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사내를 죽이는 것쯤이야,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날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여자를 빼앗게 되면 반드시 사내는 죽는 거거든요. 다만 나는 죽일 때 허리에 찬 칼을 쓰지만 당신들은 칼은 쓰지 않고 그저 권력으로 죽이고 돈으로 죽이고 여차하면 위해 주는 척하는 말만으로도 죽이죠. 그러면 피는 흐르지 않고, 사내는 멀쩡하게 살아 있지. 하지만 그래도 죽인 겁니다. 죄의 깊이를 생각해 보면 당신들이 더 나쁜지 내가 더나쁜지, 어느 쪽이 더 나쁜지 알 수 없지요.(비웃는 듯한웃음.)
- 덤불 속 - P29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감정이있다. 물론 타인의 불행에 동정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불행을 어찌어찌 빠져나오게되면 이번에는 이쪽에서 뭔가 부족한 듯한 심정이 된다.조금 과장해 보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빠뜨려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든다. 그리하여 어느 틈엔가소극적이기는 해도, 그 사람에 대해 일종의 적의를 품게되는 것이다. 큰스님이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어쩐지불쾌한 기분을 느꼈던 이유는, 이케노오 승속들의 태도에서 바로 그런 방관자의 이기주의를 자기도 모르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코 - P53
"대단한 부하로구먼." 오위는 순진한 존경과 찬탄을 흘려 가며, 여우까지 턱짓으로 부려 대는 야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우러러보았다. 자신과 도시히토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있는지, 그런 것은 떠올릴 틈도 없었다. 그저 도시히토의의지로 지배되는 범위가 넓은 만큼, 그 의지 속에 포용되는 자신의 의지도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마음든든하게 여길 따름이었다. 아부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럴 때 가장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리라. 독자는 앞으로 딸기코 오위의 태도에서 연회 자리의 어릿광대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공연히 이 사내의 인격을 의심하지 말았으면 한다.
- 마죽 - P48
‘봄의 감각‘을 가장 잘 이해한 작가라는 수식어도 하나 보태고 싶습니다. 삶의 허무와 끓어오르는 생명력, 역설적인 두 감정을 인간의 내면이 동시에 품을 수도 있다고 말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죠.
- 편집자 레터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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