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서 굶고 계셔요. 삼촌은 숙모랑 아이들을 먹여 살리지도 못하시고요. 상황이 이러니 할 수만 있다면제 손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에요. 하나님은 제가 부모님을 공경하기를 바라세요.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 건 죄예요. 제가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다 해도………." 누나가 울기 시작했다. "주님이 저희 기도의 응답으로 요시카와 상을 보내주신 게 아닐까요?" 누나가 유 목사를 바라보았다. 유 목사는 누나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듯 고개를 숙였다. - P187
"고기가 좀 들어가면 더 좋겠네요." "흰쌀밥과 국수도요! 안 될 거 없잖아요?" 경희가 소리 내어 웃으며 자연스럽게 한 손을 올려 입을 가렸다. 두 남자가 경희의 농담을 이해하고 즐겁게 웃었다. 쌀은 그들에게도 비싸기 때문이었다. - P204
요셉과 경희의 부모님은 요셉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북적이는 술집에서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농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른 오징어의 탄내와 술 냄새를 풍기는 그 지저분한 가게에서 돈 걱정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이 낯설고 고달픈 땅에서 어떻게 가족을 돌봐야 할지 두려움에 막막해지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 P231
"김치! 맛있는 김치! 이 맛있는 김치를 먹어보시고 이제 다시는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마이소!" 선자가 외쳤다. 행인들이 고개를 돌려 선자를 바라보자 선자는 창피해서 얼굴을 돌렸다.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돼지를 다 자른 도축업자가 손을 씻은 후25센을 선자에게 주었고, 선자는 그릇에 김치를 담아주었다. 도축업자는 선자가 일본어를 못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돼지머리 옆에 김치 그릇을 내려놓더니 좌판 뒤로 손을 뻗어 도시락을꺼냈다. 선자 앞에서 김치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흰쌀밥 위에 가지런히 놓고 밥과 김치를 한 입 먹었다. "오이시! 오이시네! 혼토 오이시"도축업자가 웃으며 말했다. 선자는 도축업자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P255
아내가 대부업자들 밑에서 일하는 것과 요셉이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나쁠까? 조선 남자에게 선택이란 항상 엿 같은 일이었다. - P277
"아가, 이리 오렴" 이삭이 말했다. 노아가 이삭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발 하나님, 제발 아빠를 낫게 해주세요. 한 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제발‘ 노아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이삭이 노아의 손을 잡고 꽉 쥐었다. "너는 아주 용감해, 노아야 나보다 훨씬, 훨씬 더 용감해. 너를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노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아가 한 손으로 코를 닦았다. "내 아가." 이삭은 말하고는 아들의 손을 놓았다. "사랑하는 내 아들 내 축복." - P307
"너희 아주버니 말하는 거구나. 그 사람이 바보라고 해도 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야. 네가 말하면 너희 형님은 갈 거야. 이 도시는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졌어. 성냥한 개비면 온 도시가 불에 타 없어질 거야. 미군이 폭격을 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봐." 한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 "네 아들들이 죽을 거야.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거야? 난 이미 오래전에 내 딸들을 다른 데로 보냈어. 부모는 결단력이 있어야 해. 아이는 제 몸을 보호할 수 없잖아." 선자는 그제야 이해했다. 한수는 노아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수한테는 일본인 아내와 세 딸이 있었다. 아들은 없었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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