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 흥미롭던 글과 읽고 싶던 책 정리해본다.



인공지능에 대한 물음들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손화철의 [인공지능에 대한 물음에 대한 물음]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고, 그 해결책은 언젠가 발견되며, 만약 해결책이 없다면 처음부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패러다임은 모든 물음과 생각거리를 재빨리 문제와 문제 해결의 조합으로 바꾸어 버린다.
기술의 영역에 특화된 이런 사고방식을 교육, 정치 같은 인간 삶의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기술에 대한 담론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술에 대한 담론은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일정한 범위 안에서 맴돌며 더 깊고 넓은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문제와 문제풀이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P31















김진석의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인간 강화와 인간 잉여의 패러독스》라는 책을 통해 인공지능에 대해 풀어낸다.

 

장정일의 [인공지능과 민주주의]

철학자 김진석이 내놓은 인간 생존의 방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대립이라는 모호한 가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인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앞으로 등장할 인공지능 로봇들이 순전히 기계이기만 할 리는 없다. -컴퓨터의 연결을 추진하는 과학기술은 다름 아니라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사이보그를 탄생시키려 한다."(146) - P36

















이번 호 좌담은 지역의 이중소외 현상지역정당의 필요성다르게 살기돌아가기시민이 아닌 주민’ 정체성과 주민자치의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알려주었다.

 

황종규 외 좌담 [정치 개혁은 주민자치로부터]

황종규_우리나라 지방자치의 가장 큰 약점이 규모예요. 자치단체의 평균 인구규모가 세계에서 제일 커요. 그리고 편차도 엄청나게 큽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면서 주민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져서 지역에 남게 하려면 자치의 단위가 잘게 나누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위가 이미 너무 큰데 메가시티다 뭐다 하면서 더 크게 만들면 행복해진다는 신화를 못 버리고 있지요. 자치는 곧 주민자치, ‘Selfrule‘이죠. 굳이 ‘주민자치‘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일본하고 우리뿐입니다. 이건 한국의 지방자치 현실을 말해주는 동시에, 우리가 자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도 함의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치의 주체와 자치권을 가진 사람은 일치해야 하는데, 우리는 단체자치가 있고 주민자치가 있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주고 보충적으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 하는 정도로 자치를 인식합니다. 이런 통념을 바꾸려면 결국 의회나 자치단체장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구조부터 바꾸어야 해요.

유엔이 2011년부터 여러가지 행복지표를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잖아요. 우리로서는 충격적인 지표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제가 눈여겨보는 건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도인데요, 거의 백몇십 위입니다. 한국인의 삶이 그만큼 시장종속적이라는 것이죠. 삶의 기준이 획일화되어서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갈 여지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한계에 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내 삶의 경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 정치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일상의 정치를 활성화하는 데서 출발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재미를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보자. 한나 아렌트가 정치야말로 인간 실존의 본질이라고 그랬잖아요. - P91-92

 

그 동안 무심했던, 정부 주도의 친환경’ 인증의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유병덕의 [무엇을 위한친환경농업인가]

유기농업을 핍박하는 친환경 인증제도

우리나라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출 비율은 6%이다. 혹자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검출되냐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74% 검출되는 관행 농산물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경이로운 성과다. 평가는 상대적이어야 한다.
유기농업의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유럽연합의 유기농산물 잔류농약검출 비율도 14%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유기농산물은 23%로 우리의 거의 4배 수준이다. 우리나라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출 비율이 세계 1등 수준으로 낮으니, 좋은 일일까? ‘불검출을 추구하는 정부는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합리적 제도 운용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농부들의 눈물 없이는 불가능하다. – P164-165



에코페미니스트 15인의 책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에 대한 서평이다반가운 이름 스테이시 앨러이모애나 칭이 언급된다글을 쓴 노고운님이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의 역자임을 알게 된다.


