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 삶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 두 가지는 서로 별개라는 것이다. 퀴어로 커밍아웃한 것은 트랜스, 즉 타인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뒤진화한 나 자신으로 커밍아웃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런 기억들은 비선형적인 서사를 이루는데, 퀴어함이란 본질적으로 비선형적인 것, 굽어지고 틀어지는 여정들이기 때문이다. 두 발짝 앞으로 나섰다가,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 나는 내 삶의많은 부분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아주 조금씩 깎아나가는 한편으로 무너질까 두려워하며 보냈다. 그 과정 역시도 의도적으로 내글에 담았다. 여러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 P11

「주노」가 성공을 거두자 영화계 사람들은 내게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해가 될거라고, 내게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고, 그게 최선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나는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했다. 사진촬영을 했다. 폴라를 비밀로 간직했다. 그러면서 우울증과 쓰러질 정도로 심각한 공황발작에 시달렸다. 나는 거의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몸속에 못이 가득 든 것처럼 무감각했고 조용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고통이 얼마만큼 큰지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 특히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적어도 남들이 그렇게들 말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나는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한 거라고, 내가 감사할 줄 모른다고 스스로를 비난했다. 아프다고, 꼼짝도 할 수 없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죄책감이 너무 컸다. - P28

내가 나를 알게 된 건 네 살 때였다. 핼리팩스 시내, 퍼블릭가든 건너편 사우스파크 스트리트에 있는 YMCA 유치원에 다니던시절이었다. 짙은 색 벽돌로 되어 있던 건물 외벽은 이후에 철거한뒤 재건되었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애초부터 알았다. 의식적으로 안 게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였다. 그 감각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그리고 선명한 기억 중 하나다. - P35

아버지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와 온 가족이 있을 때 참 다른사람이었다.
"린다와 네가 물에 빠지면 나는 널 구할 거다." 아버지는 남몰래 내게 말하곤 했다. "린다는 내 평생의 사랑이 아니야. 너야말로내 평생의 사랑이지." 그건 비밀이었다. 아버지가 대놓고 비밀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는데, 린다 곁에 있을 때는 에너지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에게는 둘만의 노래인 루스 브라운의 참견하지 마Ain‘t Nobody‘s Business」가 있었다. 나를 학교에 태워다 줄 때면 아버지는 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부르곤 했다.
린다 곁에 있을 때 그런 ‘사랑‘은 증발해버렸다. 말투도, 몸짓도, 표정도 변했다. 마치 두 사람이 하나로 뭉쳐 작당이라도 한 것같은 차갑고 냉랭한 태도에 내 눈길은 절로 바닥을 향했다. 린다는 사람들 앞에서 내게 못되게 굴었고 둘만 있을 땐 더더욱 못되게굴었다. 나는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을 잘 숨겼다. - P67

전문 배우가 되는 동시에 쇼핑몰에서 "녀석,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 시절도 끝이 났다. 배역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신체의 변화를 목전에 두었던 나는 세트장에 있는 시스 남자아이들을 빤히바라보곤 했다. 칼라 달린 셔츠, 멜빵, 반바지에 타이츠는 입지 않은 아이들. 머리에는 리본이 아닌 뉴스보이 모자를 쓴 아이들.
왜 나는 저 모습이 아니지? 나는 저들처럼 움직이고, 저들처럼 연기하는데.
어린아이 시절부터 시작되어 대상포진처럼 골수에 깃들어 있던 괴로운 느낌이 예고도 없이 닥쳐와 온몸에 퍼지며 내 신경을 노출했다.
어머핏 포니를 촬영하는 동안 나는 젠더 디스포리아에 시달렸다. 풀로 붙인 것처럼 딱 달라붙던 타이츠도, 하늘하늘 날리던 드레스도 빌어먹을 리본은 어머니가 내 머리카락에 꽂아 주던 머리핀처럼 해소되지 않는, 내면화된 울화를 자극했다. - P75

아버지를 용서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았다. 당장 토론토로 가서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자기 자식이 보호를 필요로 했을 때, 자기자식이 사랑을 필요로 했을 때, 그는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미성년자인 내가 겁도 없이 성인 남자와 인터넷으로 교류했다는이유로 노여워했다. 그 순간에 내게 돌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순간에 내게 안전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영영 그런 것을 얻을 날은 없지 않을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 말은 그 남자의 위협보다, 그의 집착보다, 내 팔을 훑던 그의 손가락보다 내 몸속에 더욱오래 머물렀다. - P89

