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베는 ‘미처 깨닫지 못했네‘ 하며 팔짱을 끼고 마구리를 바라보았다.
"말은 골고루 흩어져 있는 게 아닙니다."
마쓰모토 선생이 미소 지으며 사랑스럽게 마구리의 검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끝말잇기에서 이기고 싶으면 단어끝이 ‘아행‘ ‘카행‘ ‘사행‘으로 끝나는 말을 피하고, ‘야행‘ ‘라행‘ ‘와행‘으로 끝나는 말을 궁리해 내야 합니다. ‘괴수‘나 ‘감사‘가 아니라 ‘가마쿠라‘ ‘가스토리‘ 같은 말을 상대한테 자꾸자꾸 들이대는 게 좋겠지요. 이게 좀처럼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요."
"마쓰모토 선생님도요?"
기시베가 놀라서 물었다.
"말의 바다는 넓고 깊습니다."
마쓰모토 선생은 즐거운 듯이 웃었다.
"아직도 한참 수업이 부족해서 해녀처럼 진주를 따 오지 못한답니다." - P245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편한 쪽으로 흘러가도록 안일하게살며 일을 해 왔을 뿐이니.
사전을 만들면서 말과 진심으로 마주서게 되고서야 나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든다. 기시베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이 갖는힘. 상처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에게전하고 누군가와 이어지기 위한 힘을 자각하게 된 뒤로,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고 주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주의 깊게 헤아리려 애쓰게 됐다.
기시베는 《대도해》 편찬을 통해 말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진실한 의미로 손에 넣으려 하고 있는 참이었다. - 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