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깨어난 1970년대
케이트 밀릿의 베스트셀러 『성 정치학』의 핵심 주장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여성이라는 종을 종속시키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 P197
1960년대의 운동이 여성을 위한 성 해방론자들의 투쟁이었다면, 1970년대 말과 그 이후의 운동은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싸움이 되었다. - P199
여성들은 "정치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며 내 삶의 조건을 이루는 본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기시작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획기적인 에세이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에 나오는 다음의 발언은 1970년대의 현명한통찰을 포착한다. "의식이 각성되는 시대에 살아 있다는 것은 짜릿한 기쁨을 준다. 그것은 혼란스러울 수도, 방향감각에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 P200
책의 핵심부에서 밀릿은 군사, 산업, 기술, 대학, 과학, 정치,금융 분야에서 여성을 남성의 독점 행위에 굴복시키는 제도가 보편화되었다고 강조한다. 밀릿에 의하면 이런 구조를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공격적이거나 가학적인) 남성적 특성과 (수동적이거나 피학적인) 여성적 특성을 만들어내는 제도가 있으니,바로 가족이다. 사실상 가족이 해부학적 성과 구분되는 심리학적젠더 역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부양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며 사는 여성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적대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신이라는 모범적인 ‘아버지‘를 곁에 둔가부장제는 기본적인 신화들을 (판도라나 이브가 이 세상에 악을 가져왔다는 식으로) 이용하여, 인간 삶의 해악들은 제멋대로 구는 여성 때문에 생겨났으니 그들을 반드시 남성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굴종은 여성이 자신의 예속을 묵묵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과정을 통해 성취된다. - 성 정치학 - P203
밀릿은 레싱에게 『금색 공책』에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던 장면은 여자 주인공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게 매달 일어나지만 어느 책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는, (…) 생리가 시작되는시점에 화장실에 있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응하며 레싱은 밀릿에게 자신의 어머니도 그녀가 책을 쓸 때마다 죽어버리겠다고 통보했으며, "언젠가는 어머니를 만족시키겠지 하는 희망을 계속 품지만 (…) 그래봤자 또 다른 죽겠다는 소동만 일으킬 뿐"이라고 고백하면서 글을 계속 쓰라고 격려했다. 밀릿이 7년간이나 항의했어도 베트남전쟁을 멈추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을 때도 레싱은 그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효과는 덜할지 몰라도 당신들은 뭔가 다른 일을 더 주목받게 만들었어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 사이에서 거대한 시계추와도 같은 사회적인 힘이, 변화가, 운동이 지금 널리 퍼져나가고 있잖아요." - P208
문학비평가 테리 캐슬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냉소적인 만가를 통해 그녀가 "거칠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미국인"이긴 했지만 "무녀 같고 유난히 감상적이고 보통은 엄청나게 지루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회고록 『우리가 사는 방식: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를 통해 이『해석에 반대한다』의 저자의 실체를 한층 아련하고 생생히 목격하게 된다. 맨해튼 북서쪽에 있는 바퀴벌레가 들끓는 아파트에서 살고, 담배를 끊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들 데이비드 리프와 데이트 중이던 누네즈의 시어머니 역할을 연극적으로 해내던 그녀의 실체 말이다. 삶은, 지적이고 페미니즘을 은밀하게 견지한 사람의 삶이라 해도, 이상할 수 있다. - P220
열정적인 행동의 시대였던 1970년대는 강력한 사변思辨의 시기이기도 했다. 여기서 사변이란 사물을 멀리 이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어원적 의미의 사변이기도 하고, 만약이라는 (만약상황이 다르다면, 더 좋다면, 훨씬 더 나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의 차원에서 묻는다는 의미의 사변이기도 하다. 이 시기 동안 에이드리언 리치와 다른 여러 운동가들이 사변 시를 창작했고, 그들의 많은 동료들이 남성 SF 작가들의 하드코어 SF보다 더 사변적인 페미니즘 SF를 창작했다. 열망을 지닌 여성들은 시, 소설 두 분야 모두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장르를 검토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 P251
오늘날 우리가 열정적으로 다시 읽기를 하고 있는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에서 캐서린 몰런드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는 "짜증나거나 지치게 만들지 않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교황과 왕이 전쟁을 벌이기만하고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여자는 아예 안 나온다. 정말 지루하다."" - P253
"우리가 그 사람이다."우리는 그 사람이다. 유일한 사람. 이들 부부 중 남은 사람이 바로 그 살아남은 사람이다. 내면에 파괴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재탄생의 희망까지 품고 있는 그한 사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리치가 새로운 종류의 사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결론짓지 않는다. 이성애를 그저 구석구석 배어 있는 제도가 아니라 "강압적인" 제도라고 규정한이후, 그녀는 자신이 "레즈비언 연속체"라고 부르게 되는 개념에 입각해 위치를 서서히 재설정하긴 했다. 그러나 이 시집은그녀가 갈망해온 개인적, 시적, 정치적 변화를 향한 자신의 진전을 축하하는 시들로 맺음한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시는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보내는 시 편지 「어느 생존자로부터」다. 이 시에서 시인은 깨진 결혼 생활에 대한 눈 밝은 통찰을 보여주고("우리가 맺었던 계약은 평범한 계약이었지요/ 당시의보통 남자와 보통 여자가 맺는 것 말이에요"), 그의 고의적인자살을 애도하며 "당신의 죽음은 낭비랍니다"), 자신이 대변인이 되는 이 1970년대의 변화 궤적을 묘사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던 / 지금 하기에는 너무 늦은 / 도약을" 이혼일까? 개인적인 변신일까? - "내가 지금 하며 살고 있어요 / 도약이 아니라 - P265
