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도쿄. 간토대지진과 우장춘, 베를린의 황진남과 이극로
1925년 9월 1일, 도쿄는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기록했다. 역사에서 ‘간토대지진‘으로 불리는 이 재난에 이어 끔찍한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한다. 당시 조선 언론은 도쿄 교민들의 피해를 취재하기도 하고, 9월 27일 자 (동아일보》에는 상대성이론의 스타였던 도쿄제국대학 유학생 최윤식이 무사하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당시 도쿄에 살고 있던 우장춘의 집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 무렵,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농림성 산하 농업시험장에 재직 중이던 우장 춘은 일본인 여성과 사귀고 있었다. 한때 우장춘은 어느 변호사의 아이들 과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부인이 우장춘의 사람됨을 보고 교사 생활을 하던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한 것이다. 이듬해 26세의 우장춘이 22세의 일본인 고하루와 결혼했다. 아버지 우범선이 고영근에게 암살되었을 때 우장춘은 다섯 살이었다. 한동안 그는 방황했고, 보육 시설에 맡겨지기도 했다. 사정을 알게 된 조선총독부의 주선으로 1916년 도쿄제국 대학 농학실과(일종의 전문학교)에 겨우 진학한다. 이때까지 우장춘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장춘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녀는 아들에게 늘 아버지는 조선 혁명가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일본인 어머니에게 자란 그는 혼란스러웠다. - P114
한편,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도쿄가 초토화되었지만 ‘제국 호텔‘만은 멀쩡히 살아남으며, 호텔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명성이 높아진다. 이 호텔 건축을 위해 일본에 방문한 라이트는 재벌 오쿠라 기하치로의 별채에 초청받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바닥이 따뜻했다. 이 별채는 경복궁의 자선당을 뜯어 가서 만든 것이었다. 여기에 감명받은 라이트는 한국 전통의 온돌 개념을 제국 호텔에 넣었다. 온돌은 데워진 공기는 상승하고 차가운 공기 는 가라앉는 중력 법칙을 이용한 것이다. 서양의 라디에이터 와 다른 이 바닥 난방 방식을 그는 ‘Gravity Heat(중력 난방)‘라 고 불렀다. 미국에 돌아간 그는 좀 더 발전된 개념의 온돌을 연구해 1937년 제이콥스 하우스에 적용한다. 2019년 이 건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오쿠라가 뜯어 간 경복궁 자선당은 간토대지진으로 소실되었다. 남아 있던 기단은 정원석 등으로 쓰이다가 여러 사람의 반환 노력으로 1995년 경복궁 경내로 돌아왔다. - P119
박문사 건축을 위해 역대 임금의 어진이 모셔진 경복궁의 선원전이 뜯겨 오고, 광화문을 해체한 석재들이 쓰이고, 원구단 일부가 뜯겨 왔다. 박문사의 정문으로는 경희궁의 정문인 홍화문이 뜯겨 왔다. 이 공사는 경복궁 자선당을 일본으로 뜯어 간 오쿠라쿠미토목이 맡았다. 1939년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은 박문사를 참배하고 여기서 이토의 아들을 만나 ‘아버지의 죄를 대신 사죄한다‘라고 말했다. 이후 준생은 각종 친일 행사에 대대적으로 동원된다. 안중근의 딸 안현생도 1941년 박문사를 참배하고 각종 친일 행사에 동원되었다. 격분한 김구는 안준생의 암살 명령을 내렸다. - P120
그는 더 나아가 한국어를 표현하는 한글이 왜 과학적인지를 언어학적으로 설명한다. 한글의 원리는 자음-모음-받침으 로 이어지는 체계가 하나의 ‘실러(syllable, 음절)‘을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결국 한글 과학화의 완성이 이를 체계화하는 맞춤법 통일이라는 점으로 이어갔다. 영어를 배워야 했던 미주 동포들은 영어 표기에서 실러블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극로는 ‘실러블‘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근본적으로 음절 구조로 되어 있는 한글 표기가 얼마나 과학적인지 설명한 것이고, 동포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 할 수 있었기에 그의 강연에 열광했다. - P124
그는 귀국 후 조선어학회를 만든다. 가로쓰기 등 현대 한국어의 거의 모든 틀을 마련한 이극로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감옥에 있던 중 해방을 맞이한다.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말모이〉(2019년)로, 영화 초반 서울역에 도착하는 윤계상이 바로 베를린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극로다. - P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