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시작되기전 사진액자에 비친 내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긴 머리가 내 얼굴을 감싸고, 이마가 반들거리는 모습. 저건 누구지? 밀려오는 욕지기. 액션, 사라진다. - P239

나에게 토론토에 있는 인터랙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알려준 것은 마크였고 나 역시 1년 뒤 그곳에 다니게 된다. 그곳에서도 나는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마크가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면서, 그럼으로써 나 자신에게도 가능한 한 그만한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성향덕분에 마크는 나보다 훨씬 과잉보호를 받으며 지내는 편이었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마크는 늘 부모님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소외되어 지내면서도 결코 혼자 있을 수는 없는 그런 아이들은 아역배우 세계에 흔히 존재한다. - P242

내가 느끼던 소외감과 외로움이 2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버지니아까지 따라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에는 쇼핑몰도 없어?" 사촌이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 고카트를 생각했다. 따뜻하던 호수도 생각했다. 성이 난 오리들. 해변에서 마신 차가운 펩시콜라. 정말 맛있던 꽁꽁 언 초콜릿 바.
‘어째서 여기선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 여기라고 해서 열네살 ‘톰보이‘가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P251

제시카 옆에 있으면서 나는 변했다. 동네에 퀴어라고는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내 앞에 그녀라는 사람이 나타난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고, 두려움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당당히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걷다가 마주칠 때, 파티에서 그 애를 볼 때, 그 애가 쇼핑센터에서 만드는 샌드위치를 먹을 때, 나는 그 애한테반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능성과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싶었던 거다. 그녀라는 존재가 내 눈에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였다.
지금도 나는 세상을 걸어 다니며 그 일을 생각한다. - P272

이제 와 돌아보면, 나는 그 촬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갈 걸 미리 눈치 챘어야 했다. 촬영 첫 주, 누군가가 세트장에서 키어시에게찾아와 테이크 사이사이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잘 알겠지만 네가 이 역할을 맡게 된 건 네가 흑인이라는 이유밖에 없어.
내 경우에는 첫 번째 의상 피팅 날에 감이 왔다. 순식간에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더 여성스럽게. 내 눈앞에는 하이힐이며 치마가 펼쳐져 있었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가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레지던트 의대생들의 이야기인 이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며칠이 흘러가는 동안내가 맡은 배역은 옷을 거의 갈아입지 않는다. 나는 내게 주어진과제를 이해했고 그에 순응할 작정이었지만 그 인물이 하이힐이나치마를 입기에 합당한 이유는 절대 없었다. 나는 고급스러운 블라우스, 달라붙는 청바지, 굽이 달린 부츠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사안은 해결됐다. 문제는 해결됐다. 그리고 그 문제란,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거였다. - P278

‘내게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아니, 단지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절벽 끝까지, ‘거의‘ 떨어지기 직전까지스스로를 한껏 밀어붙이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가장 최악이던순간에조차, 내 안의 작고 작은 어떤 부분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미약하고, 손에 잡히지조차 않는 가느다란 틈 그리고 그 틈을 통해 모든 것이 쏟아져 들어온다. 순식간에 붙잡아야 한다. 그 안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
눈을 감고 걸어 나와.
커밍아웃을 한 뒤, 충격적이게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내 삶은 나아졌다. 나는 가슴 주머니에 그 경험을 추천서처럼 넣고 다닌다. ‘이 일을 해냈으니 세상에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 P296

젠장, 여태까지 너무나 많은 유턴을 한 나머지 현기증이 나기억을 잃었던 게 분명했다. 비의 말을 듣는 순간 지난 일들이 플래시백처럼 펼쳐졌다. 나는 친구들에게 질문했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진실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길 거듭했다. 새로운배역으로, 새로운 화보 촬영으로, 새로운 연애로, 새로운 공항으로, 새로운 타이트한 스포츠브라로 옮겨가면서. 나는 이 사실을 똑바로 마주봐야 해.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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