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어딘(김현아)의 <활활발발>을 읽다가 알게 된 고정희 시인.
여성해방을 노래한 페미니스트로 <여성신문> 주간 등 여성문제를 최초로 폭넓게 탐구한 여성주의 시인이자 민중시인이며 서정시인이라고 한다.
구매를 벼르다 드디어 위트앤시니컬에서 구매했다.
시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아벨'로 표상되는 떠나간 자들(민중, 동지, 아우 등)에 대한 속죄의 마음, 부끄러움, 그리움, 슬픔의 시들이다.
첫 마주침이 중요한 건가. 사람의 마음이 비슷한 건가. 시집을 구매하기 전에 블로그 등에서 본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닿던 시가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나서도 가장 좋았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서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을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판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서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