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월담 공동대표 리조의 몸

움직임의 시작은 내 몸이지만 계속 움직이게 하는 건 관계예요.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건강과의 관계, 또는 예기치 못했던 관계. 저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관계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경험을 해요.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교육이 가능했고요. 그래서 우리는 늘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배움을 풍성하게 하고 삶을 지탱하는 힘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찾는 게 저희에게 항상 필요한 것 같아요. - P116

암 생존자 정지혜의 몸

저는 암을 치료한다기보다는 암에 대한 인식과 싸운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 투병은 인식과의 투쟁이에요. 아픈 사람에게도 욕구가있고 아픈 사람에게도 일이 필요해요. 아파도 일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고요. 저도 아직 임금노동을 못 하고 있어요.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거든요. 젊은 암환자 중에는 완치 판정을 받았음에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아팠던 사실을 숨기는 분들도 많고요. 이런 공감대를 가진 분들끼리 일을 서로 품앗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도 그런 모임에 나가볼까 알아보고 있어요. 임금노동을 못할 거면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최근엔 여성 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WSW‘를 하고 있어요. ‘We are still working‘의 약자로, 한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 P131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의 몸

다만, 그룹에 속해 있거나 신인일 때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솔로활동을 하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아이돌이라는 직업 특성상 조금만 움직여도 반응이 뜨겁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려운상황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목소리를 내는 여성 아티스트가 늘고 있다는 것이 무척 긍정적이고 고맙죠.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얼마나 어려운 환경인지 너무 잘 알아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하는여성 아티스트를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 P146

배우 김꽃비의 몸

배우 김꽃비는 커다란 헬멧을 옆구리에 낀 채 녹음실에 나타났다. 그의 별명은 바이크 전도사로, 운전자 성별, 바이크 기종, 운전기량 등으로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 바이크 문화를 꿈꾸고 있다. 김꽃비의 이야기 중 내 마음 깊이 박힌 표현은 "바이크가 페미니즘적 수행처럼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사륜차들이 달리는 도로위에서 바이크 운전자는 ‘어디 감히 이륜차가!‘라는 차별적 시선을 받는다. 이는 ‘어디 감히 여자가! ‘와 비슷한 인식 아닌가. 여성운전자라는 게 드러나는 순간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반면 페미니즘적 해방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온몸에 힘을 실어 기체를 통제하며 질주할 때의 터질 듯한 희열은 그가 말할 때 표정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김꽃비의 수행을 칵테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아일랜드의 바 메뉴 중에서 골라보았다. 탐험가, 등산가, 사진가로 활동했던 여성들을 기억하기 위한 술이다. 오래 숙성해 풍미가 깊어진 럼에 시럽과 각종 향신료를 섞은 뒤 큼직한 사각 얼음을 빠뜨린다. 잔에는이런 문구가 함께 적혀 있다. "밧줄을 짧게 매고 도끼를 꽉 쥔 채깊은 심호흡을 한다. 발걸음을 내딛는다. 저 비명을 지르는 허리케인의 한가운데로!" - P161

군인권센터 활동가 방혜린의 몸

그런데 어느 날 상급자가 저를 부르더니 "넌 남자냐여자냐?" 물어보는 거예요. 그 질문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나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나는 뭐지? 나를 고쳐야 하나? 군생활 끝날 때까지 고민했죠. 제 몸을 그대로 인정하기까지 페미니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몸과 제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고, 군생활 내내 답답했던 부분들에 대한 답을 줬어요. 질서가 모두 만들어진 것이고 이를 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잖아요. 페미니즘 활동에서 시작해 활동가의 삶으로 이어진 것도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에 보탬이되고 싶은 욕망이 담긴 거죠. - P181

대학원생 김유빈의 몸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용기에 관한 것이에요. 제가 최근에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거든요. 처음 다가갔을 땐 아이들이 저를 피했어요. 그런데 나중엔 저멀리서 제가 나오는 모습만 봐도 막소리를 지르면서 뛰어오는 거예요. 제겐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어요.
밥을 한 번 주면 계속 줘야 하잖아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부담도 생기고, 또 제가 며칠 놀러가는 일이 생기면 그 아이들은 굶어야하는 거잖아요.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도 있고요. 나이드신 분들은 이해를 못하시고 화를 많이 내시죠. 이런 상황에 맞서야 할 때 용기가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계속해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이유는,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너무 신기했어요. 물론 그들은 제가 주는 밥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요. 하지만 제가 밥을 주지 않아도 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고양이들은 - P198

밥을 먹고 나면 배를 보여주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거든요. 그런모습을 볼 때 기분이 좋아요.
우리는 다 달라요. 많이 다르냐 조금 다르냐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스펙트럼이 있을 뿐이에요. 남과 다르다고 생각해도 그게 자기 자신을 슬프게 할 이유는 못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지만,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용기를 내면 기쁜 일도 많이 생기거든요. - P199

