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젝시옹, 아브젝트, 공포

‘이 모호함의 답답함·고통·현기증’이라니 딱 이 책을 읽는 나의 상태 아닌가! 😰
아브젝시옹이란 무엇인가, 아브젝시옹은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도스토예프스키 <악령>
프루스트 <소돔과 고모라-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조이스 <피네건의 경야>
보르헤스 <알레프>

역자 서문

대략 1973년부터 정신분석적인 관점에 지배당하기 시작하는 크리스테바의 이론적 작업은, 언어 주체 이론과 의미 작용의 과정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한다. 이같은 관심의 결실로 1974년에 출간된 국가 박사 학위 논문인 《시적 언어의 혁명》은, 크리스테바의 언어에 대한 이론적 작업의 사실상의 결실이라고 할 만한 대작이다. - P12

1980년에 쓴《공포의 권력》이 공포와 비열함에 대한 이야기라면, 1983년의 《사랑의 역사》에서는 동서고금의 문학·역사·종교 - P12

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를 개진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에게 공포와 비열함/성스러움과 사랑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므로, 전자와 후자는 동전의 앞뒤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 P13

1. 아브젝시옹에 대한 방법론

아브젝시옹이 나를 점령할 때, 이 정서로 이루어진 덩어리는 사실 어떤 정의된 대상(objet) 자체가 아니다. 아브젝트(abject)는 내가 명명하고 상상할 수 있는, 내 앞에 있는 대상(ob-jet)이 아니다. - P21

음식물에 대한 혐오는 아마도 가장 오래 되고 기본적인 형태의아브젝시옹일 것이다. 우유의 표면에 손톱 부스러기처럼 보기 흉아이우우하고 잎담배를 마는 종이처럼 얇은 막이 생겼을 때, 그것이 눈에 아띄거나 혹은 입술에 닿았을 때, 목구멍을 지나 좀더 아래로 위장과 배로 내려가 모든 내장은 경련을 일으키고 눈물과 담즙이 분비되고 가슴이 방망이질치며, 이마와 양손에는 땀이 맺힌다. 시선을들끓게 하는 현기증과 함께 이 유지방을 향한 구토로 몸이 휘는데, 이때 나는 유지방을 내게 내민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분리된다. 이 음식, 즉 우유는 그들의 욕망일 뿐 나는 원치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아서 ‘내‘ 속에서 그것을 몰아낸다. 그러나 부모의 욕망 속에만 존재하는 ‘자아‘에게 이 음식은 ‘타자‘가 아니므로, 결국 ‘내‘가 놓여진 자리를 가능케 하는 움직임으로 나는 몰아내고 침뱉고 버린다. 이 하찮고 무의미한 것, 그러나 그들이 바라고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게 부과한 사소한 것은 내 창자를 꼬이게 하고, 나를 마치뒤집힌 장갑처럼 만들어 놓는다. - P23

이처럼 시체는 삶 속에 죽음이 들끓게 한다. 대상에 대해서처럼, 우리는 아브젝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분리될수도 없다. 상상적 이질성인 동시에 현실의 위협인 아브젝트는 우리를 부르고, 결국에 가서는 삼켜 버린다. - P25

아브젝트에 점령당한 사람은, 스스로를 인식하거나 욕망하거나 어딘가에 속한다기보다는 밀려나고 분리되고 방황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 P30

왜냐하면 아브젝트가 희열을 느끼는 곳은 배제된 영역에서의 길잃음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분열시키는 아브젝트는 필경 부단히 회상되는 운명을 가진 망각의 땅일 것이다. - P31

아브젝트는 주체와도, 대상과도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가 타자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기 위해 자신의 영상을 무너뜨린깨어진 거울 속에서 완전히, 또 욕망의 ‘a‘ 라는 대상이 폭발하는희열 속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것은 그저 변형된 자아가 된 ‘타자‘가 ‘내‘가 그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전락한 존재, 승화된 정신착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추락하도록 놓아두는 혐오스런 선물이요, 단지 경계일 뿐이다. 희열 속에 주체는 삼켜지지만, 반대로 타자는 혐오스러워짐으로써 자신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온순하게 순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왜 그토록많은 아브젝트의 희생자들이 매혹당한 희생자인가를 이해할 수있다.
경계선임에 틀림없는 아브젝시옹은 경계선 중에서도 모호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방해를 제거하면서 주체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주체를 분리시키는 대신, 반대로 주체에게 끊임없는 위험을 고백할 뿐이기 때문이다. - P32

