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왜 이런 일을 되풀이한단 말일까? 왜 느끼지도 않는 감정을 끌어내려고 늘 애써야 할까? 불경스러운 일이야. 고작해야 메마르고, 시들어 빠지고, 소진되어 버릴 뿐이야. 이들이나를 초대하지 않았어야 했어. 나는 오지 않았어야 했어. 마흔네 살이나 되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체하는 것을 혐오했다. 투쟁과파멸, 혼돈의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붓밖에 없으므로, 일부러라도 붓을 들고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 그녀는그런 일을 몹시 싫어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이 줄 때까지는 당신의 캔버스에 손을 댈 수 없소. 그녀에게 접근하며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가 다시 탐욕스럽고도 얼빠진 듯한 얼굴로 다가왔다. 자, 그렇다면 그 일을 끝내는 편이 차라리 더 수월하겠군. 릴리는 오른손을 툭 떨어뜨리며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분명 그녀는 그토록 많은 여자들의 얼굴에서 (예컨대 램지 부인의-얼굴에서 보았던 타오르는 기쁨과 열광, 자기 포기를 떠올려흉내를 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그 여자들은 그 보상으로 얻은 공감과 기쁨, 그녀는 램지 부인의 표정을 기억할 수있었다. 황홀한 즐거움으로 타올랐고,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 - P246
었지만, 그 보상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희열감을 그들에게 주었음이 분명했다. 이제 그가 그녀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 주리라. - P247
나를 생각해, 나를 생각해 보라고. 아, 카마이클 씨의 몸을 우리 옆으로 가뿐히 날라 올 수 있다면. 릴리는 바랐다. 이젤을 그에게 1~2미터 더 가까운 곳에 세웠더라면. 어떤 남자라도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감정의 토로를 막았을 것이고, 이런 탄식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그녀가 여자이기에 이 끔찍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여자니까 그녀는 이런 상황을 처리하는 법을 알았어야 했다.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것은 여자에게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누군가 말했다.(뭐라고 했더라?)오, 램지 씨! 친애하는 램지 씨! 스케치를 하던 친절한 노부인, 벡위스 부인이라면 즉시, 그리고 적절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 돼. 그들은 나머지 세상과 단절된 채 서 있었다. 그의 무한한 자기 연민, 공감에 대한 요구가 흘러나와 사방에 퍼지면서 그녀 발치에 웅덩이를 만들었고, 파렴치한 죄인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발이 젖지 않게 치맛자락을 모아 발목 위로 약간 끌어 올리는 것뿐이었다. 완고하게 침묵을 지키며 그녀는 붓을 움켜쥔 채 서 있었다. - P251
그녀는 다시 바다를, 섬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뭇잎 같은섬의 뚜렷한 윤곽이 사라지고 있었다. 섬은 무척 작았고, 무척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제는 바다가 해안보다 더 중요했다. 그들 주위에는 온통 일었다 가라앉는 파도뿐이었고, 어느 파도에 실려 온 통나무가 뒹굴었으며, 갈매기 한 마리가 다른 파도를 타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배 한 척이 침몰했다고 그녀는손가락으로 물을 튀기면서 생각했고, 몽롱한 상태로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 갔지. - P312
대단히 높이 살 만한 일이었다. 붓으로 질경이를 휘저으면서 릴리는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기이하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 생각은 어떻든 절반은 기이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란 사적인 목적에 보탬이 되는 것들이니까. 그녀에게 그는 매를 대신 맞는 아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화가 날 때마다 그의 여원 옆구리를 채찍질하는 자신을 그려 보았다. 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려면, 램지 부인의 말을 떠올리고 그 부인의 눈으로 그를 보아야 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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