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네가 지나치게 슬픈 사람이었던것도 내가 기분을 잘 알아차리는 편인 것도
앞서 가도 느긋하게 걸어도 이름 부를 때 자주 다른 곳에 있었다
쉽게 짧아지는 사람과 긴 마음을 염원하는 사람이 번갈아가며 실망한다
누구도 수건을 몰래 두고 가지 않았는데
술래가 되어 술래를 만들고
눈빛이 눈빛을 살리고 눈빛이 눈빛을 놓치고 고요가 침묵을 시작하고 침묵이 고여 곰팡이 - P44
문에서 새로 태어나는 수건이 문만큼 쌓이면 집이 떠난다
타인이 타인을 지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끝나고
또 타인을 초대하고
지어지고
이름 부르고
확인하고
지워지고
헐거워져
바람 빠진 공과 흐르지 않는 눈을 얻게 된 사람이 어느 날 스스로에게 묻는다 - P45
헤이, 아직 거기 있어?
술래가 그곳을 빠져나간다
아무도 공을 던지지 않는다
아무도 퇴장하지 않는다 - P46
증언 9
덜 마른 바지를 입고 볕에 누워
바삭해질 때까지 그리움을 말리는 사내를 보았다 - P69
증언 11
어제는 울고 싶을 때마다 물을 한 잔씩 마셨다
다 마신 컵들을 창 쪽으로 뒤집어두고 잤는데
여름 내내 비가 왔다 - P88
피에르
피에르는 주로 혼자 있거나 무언가를 읽는다
읽기 때문에 이곳으로부터 유보될 수 있다 책은 가장 현재형으로 달아나는 방식 월말에 잡아둔 약속으로부터 사람들이 자취를 감춘다
어디 가?
효용을 멀리하고 싶은 인간들이 연구자를 옹호했지
피에르는
혼자 있다 비생산적인 자세로 누워 책을 읽고
다크 초콜릿을 부러뜨려 반 개씩 입에 넣고 최대한
지연되기 위해 공들이고 있다 - P95
읽다 말고 방금 지은 얼굴이 저가 만든 것인지 어제 읽은 문장이 만든 것인지
더는 알지 못할 때
책은 피에르를 어떤 모양으로든 굴릴 수 있다
굴러가다 말고 저를 주워 피에르는 집으로 돌아간다 - P96
옥사나
아직 살아있는 엄마 무덤에 왔다
미리 써둔 시와 잘 기억나지 않는 당신 표정과 기록된 적 없는 이 대화가
전부 미리 자라고 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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