2014년의 커밍아웃은 선택했다기보다는 하지 않을 수 없어서한 것이었지만, 맞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한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노출되고 취약해지는일이 잇따랐다 한들, 커밍아웃은 그 모든 걸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걸음이었다. 나는 숨어서 고통받느니 살아 있으면서 고통을 느끼고 싶었다. 어깨를 활짝 펴고, 심장을 환히 드러낸 채, 나는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손을 잡고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공허함이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익숙한 낮은 목소리. 그 속삭임은 여전히 선명하게 내 귓가에 맴돌았다. - P111

수줍어하던 나는 점점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다. 벌써 그녀가 나를 아끼고, 지켜 주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고, 그럼에도 어른 행세는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렇지만우리의 친밀함은 그 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열아홉 살의 내 자아에미친 영향을 아주 약간 완화해 준 데 그쳤다.
「아메리칸 크라임은 1965년 인디애나주 역사상 한 명의 희생자가 겪은 최고 수위의 학대를 경험한 열여섯 살 소녀 실비아 리킨스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잔인한 영화지만 실화의 끔찍함에비하면 자제한 편이다. 나는 실비아 역을 맡게 되었다. - P123

내가 맡은 배역들은 나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연기란 다른 인간의 경험을 탐구하는일이다. 공감하고,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바라는 마음으로, 감정이 솟구쳐 오르기를 기다리는, 결코 끝나지 않는 연습이다. 눈을 감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이 내게 닥쳐왔다. 실비아는 어떻게 그토록 오래 버틴 걸까? 어떻게 포기해버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고문이란 사람을 끝까지 끌고 갔다가 다시 끌어당기는 일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는 것이리라. - P127

촬영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더 힘든 날이면 키너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돌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테킬라를 마시고 키너의 집 벽난로 앞에 앉았다. 음악을 크게 틀어 두고, 알 수 없는 커다란 모험을 앞둔 채 춤을 추고 또 췄다.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인 이 영화에서는 키너가 나를 살해한다. 실제 세계에서 키너는 내 하나뿐인 구원자였다. - P129

비록 그 배역을 맡게 되리라는 걸 스크린 테스트 전부터 넌지시 알고 있었음에도, 배역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기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 가슴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꿈꾸던 배역에 캐스팅된 것이다.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스크린 테스트가 끝나고 두 달 뒤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촬영이 밀렸고, 회복할 시간이 생겼으니 내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자기억제는 여전했지만 음식을 먹는게 훨씬 더 편해졌고 일은 내게 도움을 주었다. 주노 세트장에 있으면 치유받는 기분이었고, 고문의 장면들이 나를 집까지 따라오지도 않았고, 나는 내 몸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나아졌다. 그 어떤 의미도 없다는 기분으로 지내다가, 드디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우울감이 나를 껍데기만 남기고 빨아들여 버렸는데말이다. - P135

내 옷은 내 허벅지에, 가슴에, 거머리처럼, 1990년대에 유행하던슬랩 팔찌처럼 철썩 달라붙었다. 여성스러운 옷을 입었을 때 마치내가 기적 같은 승리라도 거두었다는 듯 환해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내가 칸 영화제에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프리미어 시사회를 위해 몸에 딱 붙는 금빛드레스를 차려입었을 때 기뻐하던 얼굴들을 앞으로도 영영 잊지못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예쁘잖아."
울 "그냥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나 개인의 삶에서 하고 있는 연기가 이미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는데 스크린에서도 연기를 한다는 것은 너무 큰 압박이었다. - P156

할리우드의 바탕은 퀴어함을 지렛대처럼 활용하는 데 있다. 필요한 순간에는 치워버리고, 이익이 될 때는 끄집어내면서 자기들끼리 뿌듯해하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때늦게, 한참 뒤처져 반응하고 따라간다. 할리우드라는 깊숙한 벽장은수많은 비밀을 묻어 버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내가 퀴어라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학대하면서도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꼭읽어 볼 만한 책인 세라 슐먼Sarah Schulman의 『끈끈한 유대감: 가족 내의 호모포비아와 그 결과 Ties That Bind: Familial Homophobia and ItsConsequence』에 나오는 구절이다. - P163

불안감은 사라질 줄 몰랐다. 무언가가 나를 자꾸만 짓눌렀고,
공황발작 때문에 도저히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운전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날들도 많았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아무런 의욕이 없었으며, 바라는 것도 없었다. 처음으로 제대로된 심리치료사에게 나를 데리고 가서 삶을 구하는 조언을 얻게 해준 건 매니저였다.
"진짜 당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장소로 가야 해요." 스물세 살에만난 새로운 심리치료사가 말했다.
"안 돼요, 그건 불가능해요."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내 퀴어다운 걸음걸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너무 뜨거워서 건드릴 수도 없는 주제였으니까. 내가 젠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내가 나 자신에게 충분히 귀를 기울이게 될 수 있기까지 이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극한에 몰린 나머지 더는 선택지가 없어질 때까지. 길 위의 마지막 갈림길에 놓일 때까지.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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