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인간 강화와 인간 잉여의 패러독스》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

지역의 이중소외 현상
지역정당
다르게 살기
돌아가기
주민자치
주민 정체성

인공지능과 민주주의_장정일

한국의 학부모들 사이에 고등학교는 ‘알파고‘라는 썰렁한 농담도 떠돌았지만, 알파고(인공지능)의 충격은 경제·사회의 혁명적인 변혁을 예상하게 만들었고, 새삼스럽게 ‘인간‘존재에 대한 심문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김진석의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인간 강화와 인간 잉여의 패러독스》 (글항아리, 2019)는 후자의 문제를 깊고 폭넓게 고민한 저작으로, 이 주제의 책으로는 가장 먼저 참조할 책이다. - P33

포스트휴머니즘 논자와 트랜스휴머니즘 논자들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서 밀어내거나 로봇과 공생해야 하는 지위로 추락시키고, 다른 한편 생명공학적 개입을 통한 인간강화(human augmentation)는 니체가 말한 ‘초인‘을 실현시킬지도 모른다. - P35

철학자 김진석이 내놓은 인간 생존의 방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대립이라는 모호한 가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인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앞으로 등장할 인공지능 로봇들이 순전히 기계이기만 할 리는 없다. 뇌-컴퓨터의 연결을 추진하는 과학기술은 다름 아니라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사이보그를 탄생시키려 한다."(146쪽) - P36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인공지능이란 빅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 혹은 대량의 빅테이터를 알고리즘에 투입해서 얻는 결과를 뜻한다. 알고리즘은 국가정책과 기업활동뿐 아니라, 극히 전문화되어 있는법조계와 의학계에서도 이미 활용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미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에 덧입혀진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와 같은 의인화의 외양을 벗겨내야 한다. - P37

인공지능은 기업과 권력을 가진 엘리트의 도구이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마크 코켈버그도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한다. "세상에는 우리를 억압하는 ‘인공지능‘ 같은 것은 없다. 인공지능을 고립된 인자나 많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인공적 행위자로 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항상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인공지능이 권력에 미치는 영향은 늘인간 때문이고 인간을 통해 일어난다. 인공지능이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인간을 지배하는 권력 등), 그것은 인간을 통한 권력이자 사회를 통한 권력이다."(197쪽) - P40

인공지능, 거대기술과 자립의 삶_정형철

디지털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새로운 거대기술은 우리의 모든 관계망을 디지털 가상공간에 결박해버렸다. 사회적 관계망이라고 제멋대로 이름 붙여 부르는 소셜미디어 공간은 거대한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본색을 드러낸 지 오래다. 공짜 놀이터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사용자들이 놀고 간 흔적들로막대한 이윤을 남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진짜 고객은, 보통의 사용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흔적을 팔아넘길 광고주라는 사실을 정작 사용자들은 모르고 있다. 온갖 콘텐츠를 자진 헌납하면서도 그 콘텐츠가 플랫폼 업체에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모인 사용자의 소중한 데이터는 인공지능을 위한 기계학습의 빅데이터가 된다. - P47

그렇다면 왜 기술의 방향이 이러한 안락과 편의를 제공하는 데 맞춰져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안락과 편의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인 것처럼 간주되는 것은 소비자본주의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사는 사회에서 안락과 편의는 이미 철저히 상품화되었다. ‘편안한 상태‘는 스스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제공받아야 하는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에 극도로 의존하는 생활이 우리 삶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노동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도 모두 상품이나 서비스로 여기고 싶어 한다. 서비스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주는 - P48

쪽이든 받는 쪽이든 그것은 일종의 거래가 된다. 심지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나 돌보는 행위도 서비스로 간주하거나 간주당한다. 소비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 소비자로 태어났다는 환상을 갖는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소비 주체로 길러진다. 상품과 재화,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생존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를위한 생존이다. 이런 사회에서 소비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받는다. - P49

거대기술이 포섭하는 삶 바깥에서 자치와 자립, 공생의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기술사회가 현혹하는 안락과 편의를 소비하는 삶의 방식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은 애초에 우리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다. 이러한 거대기술이야말로 인간을 잉여로 만든다는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불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잉여기술이다. 기술의 폭주 바깥에서 우리의 삶을 따로 돌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먼저 우리 삶이 어떤 ‘좋은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자. - P53

포스트휴먼 세계의 영성_카비르 헬민스키

일반적으로 이것은 ‘의식‘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나는 이 의식이 단순한 정신적인 경험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치, 질(質), 관계에 관한 것까지 포함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바로 이것이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C. S. 루이스) 것이다. - P55

인공지능은 점진적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을 능가할 것이고, 우리는 십중팔구 인공지능에 의해 설계된 틀에 종속될 것이다. 우리 중에서 일부는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어쩌면 통제하기도 할 경제·사회에서 유의미하고 경쟁력 있는 존재로 남아 있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자신의 생물학적 지능을 증강해야 할지도 모른다. 포스트휴먼 세계, 즉 인간이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줄어들고 인간의 주된 사회적 기능은 소비‘가 되었을 때, 인간이 경제에서 유용한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소득이 보장돼야 하고, 우리가 밥만 축내는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인간존엄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 P59