/ 연이어지는 짧고도 놀라운 움직임들이죠 // 각각의 움직임은다음 번 움직임을 약속하고요." - P266
이 두 작품(누런 벽지, 허랜드)은 1960년대에 그리고 1970년대에 점점 더 많은페미니스트들이 관심을 쏟게 되는 사변 소설의 등장을 예고했다. 1970년대의 ‘대각성‘을 우리 모두가 지배받으며 살아왔던성별 체제가 꼭 그래야 했던 길이 아니라 일종의 디스토피아였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 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와 대조적으로 페미니즘이 애써 목표로 삼았던 개정되고 수정된 체제는일종의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환상소설과 SF에 관심을 쏟았던리치의 동시대 작가들의 글에서, 가부장적 디스토피아에 대한반감은 페미니즘적인 (아마도 가모장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열 - P271
망만큼 핵심적인 주제였다. "현실에 기반을 둔" 소설가들과 달리 페미니스트 SF 작가들은 여성을 환상 속 행성이나 암울한디스토피아적 지형에 배치함으로써 여성이 받는 억압과 여성의 열망 모두를 극화시켰다. - P272
양성성에 대한 르 귄의 이 실험적 분석은 20세기 페미니즘SF의 가장 놀라운 성취였다. 그러나 르 귄의 겨울 행성은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이 소설의 큰 줄기는 얼음으로 덮인 이 세계의 정점에서 벌어지는 음모, 배반, 필사적인 도주, 그리고 서술자가 사랑하게 된 게센인의 죽음 등이다. 나아가 르귄자신도인정했듯이) 그녀의 양성성 묘사는 작품 내내 "그he"라는 대명사 사용으로 손상된다. 그녀의 게센인들이 남성이기도 하고여성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지만, "그"라는 대명사는 그들을 (그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뿐인) 남성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몇 년 후 르 귄은 게센인에 관한 또 다른 소설(「겨울의 왕(1969))을 써서 이 문제를 다루었는데, 여기서 그녀는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반복됐던 문제 많은 "그"라는 대명사를 『바람의 열두 방향』(1975)에 실으면서 "그녀She"로 고치고 이렇게 설명했다. - P290
자매애라는 꿈에 도취되어 있던 여성들도 자신들의 ‘자매들‘과 불화를 겪으며 애석해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앨리스 워커, 오드리 로드는 미국의 제2물결 페미니즘 시기에 연결과 상처가 가져온 정치적 여파를 가늠했다. 한편 맥신 홍 킹스턴의 회고록과 주디 시카고의 설치미술 <디너파티>는 자매애 문제 (그리고 딸들의 우애 문제)를 더욱 생생하게 탐구했다. - P296
종은 이 문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자기주장을 남성들에게 맞서 내세우지 못하니 우리끼리서로 맞서고 있다." 그녀는 은연중에 심리학자 필리스 체슬러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뜻을 내보였다. "우리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지도자들을 잡아먹었다. 이런 짓에 아주 능숙한 페미니스트들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었다."체슬러 역시 이런 행동 방식의 작동 원리를 분석한 바 있다. "힘없는 다른 조직들처럼 우리 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 권력에 남성들식으로몸으로 맞서 싸우는 것보다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 말로 맞서싸우거나 모욕을 주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308
이후 여러 해 동안, 로드는 레즈비언으로서 흑인 사회 내의동성애 혐오와 맞서 싸웠다. 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백인 페미니스트들의 유럽 중심주의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녀는 딸과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분리주의 동성애자들을 꾸짖었다. 그녀는 백인 남성과 결혼했었고 백인 여성과 함께 아이를양육 중인 흑인 여성으로서 인종차별적 분리주의자들을 비난했다. 그녀는 시인으로서 특권 계급 학자들이 번번이 무시하던경제적 불평등을 격렬히 비판했다. 암 환자가 되었을 때는 의료당국을 맹비난했다. 그녀는 아웃사이더의 분노를 분출시키며호전적인 자매가 되어갔다. 어울리기가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차이의 도가니들"을 대담하게 파고들었다. 이런 부단한 수고들이 에세이를 완성시켰다. (그녀는 시 작품으로 확보했던 독자층보다 더 광범위한 청중을 확보하기 위해 에세이에 공을 들였다.) - P311
로드의 격언적인 발언 대부분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뉴욕 퀸스 지역에서 열 살 난 아이를 총으로 살해하고도 풀려난 백인 경찰을 맹비난한 시 「힘」에서 로드는 인종차별이라는불의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켰다. "시와 수사의 차이는 / 우리의 아이들 대신에 / 우리 자신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에 있다."52 그녀의 가장 유명한 발언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무너뜨릴 수 없다"는 그녀가 참가하지 않았다면 흑인 여성이나레즈비언이 전무한 행사가 될 뻔했던 한 학술 회의에 참가하면서 쓴 에세이의 제목이다. 로드에 의하면,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인종차별적 가부장제의 산물을 살펴보겠다고 하면서(…) 똑같은 인종차별적 가부장제의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양한 형태의 억압을 모르는 척한다. "당신들이 페미니즘 이론을 다루는 학술회의에 와 있는 동안 가난한여성과 유색인종 여성이 당신의 집과 당신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인종차별적 페미니즘"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 P315
1970년대 말, 페미니즘은 이미 완전히 적대 세력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경고해왔듯이 "권력이란 그것이 어떻게 발전해왔든 그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투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포기되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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