노고운의 서평 [기후위기 시대의 에코페미니즘]

사실 다종적 얽힘은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 아니다. 근대 유럽 식민주의의 영향하에서 우리는 자연/문화, 여성/남성, 비서구/서구를 나누는 이원론적 존재론과 세계관을 통해 지구 생물들을 분류하여왔다. 축산동물과 야생동물은 타자화, 여성화되어 인간 여성과 유사한 방식으로 가부장제 문명에 의해 구조적 억압을 받아왔다(유서연, 이미숙). 그러므로 인간과 비인간을 이원론의 반대 항에 두지 않고 한 몸 안에 서로얽힌 하나의 존재라고 보는 관점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생물학에서는 이미 이 관점을 받아들여서 생물 진화의 단위를하나의 생물종이 아니라 홀로비온트(holobiont), 즉 복합 유기체(생물의몸)와 그들의 공생자(공생 미생물)로 이루어진 공생체로 보고 있다.

또한 이 책의 많은 저자들이 인용하는 페미니스트 영문학자 스테이시 앨러이모의 횡단신체성 개념을 통해서 생각해본다면, 다종의 얽힘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겨질 것이다. 우리 지구 생물들은 숨 쉬고, 먹고, 배변활동을 할 때, 그리고 타자와 여러 다양한 방식의 신체 접촉을할 때, 외부 물질이 몸 안에 들어오고 내부 물질이 몸 밖으로 나간다. 횡단신체성은 인간과 비인간의 신체와 지구행성을 이루는 물질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얽히는 양상을 잘 표현한 개념이다. - P225

에코페미니스트가 제시하는 자급적사회는 자본주의적 정치경제에 예속된 방식의 부의 축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홍자경이 보여주듯이 문화인류학자 애나 칭의 "알아차림의 기술"을 실천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인류세 시대의 수많은 오염되고 교란된 땅에서 자연/문화 이분법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생물종들의 뒤얽힌 삶의 양식을 알아차리고, 그 얽힘의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활동에 몸과 마음을 쏟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장우주가 주장하는 "생태적공감" "생태적 응답을 통한 다종의 돌봄이기도 하다.
김현미가 제시하듯이 기후위기 시대의 에코페미니즘은 "역사와 현재,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기계의 연결성 및 전체성을 지향한다." 또한 기후위기를 모른 척 방관하거나, 기후우울증에 빠져 인간임을 자책하기보다는, 감정의 이동을 통해 기후위기를 완화시킬 실천을 행하고자 한다. 생태적 슬픔을 함께 느끼고 애도하는 감정적 연대를 통해 "위기 이후의 희망을 기획해나갈 힘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생태적 슬픔은 피해자의 정서가 아니라 변혁자의 분노"이기 때문이다.- P226


















김해자 시인의 시집 <니들의 시간>에 대한 서평도 흥미롭다.

고영직의 서평 [흙과 생명과 민중에 대한 모심의 시들]

"스테이 홈(stay Home)." 김해자 시인의 시집 《니들의 시간》을 읽으며스테이 홈이라는 표현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 말은 에코페미니즘의 핵심 개념으로 지구라는 집에 잘 머무르자는 의미에서 재()거주화를 뜻한다. 그렇다. 물살이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우리는 지구라는 집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렇듯 김해자 시인은 시집 《니들의 시간》에서 인류세 시대 시의 역할을 고민하며 다른 언어와 다른 시간을 제시하며, 지구라는 집에 살기 위해 다른 사유방식을 지닌 새로운 인간이 탄생해야 함을 촉구한다. 나는 언젠가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한 김해자 시인을 두고동네지식인이라고 명명한 적 있다. - P242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은 인류세란 "인간적인 것너머의 세계가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의해 점차 변해버리는 불확실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미국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좌파의 길》에서 "지구를 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절대로인류가 아니며, 바로 자본주의다"라고 강조한다. 나는 이 점에서 인류세라는 표현 대신에자본세로이해해야 한다고 한 제이슨 W. 무어의 인식이 훨씬 더 정명(正名)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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