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민족해방과 여성해방
제3세계여성은, 민족해방투쟁 혹은 그런 투쟁 이후의 국가건설과정에 관여한 경우, 서구페미니스트의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그런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부러 현실에 눈감으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문제를 피할 수가 없다. 지난 해 경찰의 반성매매 검거로 잡힌 짐바브웨 여성처럼, 이것이 그녀의 형제들이 죽어가며 만들어낸 국가인가하는 것을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Sunday Mail, Harare, 27 November 1983).3
3 이 여성이 구속되었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치비에서 곡물을 키우며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고 있다. 나는 15세이며, 경찰이든 경찰이 아니든, 나에게 명령할 남성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나의 어린 두 남동생이 숲속에서 사망하고, 오빠가 엉덩이 아래 오른쪽 다리를 모두 잃어가며 성취한 독립이고 자유인가? 왜 성매매가 있냐고 질문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위원회는 필요없다. 우리 모두 이유를 안다. 교육받지 못한 소녀에게는 일자리가 없다. 그러나 가뭄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는 식량을 살 돈이 필요하다. 공무원에게 더 지불하는 것은 국가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 소녀들에게 일자리를 주라. 낯선 이에게 몸을 팔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다(Patricai A. C. Chamisa, Sunday Mail, Harare, 27 November 1983). - P369
여성해방과 민족해방투쟁, 그리고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생산관계 건설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전제의 이론적 기초는 맑스, 그리고 좀더 특별하게는 엥겔스가 놓았다. 그는 여성이 가부장적 구속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에 ‘재진입‘하는 것이 꼭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사노동은 비생산적이고 사적인 것으로(2장 참조), 상품생산과 수익 발생 영역을 생산적이고 공적인 것으로 규정한 부르주아 정치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엥겔스는 여성이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과 여성의 경제적, 그리고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지위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맑스와 엥겔스가 ‘자유‘ 임금노동자를 역사의 주체로 보았던 것처럼, 여성은 임금노동부대로 들어감으로서만 역사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베벨, 제트킨, 그리고 이후 레닌까지 모두 여성해방에 대한 이론을 조금씩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러나 크게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지는 않았다. 혁명적 민족해방투쟁의 지도자들이 맑스 엥겔스, 레닌이 발전시킨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론적 전략적 틀에 적용하면서, 그들은 여성해방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혁명적 프로젝트에 통합시켰다. - P371
한 여성 의사가 간파한 것처럼,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모든 이론은 남성이 만들었다. 그 남성은 여성의 생을 구성하고 있는 재생산이라는 무시되어온 영역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Croll, 1979:20). - P378
프랑스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반식민지전쟁들을 전개하는 동안 여성이 수행한 영웅적활약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과의 전쟁기간 동안, 농업 노동력의 80%, 공업의 경우 48%가 여성이었다. 여성은 행정, 교육 보건 분야에서도활동했으며, 게릴라전에서 전투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대부분의 남성이 전쟁을 하는 동안 경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1975년의 승리 이후, 모든 경제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는 대단했다. 1979년 통계에 따르면, 사회적 생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는 65%에 달했다. 공업 62.3%, 농업 85%, 국가 교역 63%, 보건 61%, 교육 69%였다(Mai Thu Van, 1983:329; Truong Than Dam, 1984:22에서 인용). 그러나 전쟁 이후, 해방투쟁에서 여성이 갖고 있던 지도적 지위를남성이 차지했다. 유명한 여성들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여성이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문제에 여성의 높은 노동참여율이 반영되지 않았다. 협동조합에서 여성이 대표를 맡는 비율은 1966년 3%에서 1981년5.1% 정도만 증가했다. 대표비율이 더 높았던 부문은 여성 노동자가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공업 협동조합이었다(Eisen, 1984:248), 베트남 남성은 지도적 지위에 있는 여성을 보면 불쾌하게 여기고, 여성이 사회와 경제에 기여해온 것이 객관적으로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시하거나 조롱했던 것으로 보인다(Eisen, 1984:248~254; White, 1980, Truong Than Dam, 1984). - P392