나는 내게 있어 더 이상은 동화될 수 없는 세상에서 기호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순수한 상실 속에서 그것을 펼쳐 보인다. 명확히 하면 나는 다른 누구일 뿐이다. 자아의, 대상들의, 기호들의 출현에 있어서의 모방의 논리. 그러나 내가 ‘나‘를 찾으려 하거나 잃어버리거나 혹은 유희할 때 나는 이질적이 된다. 이 모호함의 답답함·고통·현기증은 반항의 폭력으로 그곳에서부터 대상과 기호들이 떠오르는 공간을 한계짓는다. 그것을 나의 영토라고 말해도 좋을 뒤틀리고 얽혀 있는 양가성(兩價性)을 지닌 이질성의 흐름은 변형된 자아로서, 내 속에 살고 있던 ‘타자‘가 혐오감으로 그렇게 지시하기 때문이다. - P33

그것은 환희이자 동시에 상실이다. 인식과 단어의 안쪽이 아닌, 항상 그것과 더불어 그것을 횡단하는 숭고함은 우리를 부풀리고 넘쳐나게 하며, 던져진 주체인 동시에 타자이자 터뜨리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일탈이자 구획의 불가능이고 완전한 결핍, 즐거움 매혹이다. - P36

따라서 누군가가 되기 전의 ‘나‘는 이차적인 과정을 통해 획득된 내가 아닌 분리되고 버려지고 아브젝트한 무엇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의 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과 공존하는 동시에 영원히 그것을 약화시킨다. - P37

결국 아브젝시옹이란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위기이다. 즉 아브젝시옹만이 나르시시즘‘ 이라 불리는 이 상태의 덧없음을 증언하며, 신은 비난하는 질투로 그 사실에 침묵한다. 게다가 아브젝시옹은 나르시시즘(사물이나 개념에 대한)에 ‘외관‘을 부여한다. - P39

아브젝시옹은 죽음(자아의)을 거친 부활이다. 그것은 죽음의 충동을 삶과 새로운 의미 작용으로의 도약으로 변형시키는 연금술인 것이다. - P40

아브젝트는 도착성과 친척뻘이다. 아브젝트는 도착적인데, 내가 느끼는 아브젝시옹의 감정은 초자아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금지나 규칙 · 법을 무시하거나 파기하는 차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왜곡시키고 곡해하고 부패시킬 뿐이다. 즉 그것들을 더 잘 부인하기 위해 실컷 이용하는 것이다. - P40

자신의 초자아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주체에게 있어 이와같은 글쓰기는, 도착성과 성격이 같은 어중간한 중간자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도착성이 아브젝시옹을 야기시킬 차례이기 때문이다. 아브젝시옹의 텍스트는 초자아의 성격을 부드럽게 한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아브젝트를 상상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고, 언어의 유희라는 이동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관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브젝트와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1

서구의 근대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 성서에서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젝시옹은 원시 사회의 오물 같은 것들과 합쳐지기 위해 문화적으로는 원죄 이전, 시기적으로는좀더 고대적인 것에서 그 공명하는 바를 찾아낸다. 우리의 미학적인 노력, 즉 상징적인 구조의 기반을 향한 하강은 ‘타자‘가 붕괴된세상의, 말하는 주체의 허물어질 듯한 한계를 회상하려는 것이다. 말하는 주체의 기원에 더 가까이 간다면, 그 밑이 보이지 않는 ‘근원‘은 원초적인 억압일 것이다. ‘타자‘가 보유하는 예술적 경험 속에서 ‘주체‘와 ‘대상‘은 동화 가능하고 사유 가능한 것들의 한계에서 서로를 배척하고, 대항하며 붕괴되고는 다시 시작하고 오염되고 구형받는다. 그것이 아브젝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로트레아몽· 프루스트 아르토 · 카프카.셀린……… 이들의 위대한 근대 문학은 이러한 영역 위에 펼쳐져 있다. - P43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아브젝트는 《악령》의 ‘대상‘이다. 그에게서 아브젝트는 인간 존재의 목적이나 행위 동기가 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작품 속의 인물들은 절대적 한계인 신(도덕·사회 · 종교 · 가족 • 개인사)을 완전히 거절함으로써 정말로 타락하여 인간존재 자체의 의미는 붕괴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브젝시옹은, 모든 의미와 인간성이 마치 재 속의 화염처럼 타올라 소멸되는 상태와 자아가 자신의 ‘타자‘와 대상을 잃어버리면서자살로 치닫는 결정적인 순간, 아니면 약속된 땅과의 화음이 절정에 이르는 황홀경 사이에서 동요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살하는키릴로프 또한 살인자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만큼이나 아브젝트하다. - P44

분석적인 언표의 ‘시적인‘ 탈중심화는, 미망에서 깨어난 슬픔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한 순수성과 균형을 이루면서 아브젝시옹과의 근친 관계, 그것과의 공생 관계, 그리고 아브젝시옹에 대한 ‘앎‘을 증언한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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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08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언급된 책들중 아무것도 안읽었네요. 이럴 수가.. 그렇다면 공포의 권력 읽기 더 힘들겠죠 ㅠㅠ

햇살과함께 2024-01-08 18:00   좋아요 0 | URL
저걸 읽는다고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요..... ㅎㅎ 어렵습니다.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