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스타우닝은 그게 아니라고, 실업 문제는 순전히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때문이라고 말하고, 나는 ‘침체‘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표현이라고 느낀다. 나는 상상한다. 별 하나 없는, 위로할 길 없는 회색빛 하늘에서 빗줄기가 쏟아지는 동안 모두가 자기 집 차양을 내린 채 불을 끄는 장면을, 그 깊고 깊은 슬픔에 잠긴 세계를 "그리고 이제," 마침내 스타우닝이 말한다. "우리의 대의를 위한 노고에 보상하는 의미로, 부지런한 당원 모집 담당관 여러분 각자에게 상품을 수여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들 중 한 명이라는 자랑스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진 나는 아버지가 앉아 있는 곳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 P106
나는 가상의 인물에게, 루트에게, 그도 아니면 아무도 대상으로 하지 않고서 사랑 시들을 썼다. 나는 내 시들이 아직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은 딱지 밑에 매끈하게 돋아난 새 피부처럼 내 어린 시절의 휑한 공간들을덮어 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시들이 어른으로서의내 모습을 빚어내게 될까? 나는 궁금했다. 그 시절 나는 거의 언제나 우울했다. 거리에 부는 바람은 세상 전체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내 키 크고 여윈 몸을 차갑게 뚫고 지나갔다. 어른들을 보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도 나는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선생님들을 노려보았다. 어느 날 대리 교사로 온 음악 선생님이 내 자리로 조용히 건너오더니 조용하지만 또렷한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 얼굴이 맘에 안 드는구나." 집에 온 나는 수납장 위에 있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두 뺨은 통통했고, 두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 P111
들이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학교를 마치면 ‘연금이 나오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내게는 숙련공만큼이나 끔찍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어느 방향으로 가든 벽에 부딪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토록 절실하게 어린 시절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거기서 빠져나갈 길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 P130
"잘 가요, 학생." 그가 말한다. 나는 온통 부서진 희망들을 끌어안고 어찌어찌 문 밖으로 걸어 나온다. 천천히, 아무런 감각 없이, 나는 도시의 봄을, 다른 사람들의 봄을, 다른 사람들의 기쁨 어린 변화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뚫고 걷는다. 나는 절대로 유명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내 시들에는 아무 가치도 없다. 나는 술을 안 마시는 착실한 숙련공과 결혼하든지, 아니면 연금이 나오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죽도록 실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시 노트에 다시 글을 쓴다. 아무도 내 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시를 써야만 한다. 시가 내마음 속의 슬픔과 갈망을 무디게 만들어 주니까. - P157
여러 시험을 끝낸 우리는 학교에서 졸업 파티를한다. 모두가 ‘붉은 감옥‘을 떠나게 된 것에 환호했고,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큰 소리로 환호를 보낸다. 내게는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 이제 나는 어떤 진짜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고,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흉내 냄으로써 내게도 감정이 있는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직 내게 간접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에만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집에서 쫓겨난 불운한 가족의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 그것과 똑같은 흔한 광경을 볼 때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지금도 시와 서정적인 산문에는 감동하지만, 그 글 속에 묘사된 사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냉정한 마음이 된다. 현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내게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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