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직후, 나는 월터 테비스가 쓴 《허슬러>라는 책을 읽었다. 찰리 니콜라스가 셀틱에서 이적해오 - P317

자 내가 바로 캐넌볼 키드라는 착각에 사로잡혔듯이, 나는 이 책을각색한 영화에서 폴 뉴먼이 연기한 인물, 패스트 에디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뭐든 이루기 어려운 일 -글쓰기, 축구 선수 되기 등등-을 성취하는 것을 주제로 삼은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각별히 꼼꼼하게 읽었다. 한번은 오 하느님, 오 하느님, 오 하느님!) 다음과 같은 대목을 타자로 쳐서 책상 앞에다 붙여놓기도 했다.

바로 이거다. 너는 자신의 삶에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너 자신이 그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만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너는 똑똑하고, 젊고, 내가 전에 말했듯이 재능 있는 사람이다. - P318

나도 재난에 가까울 정도로 불편한 시각에 어떤 일을 해야 할 때가있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에만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인터뷰를 해야 할 수도 있고, 마감 날짜 때문에 수요일 저녁에 워드프로세서 앞에 앉아 있어야만 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작가 여행을 가기도 하고 토크쇼에도 출연하는 등온갖 위험천만한 일을 하게 되는 법이니, 나도 언젠가는 그런 일을겪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 책을 발행하려고 하는 출판사 사람들이 제정신이라면, 이런 식의 강박증에 대해 글을 쓰게 해놓고서 그들의 출판을 위해 축구를 못 보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사이코라고요, 그거 기억하시죠?"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다 그런 거라니까요! 난 수요일 밤에는 절대로낭독회를 할 수 없어요!" 그러면 나는 조금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 P334

하지만 영국에서는, 인프라가 붕괴되기 시작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수만 명의 팬들이 좁다랗고 구불구불한 지하 터널을 걸어오르고, 골목길에 두 줄로 차를세우고 있지만, 해당 기관은 상황이나 팬 층, 교통수단, 심지어 지은지 50년이 넘어 초라해지기 시작한 축구장 자체의 상태마저, 그 어떤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듯이 예전과 똑같이 밀어붙이고 있다. 해야 할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100년동안 줄곧 모두가 위태위태하게 지내오다가 힐즈버러 사태가 터진것이다. 힐즈버러 사태는 2차대전 이후 영국에서 네 번째로 일어난축구 재난이며, 관중 통제에 실패하여 일어난 압사사고 가운데 사망자 수가 세 번째로 많은 사건이었다. 또한 단순히 운이 나빠서 일어난 것만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경찰이 부적절한 타이밍에 출입문을 열었다고 탓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태의 핵심을 간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P339

1990/91 시즌 리그 우승 이후의 희망과 영광스러움으로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축구팬으로서의 삶 대부분이 얼마나 비참했는지에 대한 글을 쓰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하여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하이버리는 다시금 불만으로 가득한 선수들과 불행한 팬들이 모이는 장소로 되돌아가고, 미래는 너무나 암울해서 애초에 우리가 왜미래가 밝다고 생각했는지 까닭조차 생각나지 않게 되자, 나는 도로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지금 1992년의 대몰락을 겪으며 글을 쓰고있노라니, 내용에 공감할 기회가 더러 있었다. 렉섬은 스윈던과 대단히 흡사한 복사판이라, 그들에게 진 경기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되새기게 할 정도로 창피한 사건이었다. 내가 그 옛날 1960년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의 지루하고 지루한 아스널을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것과 동시에, 라이트와 캠벨과 스미스와 그 밖의 선수들은 친절하게도 골을 넣는 것을 딱 멈추고 역사 속의 선배들과 똑같이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렉섬과의 경기 일주일 후에 있었던 애스턴 빌라 전을 보는 동안, 나의 축구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뼛속까지 시린 1월, 안절부절못하고 이따금 화를 내보긴 하지만 대부분 지쳐서 - P380

참아주고 있는 관중 앞에서 벌어지는 무의미한 경기, 별 볼일 없는 팀을 상대로 거둔 0 - 0 무승부………… 예전과 다른 것이라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이언 어가 보이지 않고, 내 옆자리에서 투덜투덜하는 아버지가 있지 않다는 사실뿐이었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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