사진가 황예지의 몸

사진을 찍을 땐 무조건 피사체에 맞추려고 해요. 그들이 불편해하는 순간 무조건 카메라를 내려요. 나중에 그들이 사진을 봤을 때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색이 보인다면 그 사진을 삭제해요. 당연한 것이에요. 여태까지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고요. 많은 여성 모델들이 남자 사진가가 자기 몸을 만지거나 여기서 더 벗으면 사진이좋아질 거라고 강요했다고 제게 말했어요. 그런 말들을 듣고 명확해졌어요. 내가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은 그런 것이구나. - P223

다큐멘터리 감독 김보람의 몸

내 몸을 받아들이려 노력해도 쏟아지는 광고들, 길 가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내 몸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고 아름답지않다는 생각에 다시 빠지게 되더라고요. 몸을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혐오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내 몸을 비교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해도 허기는 밀려오죠. ‘그래도 나는 아름다워‘라는 생각은제게는 좋은 방법 같진 않았어요. 다만 매일매일의 싸움이란 생각이들었어요. 어느 순간 깨닫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나의 욕망과 싸우는 과정의 반복이 아닐까.
허기를 느끼는 제 모습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과매일매일 싸우는 게 저를 훨씬 더 외모 중립적으로 바라보게 하더라고요. 광고나 드라마, 영화 같은 이미지와 맞서려면 그것과 싸우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읽고 보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 시트콤을 좋아하는데, 끊임없이 다른 몸과 다른 존재들이 나오거든요. - P230

월경컵 사업가 심윤미의 몸

‘페미니즘‘이란 학문을 처음 만난 건 2015년이었다. 그 무렵 대학 내 독립언론 기자로 교내 성폭력 사건을 취재중이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성 언론 기사가 없었다. 한계를 느낀 나는 책의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때 읽은 책은 정희진 작가가 쓴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이었다.
내가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이 이미 글과 학문으로 질서정연하게 설명돼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동안 겪었던 적지 않은일들이 내 잘못이 아니었으며 오로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겪은 것이었단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책에는 군사주의를 남성성과 연결하여 여성주의적 시선으로분석한 챕터가 있는데, 그 대목은 내 시야를 확장해주었다. 여성주의는 마구 가지를 치면서 평화학으로까지 뻗어나갔다. 그러니까여성주의로 나와 같은 여성의 개인사를 설명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군사주의와 폭력 같은 거대 담론도 설명할 수 있었다. 처음 여성주의라는 세계에 발을 디딘 나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주의는 어떤 목표를 위해 도달해야만 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하나의 시선으로서 세상을 넓게 바라보게 해주는 통로에 가까웠다. 책을 읽고 여성주의자로서 궁극적으로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군사주의적 문화에 저항하고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폭넓은 해석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 P305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저지르세요. 제가 저지르는 인생을 47년 살았는데요, 큰 사고는 안 나요. 물론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인가, 이것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인가, 이런 고민은 충분히 해야겠지만 누군가가 말린다는 이유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고 치세요. 다가오는 해에는 사고친 여성들의 기사가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 P313

작가 정지민의 몸

저는 결혼하면 남편이 가사를 안 도와주거나 시가가 저를 충분히존중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제 안에 내재된 ‘한국 남자‘ DNA를 발견했어요. 아빠에게 배운 걸 그대로 집에서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밖에서 일하고 남편이프리랜서로 집에 있는 상황인 게 큰 이유일 텐데요. 밖에서 일하는 입장이 되니까 저도 별다를 바 없이 다른 남성들처럼 이야기하더라고요. 단순히 여성이라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게 아니듯이 자기가 조금더 많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서 성찰 없이 행동하면 누구나 다 가부장적인 남성처럼 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남편이 전기밥솥에 밥을 넘칠 정도로 해둬요. 밥을 조금만 더 하면 밥솥이 폭발하겠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맛이 없었어요. 한번은 짜증을 냈어요. "왜 이렇게 밥을 한 번에 많이 해, 나눠서 하지." 그런데 남편도 집에서 일을 하거든요. ‘나눠서 하면 밥을 너무 자주 해야한다. 나는 한 번에 많이 해놓는 게 좋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순간 "우리 엄마는 이렇게 안 했는데, 우리 엄마는 맨날 밥해줬어"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남편 얼굴을 봤더니 ‘매우 빡침‘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저한테 "네가 한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라고 했어요. 그게결국 남편들이 아내에게 ‘우리 엄마는 이렇게 안 해줬다. 우리 엄마처럼 해달라‘고 하는 말이랑 똑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큰 반성을 했죠.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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