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 홈에서 브라이턴을 맞아 2-0으로 이긴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의미가 없었고, 언젠가 또 아버지와 함께 경기를 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내가 함께 본 첫 경기도 마찬가지로 별 볼일 없었으니, 그저 거기에 앉아 있던 우리 세 사람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아버지는 휴대용 술병을 꺼내 컵에 술을따르면서 아직도 늘 똑같은 저놈의 아스널을 보고 있다고 투덜투덜댔고, 나는 의자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몸을 꼬면서 좀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추위에 하얗게 질려 있던 아직어린 조너선은, 형과 아버지가 1968년에 봉착했던 문제를 축구 관람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있었을 것이다. - P212

결국 나는 축구를 보며 살아온 나날 중에서 다른 어떤 때보다도바로 그 기간에 상황이 나쁜 것은 나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경기 결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자기 지역 팀을 동네 레스토랑처럼 여기고, 그들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쓰레기 음식을 내놓으면 발길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나 같은 팬들이 아주 많다. (축구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수습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 가운데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는 소비가 전부다. 제품의 품질은 중요하지 않다. - P234

이것과는 달랐다. 축구 인생을 통틀어 나는 축구로 인한 우울증을참아주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사람들-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여자친구들,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아왔고 그들 모두 성격도 좋고 요령도 있어서 그렇게 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자신이 축구 때문에 우울하다고 주장하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 내모습을 발견했고, 그 모습은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1987년 리틀우즈 컵 결승전에서 좋아 날뛰던 그녀의 모습… 하지만 그것은그녀의 ‘첫 시즌‘이었단 말이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녀는 그 일요일 저녁 아스널 모자를 쓰고 우쭐거리며 술집에 들어갈 수 있었단말인가? 그럴 권리는 전혀 없었다. 피트와 나에게 이것은 1979년 이후 첫 트로피였는데, 어떻게 고작 넉 달 동안 경기를 보러 다닌 그녀가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시즌마다 우승을 하는 건 아 - P267

냐." 하고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초코바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아이가 전쟁 배급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쓸데없이 짜증을 느끼는 부모처럼 말이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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