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제목도, 표지도 맘에 든다.
글자 크기도 커서 읽기 좋다. (요즘 노안으로 지하철에서 책 읽기 점점 힘들다...슬프다...).
다만, 책이 너무 무겁다. 페이지 분량에 비해서도 너무 무거운 책이다.
질이 좋은 무거운 종이인가 보다.
난 서서 한 손으로 들고 읽을 수 있는 가벼운 페이퍼백이 좋다고.
책은 재미있다.
과학적 가부장제
성의 가소성
![](https://image.aladin.co.kr/product/31577/22/cover150/8901271516_2.jpg)
들어가며. 다윈의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암컷들
다윈은 성선택의 역학에서 수컷끼리의 경쟁 외에도 ‘암컷의 선택female choice‘이라는 요소의 필요성을 알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설명하기는 몹시 껄끄러웠으니, 암컷에게 수컷을 쥐락펴락하는 불편할 정도로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발상이었고, 앞으로 2장에서 보겠지만 궁극적으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과학적 가부장제의 입맛에 맞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다윈은 암컷의 선택이란 수컷들의 허세전에 ‘관중으로 서 있는 여 - P21
그러나 이런 편리한 성적 분류의 원조가 다윈은 아닐 터, 아마 그도 동물학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개념을 빌려왔으리라. 기원전 4세기에 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최초의 동물 연감이자 번식에 관한 논문인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On the Generationof Animals」를 썼다. 다윈이 이 기념비적 연구를 그냥 지나쳤을 리없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성역할의 분담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두 가지 성이...……… 있는 동물에서……… 수컷은 효율성과 적극성을………… 암컷은………… 수동성을 상징한다." 암컷의 수동성과 수컷의 활력이라는 고정관념은 동물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됐다. 그만큼 오랜 시간의 시험을 버텨왔다는 것은 수 세대의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옳다고 느꼈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진짜 옳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모든 영역에서 과학이 가르쳐준 한 가지가 있으니 직관은 종종 인간을 오도한다는 사실이다. 군더더기 없는 이분법적 분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틀렸다는 점이다. - P22
1장 무정부 상태의 성
이 책은 비인간 동물에 관한 책이므로 일단 성과 젠더를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생물학자는 동물에게 젠더가 없다는 말에 대부분 동의한다. 젠더란 성별을 나타내는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개념이며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따라서 생물학자들이 암컷이라 말할 때는 오로지 생물학적 성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성은 또 무엇일까? - P41
"남성호르몬이니 여성호르몬이니 하는 것은 없습니다. 흔히들 착각하지만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똑같은 호르몬을 갖고 있습니다." 크리스틴 드레아Christine Drea가 스카이프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게 말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란 성 스테로이드를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효소의 상대적인 양과 호르몬 수용기의 분포와 민감성, 그게 전부입니다." - P50
생식기관을 결정하는 일은 약 60개의 유전자가 오케스트라처럼 협업하는 과정이다. 성을 결정하는 이 유전자들은 성별에 따라 X 염색체나 Y 염색체에 딱딱 나뉘어 있기는커녕 모두 다 성염색체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이 유전자들은 게놈 전체에되는대로 흩어져 있다. SRY 유전자는 말하자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게놈에 이 정소 결정 인자가 존재하면 성결정 유전자에 지시를 내려정소를 발생시키는 T 음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만약 SRY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오케스트라는 난소가 되라는 O 음을 연주할 것이다. 오랫동안 유전학자들은 별개의 두 경로가 존재하여 하나는 수컷으로(SRY 유전자의 존재로 유발된다), 다른 하나는 암컷으로(SRY 유전자의 부재로 유발된다) 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진화가 성에 대해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적 해결책을 제공했다는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 P56
혼란스럽게 뒤얽힌 양성 유전자의 관계는 성의 가소성을 설명한다. 뒤엉킨 톱니바퀴 중 어느 것이라도 발현에 변화가 생기면 새로운 변이를 생산할 것이다. 이는 진화를 추진하고 동물이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면서 적응하고 활용하게 하는 재료가 된다. - P58
일부 파충류, 어류, 양서류는 성의 분화가 마스터 유전자가 아닌 외부적 요인에 자극받는다. 거북의 예를 들어보자. 거북은 바다에서 무겁게 몸을 끌고 나와 열대 해변의 모래에 알을 파묻는다. 이때 섭씨 31도 이상에서 부화하는 알은 난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반면에 27.7도 이하에서는 정소를 만든다. 두 온도 사이에서는 수컷과 암컷이 섞여서 나온다. 열은 성을 결정한다고 알려진 외부 자극의 하나일 뿐이다. 햇빛 노출, 기생충 감염, pH 수치, 염도, 수질, 영양, 산소 압력, 개체군 밀도, 사회적 상황(주위에 이성이 얼마나 많은지 등) 따위가 모두한 동물의 성적 운명에 영향을 준다. - P63
"생식샘 수준에서는 분명히 수컷과 암컷 사이에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연못이나 가서 닥치는 대로 잡아서 보면 여전히 수컷이나 암컷, 둘 중의 하나로 보일 겁니다." 로드리게스가 내게 말했다. - P66
크루스에 따르면 성의 양식에는 염색체, 생식샘, 호르몬, 형태, 그리고 행동의 다섯 종류가 있다. 이것들은 서로 합의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평생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적되고 창발적이며, 유전자나 호르몬은 물론이고 환경 또는 경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소성 덕분에 우리가 좀 내부와 종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성과 성적 표현의 다양성이 가능해진다. "변이는 진화의 기본 틀입니다. 변이가 없다면 진화 시스템이존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성적 특성에도 변이가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 P71
"남성성은 여성성의 적응 과정으로서 진화했습니다." 크루스가 설명을 이어갔다. "최초의 남성이 한 일은 여성의 몸에서 번식을 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식세포 분리의 기초가 되는 신경내분비학적 과정을 자극하고 조정하는 일이죠. 남성은 행동상의 촉진자입니다." 남성이 원래 여성으로부터 진화한, 즉 여성에서 파생된 성이라면 거기에는 난자 제조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논리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크루스가 남성성의 한복판에서 고대 여성성의 살아 있는 유물을 발견했으니, 바로 정소이다. "우리는 정소에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다고 보여주는 현미경 사진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에스트로겐, 즉 가장 대표적인‘여성’ 성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사실은 수컷의 정소와 정자 발달에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 P73
"여성 성 스테로이드는 남성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합니다. 당연하죠, 남성은 원래 여성이었으니까요." 하여 크루스 말하길, 성경의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태초에 여성이 있었고 여성이 남성을낳았다. 진화를 보는 이런 대안적인 관점에서 ‘암컷이란 무엇인가‘ - P74
라는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은 다음과 같다. 여성은 성의 시조이다. 이 원시적 난자 제조기의 유물은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이 사실을 통해 남성이 내면의 여성성과 접촉하는 것을 재해석할수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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