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모쒀족에게는 아버지를 나타내는 어떤 말도 없으며, 이들의 속담에 따르면 "아이를 만드는 데남자의 역할은 초원의 풀에 내리는 비와 같다. 비는 풀을 자라게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38

이들은 데니소바인Denisoviens*이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와 교배했다. 네안데르탈 여성이 호모 사피엔스 남성과 성관계를 통해 혼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가졌던 것이 유전학적으로 입증되었듯이, 호모 사피엔스 여성과 네안데르탈 남성 사이에서는 여자아이만 태어난 것이 유전학적으로 증명되었다(남자아이는 자연 유산이 된다***). - P143

이러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유럽의 몇몇 구석기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사냥감을 찾아내서 흔적을 쫓고 사냥 전략을마련하며 창을 던지는 일까지, 사냥의 모든 단계에 참여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다가 구석기시대가 끝나갈 무렵부터 던지는 종류의 무기는 남성만 사용하도록 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 P168

일부 동굴 벽화가 믿음과 연관된 동기로 만들어졌다는 가설 내에서, 여성이 의식을 이끌지 않았다고 배제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선사학자들은 여성이 동굴에 있었음을 더는 부정하지 않지만, 여성이 작품 일부를 만들었다는 데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전문가가 많은데, 그들은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운다. 그렇지만 남성이 남긴 작품이라고 할 증거도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선사 예술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과 조각을 여성이 만들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 P172

아주 드문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역사적 사회, 전통 사회 또는 현대 사회에서 무기 사용과 사냥, 전쟁은 남성 전용이었고 가치 있게 평가된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생명을 주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사람은 동물보다 우월해졌다. 인류 중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성이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성에 우월성이 부여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보부아르는 이렇게 쓰면서, 도구와 무기를 만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초월transcendance‘의 한 형태로 연관시킨다. 그러면서 남성을 문화 쪽에 두고 여성은 자연 쪽에 두었다. 세계와의 일종의 유기적인 관계 내에서 남성은 자신의 조건을 극복하고 여성은 ‘한 곳에 머물러 있다demeure‘. 일종의 ‘보상‘의 형태라는 해석도 있다. 남자는 생명을 줄 수 없고(출산), 어린아이를 먹일 수도 없어서(수), 무기를 독점하는 쪽으로 갔으리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남자가 원래 폭력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며 이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 P189

1940년대 초반, 여전히 대중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아마조네스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만화 스토리 작가 윌리엄 몰턴 마스턴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비롯한 페미니스트 운동과 제2차 세계대전 중 여성의 사회 참여에 영향을 받았으며, 1941년 슈퍼 히로인 다이애나를 탄생시켰다. 다이애나는 아마조네스가 헤라클레스에게패한 이후 도망쳤던 테미시라 섬을 통치하는 히폴리테 여왕의 딸이다. 다이애나는 이 섬에 불시착한 미군 비행사 스티브 트레버와 함께 미국에 가서 범죄자와 싸우는 원더우먼이 된다. 그녀는 자유롭고 강하며 용기 있는 여성을 대표하며, 남자들에게만 허용되던 모든 활동과 직업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 여자 만화 주인공은 1954년부터 이미 논쟁을 불러온다. 남자아이들을 겁먹게 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이 되면, 그녀는 자신의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비서 다이애나 프린스가 된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다이애나는 아마조네스로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여성 감독 패티 젱킨스가 연출한 영화 <원더 우먼>에서처럼 말이다. - P207

적어도 기원전 600년 이전의 유럽에서는 여성이 여왕이고 섭정이며 여황제였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인류의 역사를 빛냈던 수많은 전쟁과 혁명에 참여했고,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그 가운데 몇몇은 유명할지 몰라도, 더 많은 이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시대적인흐름에 영향을 받아 19세기의 역사학자 대부분은 이 여성들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이 시기 의학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포크라테스를 계승한 ‘체액설‘을 재가동해서 남성의 기질(능동적)과 여성의 기질(수동적)로 구별했다. 자신과 남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남성에게 적절하다고 설정된 능력에 가치를 부여했고, 전쟁 행위가 특히 그것을 완수하는 것으로 되었다. 근대에도 남장까지 한 여전사들이 있긴 하지만, 이 시기에 여성들은 전쟁터에서 점차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내전을 제외하고는 20세기 초반에도 여성들은 전투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여전사는 기개와 담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입증했다. "여자 영웅이 남자 영웅을 만든다." - P208

1세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등장한 기독교는 얼마 지나410지 않아 어머니 여신 신앙을 거부했다. 325년에 열린 제1회니케아(지금의 터키 이즈니크) 공회의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신의 아들을 낳은 마리아는 여신이 아니라 ‘신의 어머니‘로서 추앙받게 되었다.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에서 멀린스톤은, 유대-그리스도교가 남성 신의 숭배와 가부장제를한꺼번에 받아들이게 하면서 최고신이 어머니 여신이던 과거 종교의 기억까지 지우려 했다고 비난했다.
"처음부터 원래 그랬다""라는 내용을 자주 읽지만, 신화는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버전이나와 옛것을 덮어쓰고 대체하는 것이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수도승 등 가부장적 사고에 젖은 번역자들은 원전 - P217

신화의 내용을 여러 차례 바꾸고 다시 손질했다. 이들이 "가부장제가 장악한 여신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고 거부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 P218

선사시대 여성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은 편견과 가설을 가지고 해석한 것인데도, 일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은 이를바탕으로 선사시대 여성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선사시대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남성에 복종한 피해자로 자신들의 삶을비참하게 만들었다면서, 이 시기를 "자연 상태état de nature"라고 여겼다. 《제2의 성》(1949)의 <역사>에서 보부아르는 고고학 자료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생물학적 결정주의에 함몰되어, 농업 이전의 선사시대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이들의 ‘본성nature‘ 때문에 소외되었다고 기술했다. 여성이 출산과 아이 양육 때문에 지식과 전문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적합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남성의 역할이 가치 있다고 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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