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탈속성이랄까. 그는 하찮은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해요. 그는 개들과 자기 아이들을 사랑하지요. 아이가 여덟이지요. 당신에게는 한 명도 없고요. 전날 밤에 그가 코트 두 개를 입고 내려와서 램지 부인에게 자기 머리카락을 다듬어 달라고 해서는 푸딩 그릇 가득잘라내지 않았던가요? 이 모든 말들이 각다귀 떼처럼 춤추며오르내렸고, 각각 끊어진 말인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탄력적인 그물망 안에서 놀랍게도 모두 통제되었고, 릴리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램지 씨의 마음에 대한 그녀의 깊은 존경을 상징하는 매끈하게 닦인 식탁이 아직도 걸려 있는 배나무 가지들안팎에서 춤추며 오르내렸다. 마침내 그녀의 생각은 점점 더빨리 회전하게 되었고 그 강렬함을 배겨 내지 못해 폭발했다. 그녀는 풀려난 느낌이었다. 가까이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고, 찌르레기 한 떼가 겁에 질려, 앉아 있던 무리에서 솟아오르듯이 소란스레 날아올랐다. - P53

그리고 자신의 명성은 과연 얼마나 오래 남을 것인가? 죽어 가는 영웅도 훗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지를 죽기 전에 궁금해할 수는 있다. 그의 명성은 어쩌면 이천 년간 지속되겠지. 그리고 이천 년이란 무엇인가? (램지 씨는 산울타리를 응시하며 빈정대듯 물었다.) 산 정상에 올라서서 장구한 시대의 긴폐허를 내려다볼 때, 실로 그것이 무엇인가? 구둣발에 걷어차이는 돌멩이도 셰익스피어보다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작은 빛은 그리 환하지 않게 일이 년 정도 빛나다가 그다음에는 좀 더 큰 빛에 삼켜질 테고, 그다음에는 그보다 더 큰 빛에 삼켜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을, 복잡하게 뒤얽힌 나뭇가지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면 결국 세월의 폐허와 별들의 소멸을볼 수 있을 만큼 높이 올라선, 그 가망 없는 선봉대의 지도자를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죽음이 다가와 그의 수족이 뻣뻣이 굳어 움직일 수 없기 전에 그가 마비된 손가락들을 의식적으로 이마에 올리고 어깨를 똑바로 펴서, 구조대가 왔을 때 자기 초소에서 죽은 군인의 훌륭한 풍채를 발견하게 된다면? 램지 씨는 항아리 옆에서 어깨를 쭉 펴고 꼿꼿한 자세로섰다. - P60

만일 그가 그녀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그 무엇도 그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깊은 곳에 스스로를 파묻더라도, 아무리 높은 곳에 오르더라도, 단 한 순간도 그는 그녀 없이 홀로 있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감싸 주고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그녀에게는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겉껍데기조차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고, 다 써 버렸다. - P64

책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오거스터스 카마이클 씨가 발을 끌며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지금, 고통스럽게도 인간관계의 불완전함, 가장 완벽한 관계에도 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진실에대한 본능적 갈구 탓에 진실을 직시하려 하지만 견딜 수 없던바로 그 순간에, 고통스럽게도 자신의 무가치함이 입증되었다고 느끼고 이런저런 거짓과 과장 탓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고양된 기분의 여파로 이처럼 비참하게 초조해진 바로 이 순간에, 카마이클 씨는 노란슬리퍼를 신고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가고 있었고, 내면의 어떤악마적 충동으로 그녀는 지나가는 그를 소리쳐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카마이클 씨?"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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