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정말로 중요한 일_김정현
노골적인 군사적 침략이라는 모습을 한 식민주의시대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구조조정과 조건부 차관, 불평등한 무역협정이 식민주의의 도구가아니라면 무엇일까. 선진국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난민문제도 따지고 보면 (테러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실은 바로 그들 자신, 북반구 주민들의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이 초래한 수많은 비극 중의 하나인 것이다. 고 권정생 선생은 이라크전쟁 때 우리가 파병을 안할 수 있으려면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단지 우리 경제가 석유에 깊이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은강대국들의 부(富)가 약소민족들의 피눈물과, 자연의 파괴와 약탈로써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내가 타고 가는 승용차 기름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평화의 길은 멀지 않을것"이라는 말 속에는, 식민지-제국주의-군국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석유문명,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서 평화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근원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 P5
오늘날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예를 들어서,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그러나 지구 저편에 있는 숲이 벌목될 때가슴이 미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기억(직접경험)에서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그 비슷한 울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예를 들어서,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해온 뒷동산의 은행나무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감수성의 한계를 가진 인간은 자신이 친숙하게 알고있는 장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유추하여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세계의 도시화율이 55%라는 사실은 (2050년이 되면 70%에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전 세계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더이상 어떤 장소에도 귀속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실에 경제논리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 더해지면, 망실되는 목숨붙이들이 얼마가 되든지 개발의 가차 없는 행군을 막아설 장애물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현재 정부수입의 3분의 1이 석유에서 나오고 있는데도불구하고 에콰도르 국민 60%가 개발보다 보존을 선택했다는 사실은다른 무엇보다도 이 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장소를 내밀하게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관찰자로 머물러서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적극적으로 아끼고 보살피고, 스스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일이며, 무엇이정말 필요한 일인지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 P9
더 좋은 경쟁논리 대신 반전의 시대정신을_조형근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에 나선 것이 2001년이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싸우고 또 싸웠다. 그 처절한 싸움의 결과 2022년 1월, 드디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장애인들이기뻐했다. 그런데 살펴보니 예산 편성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실행 의지가 진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들이 분노한 이유다. 물론 장애인이분노한다고 해서 시민이 겪는 불편이 당연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장 - P35
애인이 겪어온 평생의 불편도 당연하지 않다. 당연하지 않은 사실들에대해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민의 불편과 장애인의 불편이 원래 대립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장애인 예산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에 그친다. 평균만큼만 써도세상이 달라지고 좋아진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평생 시설에 갇히지않아도 되고, 세상을 다니며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한국은 못하는 게 아니다. 안하는 것이다. - P36
비용절감, 효율화의 욕망에서 두 진영의 엘리트와 핵심 지지층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핵심 지지층은 능력주의경쟁을 이겨낸 자신감 넘치는 고학력 상위 중산층으로 점차 채워졌다. 자기 진영이 보수진영보다 더 유능하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운영할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엘리트들이 효율화를 외치며 노동시장의이중구조화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심화시켰다. 우리 시대 노동의 비극은 일부 재벌, 보수세력이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낸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우리도 효율적으로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고 이편에서 목청을 높인 이들, 그들에게 박수를 친 우리의 욕망이 있었다. 우리 안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서 이 모욕적인 신분제를 극복할 수없다. - P40
이윽고 영국의 좌파사상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소개한다. "사다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다. 당신은 사다리를 혼자 올라간다. 그 결과 노동계급과 공동체의 연대감은 약화되고, 위계라는 독을 달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의 강화 탓에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겼으니 그 사다리를다시 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소위 진보 개혁진영의 상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사다리의 논리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능력에 따른 개인의 사회적 이동가능성이라는 문제로 대체한다. 사다리를 타고 오를 기회가 잘 제공되기만 한다면 불평등 자체는 아무리 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누가 그 기회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모두 경쟁의 논리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이 바로거기서 숨 쉬고 있다. 함께 돕고 기대자는 연대의 정신은 거기 없다. - P41
뉴미디어 시대의 언론과 정치권력_전홍기혜
증오를 극복하는 증오는 없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대중은 어리석은 우중이 아니다. 한상원 충북대 교수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원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왜 진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탈 - P49
진실(post-truth)‘을 선택하는가? 반지성주의를 탓하고 비난하고 이에대한 반증을 들이밀기 전에 이들에게 사실, 현실은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필터버블‘이나 ‘확증편향‘은 진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부족이나 부재에 있지 않다.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을 차단하고 토론을 거부하는 이런 선택적 또는적극적 반지성주의는 "공론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 등 기존 사회에 확산한 차별적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한 교수는 지적한다(<한겨레>, 2023년 10월 23일).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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