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먹은 철학자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근황을살펴보니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승승장구를 하는 바람에 체인마다 붙던 철학자 이름도 어느샌가부터는 중단된 모양이다. 마포 소크라테스점, 노원 푸코점, 사당 데카르트점, 광진 헤겔점, 중랑 벤야민점, 송파 에피쿠로스점, 하남 플라톤점등 서양 철학자들의 향연 속에서 화곡 장자점과 신림 공자점의 분투가 귀여웠는데, 처음 이 프랜차이즈를 만든 대표가 철학과 출신이라던데, 이 목록만 보면 서양철학을 편애했던 것이 틀림없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소개글부터 전공자의 포스가 풍긴다. "떡볶이의 이데아, 네 맛을 알라." 심지어 점포 바깥쪽 유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맛 - P113

의 중용! 맛의 이데아!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아! 스트레스 풀린다!"(철학과 대학원생으로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문구다.)
시청취준생이 되어 철학이 취업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떡볶이집에 취업하여 자기 떡볶이집을 차렸다는 대표의 소개글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역시 철학을 전공해서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할 수 있는 일도 열심히 찾아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떡볶이 프랜차이즈를 철학자 이름으로 하다니, 이런 좋은 쪽으로 정신 나간 결정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철학 덕분이 아니겠는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의 초반부에 "떡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듯이 이 프랜차이즈 대표도 같은 질문으로시작했을지 궁금하다. 요새는 피자가 접목된 형태의 떡볶이를 팔던데, 그런 발상은 일단 "떡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을 만한 것인 데다가, "○○란 무엇인가?"는 철학의 단골 질문이기 때문이다. - P114

하루는 작업실에서 음악 작업을 마치고 두통과스트레스에 절여진 상태로 퇴근하다가 근처 유명한 떡볶이집 ‘현선이네‘에 들렀다. 원래 포차에서 시작되었다는 이곳은 출신에 어울리게 늘 소주와 맥주를 구비하고 있고, 매운 떡볶이와 순한 떡볶이를 옵션으로 두었다. 둘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매운 떡볶이를 고르는 게 인지상정. 패기롭게 매운 떡볶이를 한입 먹었는데, 오우 이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들었다. 와. 좀 너무하네, 이건. 떡볶이를 입에 넣자마자 땀이 나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동네 떡볶이집에서 이런 매운맛을 낸다고? 여기는 스트레스로돌아버린 사람들만 오는 곳인가?
나는 집에 우환이 있는 사람처럼 떡볶이를 먹었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운 적이 없다. 그리고떡볶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단무지를 많이 먹은 적도없다. 맛있긴 하네. 이 와중에 맛이 느껴진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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