영국의 그레이엄 다우닝 박사는 인공지능 및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형이상학적 무지로 인해서, 인간의 인식과 관련한 세 개의 문(門)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첫째는 외부 세계를 향한 문이다. 가상현실이 부상하면서 실제의 세계는 평가절하되고 있고, 인공지능에 의해서 상업적, 정치적, 이기적 속성이 강화된 만들어진 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가상현실이 우리의 내부 세계가 될 때에는 이 문은 닫혀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그 어느 때보다 작아질 것이다 - P62

정치 개혁은 주민자치로부터_좌담

황종규_이런 이야기를 저는 계속 했어요. 중앙정부를 상대로 ‘지방의 몫‘을 요구하는 운동은 작은 공동체나 소지역 단위에서 다시 몫을 배분해야 하는 문제가 되면 소위 거점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위로부터의 자원 배분이 아니라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는 작은 단위의자치적 실천이 지역의 지속성에 관건적 요소라는 것이지요. - P69

윤현식_선거법 얘기도 해야겠는데, 2004년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석을 차지했는데 그중 8명이 비례였어요. 선거제도가 바뀌었기때문에 덕을 봤던 것이죠. 그런데 그게 그때는 득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독이 된 거죠. 2007년에서 2008년이 되면서 그 비례 자리를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싸움이 났던 것이니까요. 일정한 민주노동당의지지율만큼 자리는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까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돼버렸던 겁니다. 정책적 지향을 가지고 토론을 통해서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앞자리 순번을 받을 것이냐의 싸움이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비례대표제가 진보정당이 이용할 수 있고 활용해야 될 수단이지만 동시에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양날의 무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지역과 현장뿐이라고봅니다. 바로 그래서 지역정당이 필요한 것이죠. - P71

황종규_‘특별자치‘는 한마디로 개발을 위한 것이었죠. 중앙정부가가진 개발 관련 권한을 제주도에 부여함으로써, 말하자면 분권 시범사업을 정부 주도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주는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기초자치단체를 두지 않도록 되어 있어요. 이것 자체가 반자치적인 일이지만 ‘특별한 자치‘, ‘분권‘이라는 말에 주민들이 현혹된 것이죠. ‘지방분권‘은 본질적으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와 얼마나 나눌 것인가를 뜻하는 행정적 접근입니다. - P76

하승수_제주도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행착오를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자치주의‘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대점에 중앙집권주의가 있다면, 지역 단위 안에서 그것은 개발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특별자치도를 ‘특별개발도‘로 생각하는경향이 제주도에서 있었지만, 이제 강원도와 전라북도도 특별자치도가되면서 마찬가지로……. - P78

황종규_한국사회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꾸 어떤 큰해결책을 찾는데, 저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제가 ‘돌아서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것은 당사자로서의 주민이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정치의 주체가 되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꼬리를 잡아서 머리를 흔든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지역의 자치가 복원되지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복잡한 문제들을 건드리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 P90

체제의 논리에 동화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래서 지역정당의 경우에도 작은 생활권의 정치를 복원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주민자치가 공식적으로 자리 잡아 자치제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P91

황종규_우리나라 지방자치의 가장 큰 약점이 규모예요. 자치단체의 평균 인구규모가 세계에서 제일 커요. 그리고 편차도 엄청나게 큽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면서 주민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져 - P91

서 지역에 남게 하려면 자치의 단위가 잘게 나누어져야 됩니다. 그런데우리는 이 단위가 이미 너무 큰데 메가시티다 뭐다 하면서 더 크게 만들면 행복해진다는 신화를 못 버리고 있지요. 자치는 곧 주민자치, ‘Selfrule‘이죠. 굳이 ‘주민자치‘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일본하고 우리뿐입니다. 이건 한국의 지방자치 현실을 말해주는 동시에, 우리가 자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도 함의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치의 주체와 자치권을 가진 사람은 일치해야 하는데, 우리는 단체자치가 있고 주민자치가 있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주고 보충적으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 하는 정도로 자치를 인식합니다. 이런 통념을 바꾸려면 결국 의회나 자치단체장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구조부터 바꾸어야 해요.
유엔이 2011년부터 여러가지 행복지표를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잖아요. 우리로서는 충격적인 지표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제가 눈여겨보는건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도인데요, 거의 백몇십 위입니다. 한국인의삶이 그만큼 시장종속적이라는 것이죠. 삶의 기준이 획일화되어서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갈 여지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한계에 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내 삶의 경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 정치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일상의 정치를 활성화하는 데서 출발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재미를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보자. 한나 아렌트가 정치야말로 인간 실존의 본질이라고 그랬잖아요.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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