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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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지 않으려 했다. 아니, 정희진 선생님의 책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 읽으려 했다. 도서관에서도 여러 번 마주쳤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도 몇 번인가 사려다 그만 두었다. 12월에 다녀온 정희진 선생님의 북토크에서 선생님께서 본인의 책 중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는 책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책이다(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으나 이런 취지로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그 말을 듣고서야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사면 바로 읽지 않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제목의 친밀한폭력이라는 상반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그러나 아내 폭력의 현실을 이렇게 잘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이 있을까? 가정이라는 친밀한 공간에서(누구에게?), 누구나 편안함을 누리고(누가?) 사랑을 주고받고(누군 주고 누군 받고?) 이해 받아야 할 것 같은 친밀한 공간에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말해도 이해 받지 못하고 흔한 부부간의 갈등이나 다툼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폭력,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행하는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리처드 겔즈의 연구에 따르면, 5년간 미국에서아내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의 수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의 수와 비슷하며 미국의 소아마비 환자 모금 본부(March of Dimes)에 의하면 임신중 남편의 구타가 기형과 유아 사망의 주 원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 기혼 여성의 5퍼센트는아내 폭력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호소하였다. - P38



이 책을 읽으며 경제력에 대해 착각 내지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이 경제력이 있다면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업주부로 살다보니 경제력이 없어 폭력을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 경제력이 있었다면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났을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에 있는 사례 중에서 많은 경우 남성이 무직이거나 돈을 벌어도 돈을 주지 않고 오히려 여성이 돈을 벌어 남편과 가정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녀들은 지옥에서 탈출하지 않는가? 어린 자식 때문일 수도 있고, 여성 스스로 가정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이혼녀로 낙인 찍히는 것이 더 두려운 사람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공포.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거나 도망치다가 남편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폭력은 예측가능한 고통이지만, 언제 남편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한 공포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도망쳐 나왔지만 알 수 없는 불안공포속에서 살기보다 예측가능한 고통속으로 들어간다.


사례의 폭력 남편들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본 연구의 50사례 49명의 남편 중 약 40퍼센트인 19사례가 무직이었다. 직업이 있다 해도 부인과 함께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아내 혼자 일했다. 이 문제로 아내가 불만스러워하거나 항의하면 남편은 폭력으로 대응한다. 이는 현대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인 성별 분업 논리가 실제로는 분업이 아니라 협박과 강제 속에서 여성의 이중 노동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준다.(실제로 여성은 세계 공식 노동력의 3분의 1, 비공식 노동력의 5분의 4를 담당하면서, 전 세계수입의 10퍼센트만을 받으며 세계 재산의 1퍼센트만을 소유한다.) - P158



이 책의 주장은 폭력이 문제야가 아니라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을 통해 아내 폭력이 정상화, 사적화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이 글의 초점은 가족이라기보다 폭력이다. 즉 본 연구가 밝히고자 한 것은 가족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아내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이 연구는 가족 관계에서는 폭력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가족에서는 폭력이 발생할 리가 없다는 담론에 대한 비판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 관계가 권력 관계라면, 어떤 의미에서 폭력은 불가피한 인간 문제이다. 나의 관심은 부부 간에 폭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부부 간에는 폭력이 발생할 리 없다고 믿게 하는 사회적 권력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아내 폭력이 문제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폭력이 가족 관계에서 발생해서라기보다는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을 통해 폭력이 정상화, 사적화(私的化, privatization)되기 때문이다. - P250



아직도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을 가벼이 생각하는 세상. 이 책의 초판으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북어 운운하는 속담은 퇴출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맘충과 된장녀라 불리는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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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7 2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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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8 0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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