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속을 가득 채운 의자에 푹 파묻힌 채 망연자실해 보이는 엄마를 다시 바라보았다. "엄마?" 선자가 이미 문가에 서 있는 아들을 휙 쳐다보았다. 선자는 노아가 한수와 저녁을 먹으러 가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챘다. 아이의 얼굴이 빛나 보였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선자는 이 일이 노아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노아는 한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간절한 나머지 이미 돈을 받아들였다. 요셉이 자신을 윽박지르는 소리가 머릿 속에서 들리는 듯했다. 당장 이 짓을 멈추라고, 이 상황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 어리석은 여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큰아들 노아가 이렇게나 행복해했다. 노아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이 엄청난 일을 해냈는데, 합격하기 전으로 되돌려 모두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 반짝반짝하고 눈부신 꿈을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빼앗을 수는 없었다. 선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아는 한수와 저녁을 먹겠다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 P42
굶주린 사람처럼 좋은 책을 탐욕스럽게 읽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디킨스, 새커리, 하디, 오스틴, 트롤럽 같은 작가들의 책을 모두 읽고나서 유럽 대륙으로 넘어가 발자크, 졸라, 플로베르를 읽었으며, - P55
뒤이어 톨스토이와 사랑에 빠졌다. 노아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괴테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적어도 여섯 번은 읽었다. - P56
"그래서 엘리엇의 마지막 걸작을 어떻게 생각해?" 아키코가 물었다. "훌륭하지. 조지 엘리엇의 모든 작품이 완벽해." "말도 안 돼. 《아담 비드》는 지루해. 그거 읽다가 죽을 뻔했지 뭐야. <사일러스 마녀》는 참기 힘들 정도고." "글쎄, 《아담 비드》는 《미들마치>만큼 흥미롭거나 다양하게 전개되지 않지만, 용감한 여성과 정직한 남성을 뛰어나게 묘사하고…………." - P57
작업장은 여전히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아가씨들이 작업대에 까만 머리를 숙인 채 일하고 있었다. 모자수는 옷감 위로 날듯이 빠르게 움직이는 유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유미는 일에 집중하면 다른 데 정신을 팔지 않았다. 무슨 일에든 그렇게 집중했고 가만히 두면 몇 시간이라도 일을 할 수 있었다. 모자수는 자신이 종일 그렇게 조용히 있는 것을 상상도 할 수없었다. 파친코장의 웅성거림이 그리울 터였다. 모자수는 커다랗고 시끌벅적한 파친코장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아주 좋아했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었고,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점에서 비슷했다. 모자수는 고정돼 보이지만 무작위성과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파친코를 왜 손님들이 계속 찾는지 이해할 수있었다. - P80
사방에 조직범죄자들이 있었고 선자는 그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다른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많은 조선인이 폭력배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좋은 회사들은 조선인들을 뽑지 않았고, 제대로 교육받은 조선인조차 고용하지 않았다. 이 모든 사람들은 일을 해야 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선자네 동네에 살았다. 그들은 일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친절했고 공손했다. 그렇지만 선자는 이런 말을 차마 아들에게 할 수 없었다. 노아는 공부하고 일하며 이 거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아이였고,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선자의 아들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 없었다. "노아야" 선자가 말했다. "나를 용서하래이 엄마가 미안타 나는 그냥 니를 학교에 보내고 싶었데이, 니가 그거를 얼마나 바랐는지 아니까 니가 얼마나 열심히・・・・・…." "당신, 당신이 내 삶을 빼앗았어요. 난 더 이상 내가 아니에요." 노아가 손가락으로 선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노아가 돌아서서 기차역을 향해 걸어갔다. - P111
선자는 며느리가 먹기를 바랐다. 다시 유산할까봐 겁났지만 걱정하는 기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유산한 횟수를 말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교회 목사님이 경솔한 혀가 짓는 죄악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선자는 항상 말을 적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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