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필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브라운필드는 겨우 열 살이었지만 어머니의 그런 태도가 매우 이상했다. 어떤 면에서는 마거릿이 - P16

그들의 개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에게 어떤 식으로든 복종심을 보일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P17

사촌들이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다 보니 브라운필드는 머리가 아팠다. 부모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스며들었다. 피가 머리로 몰려 몸이 불편해졌다. 그는 열에 들뜬 채 지나온 날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생각했다. 열기, 감기, 일, 교활해 보이는 은근한 미소 뒤에 한결같이 놓여 있는 절망의 느낌들. 겨울의 굶주림, 궁색하고 무표정한 얼굴들, 어머니가 미끼와 비료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혼자서 씹던 나무껍질의 느낌들. 부드러운 피부와 깨끗한 우윳빛 숨결의 어머니,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버지, 피할 수 - P26

없이 돌진해 오는 앎의 느낌들. 이는 마치 거센 바람과 번쩍이는 홍수를 몰고 와 침묵을 산산조각내고 그들 모두를 가차없이 짓눌러 버리는 여름 태풍과 같았다. 언젠가는 그도 모든 것을 알게 될 테고 사촌들과 아버지, 심지어 어쩌면 신과도 대등해질 것이었다. - P27

피칸 나무처럼 윤이 나는 짙은 갈색 피부에다 키가크고 마른 그레인지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이제 서른다섯 살이었지만 힘든 농사일로 등이 다소 굽어 실제보다 더 늙어 보였다. 얼굴과 눈에는 정열이라고는 전혀 없이 슬픔과 공허가 맴돌았다. 마치 거대한 불이 일어 그의 내부를 완전히 태운 후 최근에야 꺼진 듯싶었다. 브라운필드가 보기에 그는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단 하나, ‘혼란‘ 만은 예외였다. 혼란이 어찌나 극심한지 그는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손짓은 계속되었지만 막연히 아무 곳이나 가리키고 있었으며, 입술은 움직였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레인지는 어깨를 들어올렸다가 떨어트렸다. 브라운필드는 그 몸짓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음을 나타내는 어깻짓이었다. 즉, 집을 손볼 도리가 도저히 없으므로 손짓은 이제 그만두겠으며 다시는 집을 고칠 생각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 P30

그 공상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내와 요리사의 얼굴이 끊임없이 서로 바뀌었던 것이다. 처음에 아내는 요리 때문에 땀이 번들거리는 흑인이었다가 그의 손길이 닿으면 피부가 보송보송한 백인으로 변했다. 그의 꿈꾸는 자아는 분명하게 결정 내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얼굴엔 한번도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을 그저 천사와 같은 존재로, 두 개의 빛나는 온기처럼 인식했다. 아이들 - P38

은 그를 사랑스럽게 ‘아빠‘라고 부르며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텅 빈 공기를 마치 아이들의 머리인 양 어루만졌다. - P39

매덜레인 자매는 인디언 추장 얼굴을 조시에게 향한 채 천천히 걸었다.
"배운 게 많은 아들아이는 마녀 올라타기에 관한 이론을 철저하게 믿고 있죠. 난 가족의 평화를 위해 아들애와 논쟁하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마녀를 믿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오늘날처럼 될 수 있었겠어요? 난 마녀가진짜 있다는 걸 알아요. 내 몸에 붙은 마녀를 떼어 낸 적도 몇 번이나 있는걸요. 아들아이는 대학에서 마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배우죠. 거기선 낡은 소파를 이용하는 프로이트라는 사람을 믿는다나요. 글쎄, 내가 어떻게 소파 따위를 믿겠어요! 하긴 젊은 것들이 알긴 뭘 알겠어요?" - P72

그는 그녀를 뒤쫓는 데 점점 더 열을 내기 시작했다. 좋은 몽둥이를 구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숲 속을 ‘그냥 걷는다‘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도대체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걸까요?"
하루는 브라운필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조시에게 물었다. - P86

삼 년 후, 그는 여전히 같은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빚은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멤은 둘째 아이로 배가 산만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들의 결혼식이 자신을 죄악과 악마로부터 탈출시켜 사랑과 하나 되게 한 성공의 절정이라고 여겼다. 요 몇 년 사이 영원한 노예 신세가 될지도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끊임없이 좀먹었지만,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믿음만큼은 파괴할 수 없었다. 멤은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도, 잠자리를 챙길 때도 노래를 부르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도, 고달픔과 실의에 빠진 남편이 그녀의 따스하고 둥근 가슴으로 파고들며 기운을 추스를 때도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그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 P95

그 흑인 아이는 바로 브라운필드의 첫째 딸 대프니였다. 그해에 그는 비로소 눈을 떴다. 훗날 딸애가 멋진 숙녀가 되어 양산을 쓰고 얇은 비단옷을 입으리라는 희망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그해에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아버지의 인생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아이들을 노예 신세에서 구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그에게 속해있지도 않았다. - P100

그의 구겨진 자존심과 뭉그러진 자아는 멤이 선생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질질 끌어냈다. 그녀의 지식은 읽고쓸 수 없는 남편에게 극도의 불명예일 뿐이었다. 그녀를 백인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위대한 무지였다. 그는 그녀를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했다! 그녀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로 하여금 다른 남자, 즉 흰둥이들에게 꼬리 쳤다고 억지 부리며 아내를 두들겨 패게 한 것은 바로 그 자신과 그의 인생과 그의 세계에 대한 분노였다. 그의 분노와 그의 노여움과 그의 절망이 그를 지배했다. 분노는 그가 모든 것을 그녀 탓으로돌리게 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리했다. 그녀는 자신의 짐과 더불어 그의 짐까지 모두 받아 들고는 더 넓은 마음과 더 높은 지식으로 그것들을 짊어졌다. 그는 그녀의 더 넓은 마음은 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더 높은 지식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를 힘에,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 P102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오직 대프니만이 브라운필드가 자식들을 멸시하기 전인 ‘좋은 시절‘을 아련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기와 오넷을 나무 아래에 앉히고는 브라운필드가 예전에 얼마나 좋은 아빠였는지 들려주었다. 브라운필드는 어쩌다 그녀가 아기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엿들었다. 그녀는 소중히 간직한 아빠와의 - P134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동생 자신의 기억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것만 같았다. - P135

브라운필드는 쓰라린 표정으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이후 엄마의 하루하루도 뒤죽박죽이었어요."
그는 감정을 가득 담아 다정하게 ‘엄마‘ 라고 발음했다. 비록 그녀의 생애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늘 그렇듯 혐오스러웠음에도. 브라운필드는 그레인지가 자기를 버렸기 때문에 늑대들에게 물려 가도록 남겨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레인지가 떠났을 때나 브라운필드가 드롭인머물 때가 아니라 자신이 받아들일만큼 용감하다고 스스로 - P128

확신했던 바로 그 삶의 비참함을 결혼생활을 통하여 되돌아보았을 때에야 든 생각이었다. 그는 사실 어머니가 어떻게 느꼈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레인지는 브라운필드를 바라보았고, 브라운필드도 그를 바라보았다. 조시의 그림자가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예전에도 그런 적은 없었지만 지금 역시도 그녀로 인해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복수였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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