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되 중심이 되지 말라"_정성헌/이문재

밥운동, 물운동, 불운동 셋이 맞아떨어져야
정 맞아, 애들이 안 움직이잖아요. 어제 TV를 보니까 서울시내 애들 중 놀 데가 없는 애들이 80%가 넘어요. 먹고 뛰어노는 게 기본인데. 하루에 필요한 활동량을 계산한 게 있어요. 13세까지는 일일 활동량이 2만 보 이상이래요. 그래야 건강한 몸이 된답니다. 19세까지는 1만8,000보고, 어른들은 7,000보 이상이면 괜찮대요. 그런데 기분 좋게 걸을 데가 마땅치 않아요. 난 조금만 살펴보면 생명사회를 만들 수 있는생활운동은 아주 쉽다고 봐요. 문제는 지나친 디지털화예요. 이런 연구결과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4만 회 이상 질문을 - P173

해야 뇌가 정상적으로 발육이 된다, 그런데 온갖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차단하고 있어요. 애들이 자극적이고 빠른 것에만 반응을해서 즉자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이 ‘가속 노화‘라고 있다던데요.
정 그래요, 젊은이들이 빨리 늙어가요. 어린이 성인병까지 생겨나잖아요. 이거는 전적으로 잘 먹지 않고 잘 움직이지 않고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거거든. 이걸 역으로 뒤집으면 해결이 돼요. 덜 소비하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교육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면 됩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인생과 사회의 주인으로 사는 것과 디지털문명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고 봐요. 이렇게 진짜 인문적교양을 쌓게 하면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오지 않겠어요.
어쨌든 나는 밥운동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고, 밥을 제대로 먹으려면 땅하고 물을 살려야 하는 거고. - P174

인터뷰 마무리로 대담집 마지막에 실린 ‘정성헌의 귀띔 40가지 중 일부를 옮긴다. 선생의 운동론과 구체적 실천 지침, 사상, 비전이 압축되어 있다.

• 보고 싶은 사람이 돼라.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사람은 보고 싶은 사람과 똑똑한 사람을 넘은 그 무엇일 것이다. 남이있어야 내가 있다. • 마음의 스승을 모셔라. • 나의 분신을 찾아라. 나와뜻을 함께할, 나보다 더 훌륭하게 일할 좋은 사람을 찾아라. 그런 사람이 많아야 튼튼한 조직이 된다. 크게 생각하고 멀리 보되, 실행에서는작은 일부터 구체적으로 면밀하게. • 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육이다. 교육에 충실하라. • 그 사람이 주체가 되게 하라. 남을 운동하게 하는 게운동이다. • 강사가 돼라. 강사가 되면, 누군가를 가르치면 자신감과 사명감을 가지게 된다. • 쉬운 말을 써라. • 반드시 현장을 조사하라. 현장을 조사하면 그 과정에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운동을 하게 된다. 공을 세우려 하지 말고 일이 되도록 하라. • 중심이되 중심이 아니어야 성공한다. 오죽하면 그러겠냐‘는 측은지심을 가져라. • 풀을 아끼는 게 나를 아끼는 것이다. 시민을 넘어 천지인민, 국민 5% 즉 250만 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상유십년(尙有十年)! 우리에게는 아직 10년의 시간이 있다. 3년간 해보고 1년 조정기를 거쳐 다시 3년씩 두 번 더 해보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 - P177

이 들녘이 낯설다_최용탁

내가 다섯 살이던 1969년에 아버지는 당시 열풍처럼 일어나던 이농을 감행,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갔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우리가 처음자리를 잡은 곳은 청계천 둑길 아래 철길이 지나가던 판잣집이었다. 얇은 합판을 얼기설기 붙인 두어 평 남짓한 박스 같은 집에서 할머니와고모까지 여섯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는 고물상으로, 어머니와 고모는방직공장으로 일을 나가면 동생과 나는 밖이 무서워 나가지도 못하고종일, 기형도 시인의 표현대로 ‘찬밥처럼‘ 집 안에 담겨 웅크려 있었다. 거기서 채 일 년도 살지 못했다. 어느 날 판잣집이 헐린다 했고 곧 우리식구는 군용트럭에 세간과 함께 어디론가 실려 갔다. 그곳이 지금의 성남, 당시에 광주대단지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요컨대 대대적인 서울 판잣집 철거에 따라 강제이주를 당했던 것이다. 산을 밀어 황토가 발목까지 빠지던 수진리고개 근처에 천막을 치고 아버지는 불하받은 땅에 벽돌을 찍어 직접 집을 지었다. 하지만 기반시설이 전혀 없이 수만 명을강제로 몰아넣은 광주대단지는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나마 방두 칸짜리 벽돌집이라도 서둘러 지은 우리는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곳곳에 겨우 천막을 치고 하루 먹을거리를 찾아 눈에 불을 켠 사람들이아귀다툼을 벌였다. 내 기억이 그 무렵부터는 아주 선명하다. 아버지가일하던 고물상에 종일 붙어 앉아 폐지로 들어온 만화책으로 글을 익힌다음 닥치는 대로 만화와 잡지 따위를 읽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거친 어른 남자들의 드잡이와 욕설, 툭하면 일어나던 칼부림까지 어린 내게 심연으로 남은 시간이었다. - P180

위기 이후의 경제철학을 위하여_홍기빈

이는 진화를 유전자의 변화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편향을 보여주는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찰스 다윈이 개진했던 진화이론은 유전자와 무관한 것이라는 점, 유전자의 발견과 연구는 20세기의 산물이지만 다윈의 진화 이론은 그 훨씬 전인 19세기 중반에 발전되고 개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여, 다윈이 제시하였던 진화의 핵심 개념은 자연선택과 생물종의 적응변화, 두 가지이며, 이 두 개념은 유전자와 같은 좁은 의미의 생물학적 현상으로 국한될 이유가 없다. 생명체의 적응 노력은 한시도 쉬지 않고 또 무한히 다면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자연의 선택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 P185

딜레마가 아닌 파국_정희진

이는 안보 딜레마의 원리가 가져오는 평화와 비슷하다. 안보 딜레마는 자국의 안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자위력 행사‘가 주변국의불안을 일으켜 다른 국가 역시 군사력 증가로 대응함으로써, 군사력 상호 경쟁의 안보 불안을 말한다. 이 불안은 모두가 총을 들고 있지만 쏘지는 않는 상태 혹은 쏘겠다고 협박하는 상태를 말한다. 전쟁의 기운은상존하지만 전쟁은 아니다.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가짐으로써 유지되는 전쟁 없는 상태, ‘평화‘다. - P197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오펜하이머의 딜레마와 좌절이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살릴 수 있는 인류와 죽어야 하는 인류. 그자신 이후의 과학기술…. 미국이 수소폭탄을 개발하면 소련은 더욱더강력한 수소폭탄을 개발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인간의 삶은 본디 딜레마와 좌절로 점철되어 있지만, 오펜하이머처럼 지구의사를 좌우하는 경우라면? 그는 모순된 인물이 아니라 엄청난 모순을 감당할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능력이 책임감이라고 할 때,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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