드, 1935). - P119

이러한 역사적 및 이론적 전망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서의 가부장제 극복의 과제가 무엇인지는 매우 분명해진다. 첫째는 조선 시대로부터 사회 구성의 이념적 기본이 되어온 엄격한 공공/가정 그리고공/사"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런 인식을 토대로 형성되고 재형성되어온 사회적 관계 구조, 특히 성과 부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새롭게 확대되고 있는 산업 자본주의적 여성 통제의 기제즉, 미시적으로는 낭만적 사랑에 근거한 핵가족 이데올로기와 거시적으로는 국가 및 기업 등 조직의 확대에 따라 더욱 강화되는 인간의도구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가 문제가 된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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