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열여덟, 스물 나이에 전선으로 떠났다가 스물, 스물넷이 돼서돌아왔어. 처음엔 기쁨에 들떴다가 나중엔 무서워졌지.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데 뭘 해야 하지? 평온한 삶 앞에서 공포가 밀려왔어・・・・・・ 그새 다른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했는데, 우리는 뭐지? 우리는우리의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어. 우리가 아는 것도전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전쟁이었지. 한시라도 빨리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군용외투를 일반 외투로 고치고 단추도 다시 달았어. - P220
방수부츠를 시장에 내다팔고 구두를 샀지. 처음으로 원피스를 입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거울 앞에 서서도 내가 나를 못 알아보겠는 거야. 4년 동안 바지를 벗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부상당한 몸이라고 누구한테 털어놓겠어? 말했다가, 나중에 직장도 못 구하면 어떡하라고. 결혼은? 우리는 물고기처럼 입을 다물었어. 전선에 나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우리끼리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어.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람들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기 시작했지. 30년이 지나서야.... 모임에 초대도 하고……………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받아야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전선에서는 남자들이 우리를 존중했고 항상 보호해줬는데. 그런데 이 평온한 세상에서는 남자들의 그런 모습을 더이상 볼 수가 없는 거야. - 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