두 국가 모두, 여성의 가사노동을 ‘여가시간‘으로 보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베트남의 신경제정책들, 즉 가족노동, 사유지, 하청과 수공예품의 생산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경제정책은 여성을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노동자라기보다는 의존적인 가정주부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사회주의적 축적과정을 위해 적어도 네 다섯 개의 생산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력을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1. 무임금 가사노동, 2. 생산물을 통해 지급되는 시장을 위한 노동, 3. 사유지에서 가족 생존을 위해 하는 무임금 노동, 4. 작업량에 따라 지급받는 계약노동, 5. 정식 임금노동, 베트남 여 - P399
성이 자본의 축적과정 아래 포섭된 것은 가정주부적 포섭, 공식적 포섭, 시장의 포섭, 주변적 포섭, 실제적 포섭 등의 형태를 띠었다고 말할수 있다(Bennholdt-Thomsen, 1979:120~124). - P400
사회주의 국가에서 여성의 지위를 설명할 때 놀라운 것은 그것이 시장경제에서 여성의 문제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 P401
따라서 여성,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가 아니라 가정주부로 규정된 여성이 자본주의 발전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발전에서도 최상의 노동력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최상의 노동력인 것이 아니다. 해방이후 정부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해방된 국가들이 직면하게 되는 객관적인 국내외적 조건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새로운정부가 근대적 국민경제를 구축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의 결과이기도하다. 대부분의 새로운 정부들이 따랐던 모델은 산업화된 국가들이다. 마오 치하의 중국의 경우처럼 농업에 우선순위를 둔 경우에도 기본적인 발전 모델은 공업화된 사회의 성장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이 모델에 투하된 자본은 외부로부터, 원조를 통해 들여와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사회의 일정 영역을 착취함으로서 자생적으로 만들어내서, 근대 국가산업의 건설을 도모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일반적으로 착취당하는 계층과 그룹은 여성과 농민이다. 이 발전모델에서 노동에 대한 개념은 자본주의와 동일하다. 공공의 ‘생산적인‘ 노동 영역과 사적이고 ‘비생산적인‘ 혹은 재생산적인 노동 사이의 사회적 분리와 성별노동분업은 폐지될 수 없다. 이런 분리를 통해서만 여성과 농민의 생계와 상품 생산이 계속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동을 통해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진행되고, 이는 근대적 경제와 국가 건설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여성이 ‘밀려나는 주된 이유이다. - P407
이 과정은 강조점이 민족에서 국가로 이동하는 것에도 반영된다.해방투쟁 동안 전체 민족은 심리적 역사적 동일성으로 표현되던 것에비해, 해방 이후 국가와 그 기관들은 공공선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근대경제를 구축하는 것과 강한국가를 세우는 것이 대개 같은 것이된다. 앞서 언급했던 혁명 포스터에서처럼, 민족에 대한 여성적 이미지가, 이 단계에서는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로 대치된다. 몇 명만 꼽아 보면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리, 마오, 호치민, 카스트로, 무가베 등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회주의적 가부장의 갤러리 속에 여성은 없다. 이들은 정말 사회주의 국민이 아니라, 국가의 아버지들이다. 다른 가부장제와 마찬가지로 국가형성의 전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이상화하는 과정에서 은폐되었다. - P410
11. 이는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극동노력자대회(Congress of the Toilers of the FarEast) 조선인 대표 중 한명이었던 김초우(Kim Chow)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김초우는 인도, 아일랜드, 한국의 민중이 모두 영국과 일본 제국주의 아래 압박받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했다. 그는 영국과 일본의 노동대중은 그런 착취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영국의 노동대중은 자신의 조건이 개선될 것이라 - P415
는 말을 계속 들어왔다. 그러나 이런 개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고역에 시달리는 인도 등식민지의 대중이다.. ·일본의 노동대중도, 더하지는 않다고 해도, 대개 마찬가지이다....... 일본 노동계급은 조선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부류 중 하나이다. 그들은 나란히 옆에서 함께 일을 하더라도, 조선 노동자 형제를 경멸하며 바라본다. 또한 일본노동계급은 제국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일본 정부가 조선노동자를 억압하는 것에 협조하기도 한다(1st Congress of the Toilers of the Far East, Reports, Moscow, 1922). - P416
여성은 사회주의적 축적과정에서도 ‘마지막 식민지‘로 남아 있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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