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수많은 산이 있는 것처럼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배경과 목적과 이유도 저마다다르다. 어린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이 있으면 늦은 나이에 산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산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됐을 때 산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답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차츰 산을 향한 세상의 모든 대답과 만나고 싶어졌다. 산을 배우고 싶었다. - P46

긴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도착한 몽블랑 원정의 전초기지 샤모니는 시즌을 맞아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산꾼들로 활기가 넘쳤다. 샤모니는 프랑스 동남부 해발 1037미터에 자리한 산악 도시로 몽블랑등반을 포함해 투르 드 몽블랑 트레킹, MTB, 산악스키 등 산에서 이루어지는 아웃도어 스포츠의 천국이자 전 세계 산악인들의 소울플레이스였다. 한여름햇살은 따가웠고 몽블랑의 연봉은 그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 P54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지만 내 예측보다 더 놀 - P58

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성취와 성공보다 더멋지고 감동적인 좌절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 P59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쉽지 않아서 좋았다는 걸. 힘들어도, 쉽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조금씩 오르고 오르다 보면 산등성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모든 것을 용서할 멋진 풍경도 펼쳐질 것이고,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면서 뿌듯해할 것이고, 그러다 길게 잘 뻗은 내리막이라도 만난다면다시 모든 걸 잊고 달려볼 거란 걸 힘들고 지겹고 그만하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한테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걸. - P83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라고 말한 앨버트 머메리.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는 - P91

머메리즘이란 등정주의를 가리키는 알피니즘이 아니라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오르는 것을 중시하는등로주의를 뜻한다. 그는 산행의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했다. 고도가 아니라 태도. 그렇다면뒷산을 오르면서 고산 원정급 장비를 장착한 이들은어쩌면 등산의 태도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92

그나저나 나는 바람대로 산 사람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모르겠다. 통장 잔고는 다달이 줄어들고있다. 언제 다시 세계의 산으로 향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한숨 쉬는 시간만 많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지금 내가 오를 수 있는 작고 낮은 산을 꾸준히 오르고오르는 것이 바로 산 사람으로 사는 것 아닐까 하고말이다. 평일 한낮의 작고 낮은 산에서 보내는 지금이 순간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서 지금 이곳에 없는 멀고 높은 산만을 바라보는 일은 좀 어리석지 않나. 작고 낮은 산부터 매일매일 오르고 오르다 보면시간이 흘러 산이 나를 또다시 다른 산으로 연결해주겠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겠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날까지 묵묵히 내 앞의 산을, 내 몫의 - P146

삶을 오르고 또 올라야겠다. 그러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내리막도 만나겠지.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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