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인기는 식민 조선에서도..

1922년 도쿄.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

아인슈타인이 일본에 간다는 소식을 접한 우리 언론들은 아인슈타인의 방문 일정을 시시각각 보도하고, 민립 대학을 추진하던 세력은 급히 일본으로 사람을 파견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히브리대학을 세운 아인슈타인을 조선에 초청하려던 것이다. 비록 성사되지 못했지만,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나라 잃은 민족 유대인이 어떻게 과학으로 나라를 되찾는지 파고들었고,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과학 스타 아인슈타인에 주목하고, 또 열광했다. - P81

11월 10일, 민립 대학 설립을 준비 중이던 ‘조선교육협회‘가 파견한 일행이 서울역을 출발해 일본으로 향했다. 그들의 목적은 일본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나 조선으로 초청하는 것이었다. 10월 프랑스에서 출발한 아인슈타인은 이 무렵 홍콩을 지나고 있었다. 유럽에서 일본으로 가는 여정은 길고 험했다. 11월 13일, 아인슈타인이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 인해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이 더욱 떠들썩해졌고, 조선교육협회 일행은 다급해졌다. - P82

4회에 걸친 그의 상대성이론 소개는 매우 정확했다. 황진남의 설명은 나경석과 거의 동일하다. 첫 번째 기사에서 그는 빛의 파동설과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은 에테르를 가정하지만, 마이컬슨이 에테르의 상대운동 관측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 P83

그럼에도 조선의 언론들은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상세한 현지 분위기를 전하며 아인슈타인 봄을 이끌었다. 무려 한 달이 넘게 지속된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은 이처럼 엄청난 관심 속에 진행되었고, 이제 조선에서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은 지식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 인식되었다. 이 열풍은 다음 해 조선 전역에서 열린 상대성이론 강연회로 이어진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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